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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서부 고로토 성지
김갑년 (kapnyun)
2013/09/30  12:6 1672

고로토 성지를 순례하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아들집 2달정도 머물면서 여행하기 위하여 7월10일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년전 미국방문은 미국과 캐나다 서부여행을 했지만 이번에는 성지순례도 겸하여 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가장 먼저 일요일 미국성당에 미사를 보았다. 미사 순서가 우리와 비슷하여 미사에 어려움은 없었다. 여기 성당은 봉헌금보다 기부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도 대부분 교회가 가난하다고 한다. 특히 캐나다 성당을 여러 곳 방문 했는데 비슷했다. 7월28일 일요일 미 서부 포틀랜드의 동북부에 그로토(Grotto)성지를 순례하였다. 도착하자마자 나의 온 몸에 습한 어떤 물질이 들어와서 가슴이 떨렸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처음 느낌이었다. 누구든지 한 번 방문하면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에서 짜릿한 어떤느낌을 맛 보리라

일생에 자주 할 수 없는 성지순례 그 자체가 나에게 귀중한 이번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로토는 동굴, 은신처란 의미이다. 그로토 성지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살아계심을 기도하면서 순례과정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해마다 수백명의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주일 미사를 하루 2회씩 평일미사 1회 순례객들을 위하여 야외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그로토 성지는 포틀랜드에 동쪽 구시가지에 위치하며 주립대학과 전통 상가들이 많이 있는 곳이다.

오리건주는 목재도시로 공원과 나무가 많은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로 잘 가꾸어져 있지만 그로토성지는 포틀랜드의 나무와 다른 나무 높고 큰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나무들이 펼쳐져있고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잎이 무성하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나뭇잎들이 하느님의 세계에서 찬양을 하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하와이 가면 높은 나무들이 있지만 여기는 하와이 나무와 달리 잎이 무성하면서 아름다움의 멋이 다른 것 같았다.

작은 본당이지만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의 가톨릭 성당 밖에는 동굴 절벽이 있으며 그 안에서는 마리아 상을 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그대로 조각한 작품으로 마리아 어머니의 모습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으며 주님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절벽 꼭대기로 올라가면 정말 하느님의 창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낌을 받는다.

종교의 자유를 죽음으로 불사했던 많은 성인들의 신앙이 하느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면 세상에 많은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사랑과 희생을 한 성인들은 살아게신 주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 하는 것이 아닐까!!!

19세기 말에 캐나다 온타리오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에서 성지가 유래한다. 이 소년의 어머니가 여동생을 낳은 후에 건강이 몹시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동네 성당에 가서 동정 마리아님께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려 주시면 나중에 어른이 되면 교회를 위해 큰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성모님께 하였다.

이 소년의 간절한 기도로 어머니와 여동생은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 소년은 성모님께 바친 약속을 마음 깊이 간직하면서 신앙을 지켰다.

후에 Fr. Ambrose Mayer,OSM(암브로시오 메이어신부; Grotto성지의 창설자; 1883~1971)가 된다.

 

암브로시오 신부님은 젊은 청년시절 마리아의 종 수도원에 입회했으며,

1918년 포틀랜드 교구에 마리아의 종 수도원에서 첫번째로 부임하게 된다.

포틀랜드로 부임해 왔을 때 암브로시오 신부님은 소년 시절 성모님께 한 약속을 이루고자 동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

봉헌할 성지로 가장 적합한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 자신이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1923년 암브로시오 신부님은 유니언 퍼시픽 철도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수천 평의 임야부지를 찾아서 험하고 자연 그대로 전연 개발되지 않은 철도회사가 철로 침목용으로 돌을 캐내는 채석장이었는데, 마침 그 당시 주택용 부지로 매각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암브로시오 신부님은 이 땅에 성모님과 한 약속을 실천할 수 있다고 믿고 실천에 옮겼다.

 

하느님의 성지을 만드는 사업으로 교황 파이어스 11세의 "포틀랜드에 고통의 어머니 마리아 성지를 세우는데 물심양면으로 관대한 도움을 나눈 모든 이에게" 라는 친서를 통해

교황님의 사도적 특별 은사를 내리심으로서 이 곳에 성령 충만한 성지를 건설 할 수 있었다.

 

1923년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먼저 야외미사를 집전하는 이곳에 110피트의 현무암 절벽을 깎아 조형하고 돌 제단을 세우고 그 제단 위에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묘상을 세웠다.

 

1924년 5월 29일에 고통의 어머니 성지 축성을 위한 첫 미사에는 3천명의 신자들이 참석했으며, 그 날 성령충만 미사가 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크리스티 추기경은 다음의 기도로 강복하셨다.

 

"이곳이 서로간의 반목과 다툼과 고통으로 지쳐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적인 평화와  일치를 얻기에 적합한 평화의 성지가 되게 하소서."

현대에 많은 갈등과 화합에 적합한 성지로 

오늘날까지 이곳을 방문한 많은 순례객들은 한결같이 이 성지에서 미사와 기도를 드리며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예수님을 안고 계시는 고통의 어머니께 촛불과 성모님의 기도를 통해 마음에 고통과 갈등을 없애고 영적인 사랑과 평화을 깊이 체험을 느낄 수 있다.

14처에서 기도를 하면서 나의 어깨위에 성모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 어느 곳에도 체험하지 못하는 짜릿한 진동을 느꼈다.

성물 판매소에 들려 신부님의 자비의 손길을 맛보면서 묵주를 구입하고 호수가에 앉아서 하늘을 보았다. 하늘나라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하느님의 아름다운 성전이 보여주는 것 같다.

미사 집전하시는 신부님과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가슴으로 서로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신부님의 축성을 받고 순례길 따라 성모님의 동상과 산책 길을 걸으며 한국의 신자들이 올 여름 더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그리고 세계에 가난한 일을 위하여 평화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면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