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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착각


글 박경현(프란치스코)|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아들 라파엘은 내가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대생활이 더 편하다고 할 만큼 라파엘에게는 힘겨웠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주말이었다. 밤이 꽤 깊었는데 전화를 받던 아내가 부르르 떨면서 전화기를 나의 귀에 가까이 했다. 전화기 너머 술에 취한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리며 들려왔다. “엄마! 나 아들인데, 지금 술 한 잔 했거든, 죽을 것만 같아!” 아내는 금방 숨이 멎어 버릴 듯 헐떡거리며 쓰러졌다. 나는 놀랄 겨를도 없었다. 나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제자인 의사가 달려와 응급처치를 했지만 아내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뜩했지만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미 밤 10시가 넘었는데 주말이라 통행하는 차량이 줄어들지 않아 학교로 가는 길은 더디기만 했고, 금방이라도 전화벨이 울릴 것만 같은 초조함과 불안함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기어이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고야 말았구나.’ 평소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아이일수록 한 번 수렁에 빠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버지와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친구들로부터 들은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도 참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관심의 표현이라고 던진 선생님들의 말들에 크게 부담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학부모들이 가장 보내고 싶은 대구에서도 수성구의 그 고등학교 곁에 살면서 중학교 3학년 때 읍 지역에 위치한 학교로 전학을 하여 애비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시킨 것이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늘 애를 썼지만 우리도 모르게 과도한 기대와 체념을 앞세운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부모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는 자식으로서의 죄책감에 가슴에 불덩이 같은 것을 품고 있으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일이 다 못하고 혼자 외로워하다가 기어이 가장 좋지 못한 길에 발을 들여놓고는 빠져 나오지 못하고 혼자 괴로워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학교로 가는 동안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던 음성이 귓가를 맴돌며 온갖 추측들로 소름이 끼쳤다. 옆에 앉아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내는 온 정신이 빠져나가고 남은 것이라곤 껍데기밖에 없는 사람처럼 쓰러져 있었다. 나는 가능하면 학교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괜히 서둘러 학교에 확인전화를 했다가 아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것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토록 엄격하고 치열하게 지도해 오던 나의 이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함도 적지 않았다. 25년 넘게 매일 오가던 그 길이 이렇게도 멀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마치 몇 날 며칠을 달려온 듯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던 학교에 들어서니 평소와 다름없이 방범등이 곳곳에 켜진 채 온통 정적에 휩싸여 있었고 기숙사 아이들이 자율학습을 하는 도서관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아직도 우리 아이의 상황을 사감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안도가 되었다.

우선 침착하게 마음을 다독이며 기숙사 사감을 찾았다. 한밤중에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에 사감은 대뜸 ‘지금 자율학습 잘하고 있다.’며 묻지도 않은 아들의 안부를 먼저 전해 주었다. 사감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들은 갑작스러운 우리의 방문을 반가워했다. 아내는 아들을 얼싸안고 아무 일 없느냐고 몇 번이고 물었고, ‘갑자기 우리 아들이 보고 싶어서 왔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갔던 길을 되돌아오면서 그제야 내가 한 행동이 어떠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아들’이라는 말 한마디에 부모는 모든 이성이 마비되어 버린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학교에서 사기 전화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나의 주된 업무였다. 특히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님들에게 의심스런 전화를 받으면 사감이나 나에게 반드시 확인을 하도록 수없이 주의를 주곤 했다. 이런 훈계가 참으로 실천하기 쉬운 것으로 착각하고.

 

