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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기
음식(food)


글 이관홍(바오로) 신부|가톨릭근로자회관 부관장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종종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던 프랑스나 독일 출신 신부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선교사 신부님들 역시 이주민이었기 때문에 선교사 신부님들의 한국 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 웃음을 짓게 하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을 짠하게 하기도 합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오신 신부님들에게 가장 큰 곤욕은 신자들이 정성껏 준비해서 대접하는 개고기였다고 합니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개고기가 일종의 혐오식품인데 신자들이 준비한 정성을 봐서 거절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먹다보니 그 맛을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선교하신 신부님들뿐만 아니라 외국 생활을 오래하신 한국 신부님들 역시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는 한 가지씩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귀하게 구한 라면의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너무 먹고 싶어서 끓여먹었다는 이야기, 외국에 가니 김치가 냄새나는 혐오식품이었다는 이야기, 한국 음식이 너무너무 그리웠다는 이야기들은 우리 삶에서 먹는다는 것, 음식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러한 음식의 소중함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사실 내 나라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내 나라 사람들의 방식으로 요리해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삶의 큰 활력소가 되기도 합니다. 한 인간이 다른 나라로 이주하여 살아 간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의 이동이 아니라 문화의 이동이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문화를 가지고 이동한다는 것이고, 고국에서의 삶을 타국에서도 영위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문화 안에는 ‘음식’이 포함되고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주민들이 겪는 문화적 차이에 의한 어려움 가운데 음식으로 인한 어려움이 꽤 많습니다.

    

필리핀에서 온 어느 결혼이주여성이 많이 아파서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병문안을 가기 전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꼭 사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혼이주여성은 필리핀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필리핀 식품점에 미리 주문을 해서 어렵게 필리핀 음식을 가져갔더니 너무 오랜만에 먹는 필리핀 음식이라면서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집에서는 필리핀 음식을 요리하지도, 먹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 음식 냄새를 싫어하는 데다가 특히 기름기가 많고 짜서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이라고 싫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운 고국의 음식을 집에서 편안하게 먹지 못하는 그 결혼이주여성이 참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일에 근로자회관이나 대안성당에 고국의 음식을 싸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작은 통에 담아오거나 비닐 봉지에 필리핀이나 베트남 음식을 담아 와서 나누어 먹곤 합니다. 종종 미사 후에 준비하는 간식도 필리핀이나 베트남 음식을 준비해 와서 나누어 먹습니다. 때로는 저에게 듬뿍 담아주는 필리핀이나 베트남 음식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개고기를 드셔야만 했던 프랑스, 독일 선교사 신부님들을 생각하며 입에 맞지 않아도 기쁘게 먹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맛있다고 어떻게 요리했냐고 물어보면 어김없이 다음 주 또는 주중에 그 음식을 요리해서 저에게 가져다주곤 합니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이주민들 행사에 초대받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초대를 할 때면 어김없이 어떤 필리핀 요리를 좋아하는지, 어떤 베트남 요리를 좋아하는지를 묻습니다. 본인들 방식대로 본인들이 좋아하는 필리핀, 베트남 요리를 하면 될 텐데 한국 사람들의 입맛이 자기네들의 입맛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배려해 주는 마음에서 물어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배려 받아야 하는 이주민들이 배려해 준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따뜻해지고 산해진미를 먹은 것처럼 포만감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의식주, 특히 먹는 것은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몸이 아플 때, 고된 일을 할 때 본인이 좋아하는 간단한 음식을 하나 먹는 것만으로도 고향의 향수를 달랠 수 있고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들이 이주민들에게는 큰 사치가 되기도 하고, 고국에서는 참 쉬웠던 일들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그들의 삶입니다. 이주민들의 이러한 어려움들, 특히 의식주를 비롯한 문화적 차이를 겪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가지셨던 연민의 마음을 가져본다면 우리는 조금 더 참된 신앙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