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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음악, 종교음악
김재훈 (bonham)
2013/07/20  15:35 1317

매일 매일 뜨거운 대구의 불볕 더위 속에 휴가철이 한창이다.  일선 본당의 성가대는 연중 제일 조용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여름 휴가철에 성가대원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비단 내가 속한 본당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성당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다.  다만 성음악 수준이 높고 성가대의 전통이 오랜 본당들은 아마 줄어드는 성가대원의 비율도 비교적 적을 것이다.  여름 한 철 인원수가 줄어드는 성가대를 꾸려 본당 전례를 이끌어가는 지휘자들도 한 숨 푹푹 나올 때이기도 하다.  어쩌면 한편으로는 그런 점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여름 기간을 조용히 꾸려가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본당 지휘자인 나는 더위가 한창인 지금 한겨울의 성탄대축일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단원 수가 줄어드는데 성탄 때 제대로 꾸려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걱정은 불필요한 걱정일 수도 있다.   양대 대축일 때가 가까워 오면 집나간 탕자가 집에 돌아오는 모양으로 단원 수가 다시 늘어나기 때문이다.

 

성탄대축일을 준비하는 지금 미사곡과 성가를 준비하는 것에 여러가지 생각들 때문에 혼란스러우며 또한 조심스럽다.  그 원인인즉, 단원들과 본당신자 분들이 지휘자의 선곡을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의 의견을 고루 담아서 넓은 그릇으로 성탄 시기를 준비해 가는 것도 좋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례음악의 전통을 좇아서 일년 중 몇 몇 대축일과 주일만이라도 전례성가를 미사전례 중에 구현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작년에 성탄 때에 미사 중에 G. P. da Palestrina의 Hodie Christus natus est 를 연습해서 불렀다.  이 곡은 16세기 다성음악의 형식으로서, 지휘자는 물론이고 성가대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되지 않으면 쉬이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다.  어렵사리 연습한 곡이라 올해 한번 더 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여기저기에서 볼멘 소리가 들려온다.  말인즉, G. F. Handel의 Messiah 에 나오는 주의 영광이나 할렐루야를 원하는 것이다.  물론 성탄대축일의 분위기라든지 또는,  연말연시의 분위기를 들면 그런 곡들이 어울릴 법도 하다.  그러나, 그래도 미사 전례 중에 이들 곡들이 특송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연주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영성체 행렬 후 자리에서 묵상에 들어간 다음, 그 묵상이 끝 난고서 특송이라는 이름으로 성탄대축일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이니, 이 예식이 미사 전례중이라는 것이다.

전례 중에 할렐루야를 부르고 나면 그 요란한 분위기 때문에 박수가 저절로 터져나오기 십상이다.  앞서 얘기한 다성음악도 똑 같은 것이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성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와 더불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헌장 이하 각종 성음악 관련 문헌에 나와 있듯이 성음악 전례성가 최고 수준의 위치에 있다.  다만 이것은 그 어려움으로 인해 성가대만 불러야 할 곡이다.  잘 연습해서 영성체 성가 끝날 무렵 또는 예물준비성가 대신으로 성가대에서 바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오랜동안 연습해 온 것이 다성음악의 거룩한 분위기와 함께 미사 전례에 잘 녹아들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다성음악이 성가대가 불러야 한다는 점에서 회중을 전례로부터 소외시키지 말라는 또 다른 가치와 상충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런 부분은 공의회 이전의 라틴어로 미사가 바쳐질 때의 문제에 나왔던 것이다.  지금은 각 나라 말로 자유로이 미사가 바쳐지고 있으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1년 중 특별한 시기에 있는 미사로서 몇몇 미사의 몇몇 성가 정도는 라틴어로 성가대만의 노래로 바쳐지는 것이 크게 무리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성가는 그야말로 신자들의 기도를 도와주는 성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가가사를 못 알아 듣더라도 상관이 없다.  미사전에 약간의 공지만 해 주면 그 전체의 의미를 교우들에게 알려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같은 곡을 성가대에서 못 부르게 된 것을 아쉬워 할 분을 위해 이런 방안을 얘기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할렐루야나 주의 영광 같은 밝고 경쾌하거나, 무거운 성가들은 각 본당 성가대 발표회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또는 굳이 전례와 관련해 꼭 그 성가들을 부르고 싶다면 미사가 모두 끝난 후 교우들이 퇴장하는 시점에서 후주곡으로 부를 수 있다.  그 시점은 미사전례가 끝난 시점이므로 좁은 의미에서 전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후주곡이라는 것은 이러한 밝고 경쾌한 곡으로는 참으로 잘 어울리는 것이다.  노래가 끝날 때 쯤 아무도 우리 노래를 안 듣고 있다는 것에 허망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  성가대원이 부르는 노래는 성가대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부르는 것이 절대 아니다.  모든 성가는 하느님께 바쳐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라틴어와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라틴어로 행해지는 미사는 최고의 위치에 있다.  각 나라의 말들은 "허용"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말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미사를 바칠 수 있다.  그런데 최고의 위치에 있는 "라틴어" 성가를 눈치를 보며 불러서야 되겠는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다성음악 역시 마찬가지 이다.  특별한 날 특별한 성가를 부른다는 점에서 교회 전례음악 최고의 경지에 있는 곡을 부르는 것이다. 

공의회 이후 우리말 성가들이 많이 보급되었다.  이것은 좋은 점이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천년이 넘는 오랜 교회 전례음악들은 사람들로부터 자꾸만 잊혀져 간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장 교회의 분위기에 맞는 성가들인데. (무태성당 지휘자 김재훈 스테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