아들과 같은 학교에 있으면 가장 부담되는 것은 성적이다. 시험의 결과가 나올 때면 우리 부자는 더더욱 예민해진다. 성적에 관한 한 두 사람만 아는 비밀이고 싶지만 담임과 학년 부장은 물론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이 적지 않아서 늘 불편했다. 한창 성적에 대해서 민감했던 3학년 1학기 모의 학력고사가 있었던 날이다. 가채점 결과를 먼저 들여다 볼 수 있는 나는 아들의 성적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무거웠다. 담임선생님과 3학년 부장도 마치 자기 탓인 듯 가채점 결과를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침만 삼키고 시선을 피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적응에 힘겨워하던 라파엘이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시험 전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꼭 좋은 결과를 보여주겠다.’며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기회에 한 번 성적이 올라 주기만 한다면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은근히 기대했는데 가혹한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분주함이 일상인 하루 일과가 끝나고 텅 빈 교무실에서 혼자 떨어져 있는 내 책상 위의 형광등만 켜두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불 꺼진 교무실에는 어둠과 함께 정적이 내려 깔리고 있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갈 무렵 삐죽이 교무실의 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그리고 미안함과 실망감에 표정이 일그러진 아들이 조용히 내 책상 옆의 자리에 앉자마자 나한테 몸을 기대며 한참이나 있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소리로 “아빠, 위로해 주세요, 너무 속상해요!” 나는 울컥 눈물이 쏟아질 듯 몸이 뜨거워졌다. 들썩이는 아들 녀석의 야윈 어깨를 쓰다듬으며 “괜찮다, 괜찮아.” 이 말밖에 해 줄 말이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다. 혼자 추스르기에는 너무 힘겨워 교무실이 비어 있는 시간을 기다렸던 아들의 헝클어진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아빠, 퇴근해야지!” 남아 있는 자율학습 시간에 맞추어 어둠이 가득한 복도를 따라 종종걸음으로 되돌아가는 아들 녀석이 지나간 그 뒷자리를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인 내가 가장 힘들다고 여겼던 그 생각은 착각이었다.

 

명문대학교에 지원하였으나 불합격한 한 학생의 평범한 상황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성적이 최상위권이었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부모님의 기대를 안고 내가 근무하던 학교로 진학을 해왔다. 합격선이 제법 높은 고등학교는 중학교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 아이는 잘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의 공부 습관으로 대처하다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서 당황했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자신감도 같이 떨어져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 그로 인해 성적은 더 떨어지는 전형적인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중학교와는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게 될 부모님의 엄한 추궁이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기대에 버금가는 성적을 거둘 때까지 성적표를 부모님의 손에 닿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그 기간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이어졌다. 자신의 현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부모님에게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늘 말로만 전하며 성적표에 대해서는 얼버무리며 위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성적표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최상위권 성적이라는 아들의 말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방황을 하면서 보낸 그가 대학입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수학능력시험의 성적은 당연히 바닥이었다. 이제 더 이상 퇴로가 막혀 버린 이 녀석은 이미 익숙해져 죄책감도 없이 ‘성적이 잘 나와서 명문대학교에 응시한다.’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대학 면접 당일에도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보냈던 것이다. 성적은 충분했지만 기준이 불명확한 면접에서 실패한 것으로 부모님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처럼 노골적으로 방황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생활을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하는 듯 보이지만 내적으로 곪아 터지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시험 관리가 엄격한 내신 성적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감독이 느슨한 모의고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기 성적 이상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평소 모의고사 점수도 내신 성적에 비해 월등하게 좋았고 수학능력시험 가채점의 결과 전교의 몇 손가락에 들 만큼의 성적이라고 말했지만, 스스로 채점한 점수보다 턱없이 낮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는 정답카드의 마크를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얼버무렸던 이 아이의 속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학습태도는 언제나 반듯하게 보이지만 무언가 불안해 보였고, 모의고사 시험이 있을 때마다 좌석배치가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아이의 곁이었다. 가끔씩 내 전공과목인 수학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모의고사 성적이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 아이를 추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기에 역부족이었던 이 아이에게 다른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부모가 엄격할수록 자식을 반듯하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학생들의 폭력, 도벽, 게임중독, 우울증과 자살 등의 현상은 부모의 일방적인 엄격함이나 무관심에 그 원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씻고, 간식 먹고, 숙제해놓고, 학원 갔다 오고, 텔레비전이나 게임에 몰두하지 말고 독서나 하다가 자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성적이 떨어지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리도록 다그치고 비싼 과외 붙여주면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고, 돈 버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해주는 밥 먹고 사주는 옷 입고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걱정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잘못을 지적하고 좋은 말로 훈계하면 아이들은 행동이 바뀔 것이라고, 아이들은 아직도 생각이 얕기 때문에 인생을 길게 살아본 부모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면 행복이 올 것이라고….

우리는 부모로서 정말 해서는 안 될 너무도 많은 착각을 하고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이러한 부모님들의 착각으로 인한 강요가 아이들을 한없는 외로움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해 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떠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편에 서 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우리 부모들이 해야 하는 일은 매일 매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대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이렇게 살지만 너는 결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이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 어른들이 해서는 안 될 무책임한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