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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우리 마음속 공간…


글 이관홍(바오로) 신부|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주일마다 가톨릭 근로자 회관은 이른 아침시간부터 발디딜 틈 없이 많은 이주민들이 모여들여 알아듣기 어려운 다양한 언어들로 왁자합니다. 주일 미사 참례를 위해서, 그리고 의료실 과 송금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회관을 찾는 이주민들도 많지만 그저 일주일에 한 번, 휴일에 고국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회관을 찾는 이주민들도 많습니다.

한 주 동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친구도, 공간도 없이 공장에서 일만 하다가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마음속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일 오전 근로자 회관은 베트남어, 영어, 타갈로그어, 네팔어, 러시아어 등으로 수다(?) 떠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미사 시작 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손을 붙잡고, 뺨을 비비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미사 후에는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거나 계단에 쪼그려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처음에는 이 분위기가 소란스럽게 느껴지고 어색했습니다. 특히 미사 전에는 조용히 하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한 주 동안 편하게 모국어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언어적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이주민들을 생각해 보니, 그들이 왜 주일에 근로자회관에 모여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나누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주일 오후 대안성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사 시작 한두 시간 전부터 필리핀과 베트남 이주민들이 모여듭니다. 성모상 앞 벤치에 앉아서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미사 후에도 마찬가지이지요. 미사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그들의 이야기 소리는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이주민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위한 “공간”이 부족함을 자주 느낍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자기 나라의 말로 눈치보지 않고 편하게 나눌 공간이 없기에, 주일에 성당에 나와서 끊임없이 수다 떠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주민들에게 참으로 미안할 때가 있습니다. 역시 “공간”의 문제입니다. 가톨릭근로자회관에는 베트남 공동체 사무실 1개소, 필리핀 공동체 사무실 2개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공동체 모두 사무실이 좁아서 더 큰 사무실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자주 이야기들을 합니다. 하지만 근로자회관에는 더 이상의 공간이 없어서 늘 미안하다고, 조금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성탄이나 부활, 그리고 특별한 축일이나 행사가 있는 날이면 공간은 더 부족합니다. 근로자회관 강당이나 대안성당 강당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시간적인 제약과 많은 인원들이 함께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주민들을 위한 공간은 극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름 휴가철, 이주민 공동체에서 함께 야유회를 가는 것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한국 사람들의 무시와 천대를 감수해야만 하고, 워터파크나 놀이공원에서는 동남아 사람들이 단체로 이용하는 것을 꺼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고 하지만 이처럼 이주민들이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을 보면 아직까지 한국 사람들의 다문화에 대한 의식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시리아 난민 사태 이후 이주민들과 난민들에 대한 환대를 부쩍 강조하시면서 로마의 각 본당과 수도원에서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그리스 난민촌을 방문하시고 귀국하실 때는 무슬림 난민 가족들과 함께 로마로 돌아오시기도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이주민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환대한다는 것은 바로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주민들의 땀과 눈물, 기쁨과 희망을 깊이 공감할 때 우리는 이주민들을 진정으로 우리의 동반자,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들을 위한 공간 역시 자연스럽게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베트남 이주민이 고국의 주보축일 행사 때 저에게 베트남 음식과 술을 권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 베트남 사람들 말도 잘 듣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자리 자주 만들어 주십시오.” 저는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만이라도 이주민들에게는 편한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 저 역시도 이들에게는 회사의 사장처럼 느껴지고 잘 보여야만, 열심히 해야만 자신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리라는 생각을 심어 주지는 않았나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이주민들을 비롯하여 세상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습니까? 내 자신을 위한 공간, 내 가족들을 위한 공간만을 생각하며 살기보다 우리 마음속에 타인들을 위한 공간도 만들어 가면서 진정으로 힘없고 약한 이들이 이 세상에서 조금 더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함께 창조해 가도록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