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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
모범생


글 박경현(프란치스코)|포항 오천고등학교 교장, 진량성당

 

모교인 무학고등학교에서의 첫 제자가 학교에 들렀다. 졸업 후 31년이나 지나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되어 나타났지만 나의 눈에는 여전히 여고시절의 그 모습들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들의 여고 시절에 나는 26세의 총각 수학 선생님이었다. 남녀공학이었던 모교에서 첫 인연을 맺은 이 제자들과 만나면 지금도 화제가 일정하다. 남학생들은 두들겨 맞았던 이야기이고 여학생은 ‘누구누구가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생각만으로도 풋풋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마주보고 떠들다 돌아갔지만 세월과 함께 묻어 두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무학고등학교를 1회로 졸업한 우리 동기들은 전통도 선배도 없는 고등학교의 새로운 길을 더듬어 살아가면서 숱한 사연들이 끊이지 않았던 탓에 ‘1회 졸업생’이라는 높은 계급장이라도 단 사람들처럼 가슴 속에는 무학의 푸른 피가 흐르는 자부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선배이자 교사로 부름을 받은 내가 두 개의 완장을 양어깨에 매달고 남다른 열정과 객기로 근무를 시작한 첫 해의 일이다.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지도를 마치고 늦은 퇴근을 하는데 교문 옆 골목에서 신작로로 나오려던 아이들 세 명이 먼발치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 멈추는 것을 보았다. 비록 어두운 골목이었지만 한눈에 대충 짐작이 가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급히 어정쩡하게 서서 머뭇거리는 아이들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나의 움직임을 확인한 아이들은 얼어붙은 듯 멈췄다. 하늘보다 더 높은 선배인 교사로서 악명이 자자했으므로 이들의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무단으로 빠지고 어디에서 막걸리 한 잔을 마셨는지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진동하는 세 녀석은 숨을 멈추고 눈알이 튀어 나올 듯한 두려운 눈으로 나와 마주했다. 자율학습 출석을 점검하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내일 아침에 두고 보자.’고 작심을 하고 있던 아이들과 이렇게 너무 빨리 맞닥뜨린 것이다. 오늘 중요한 모의고사가 있었고 그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마음이 상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처신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므로 더 이상의 변명을 들을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참을성의 한계를 순식간에 넘어 버린 나는 요즈음 같으면 폭력교사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도 “내일 등교하는 대로 진학실로 와!” 하는 추상과 같은 외마디를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거리며 내 갈 길을 서둘렀다.

 

밤은 이미 까맣게 깊었고 안개비가 내리는 늦가을 날씨가 더 쌀쌀하게 느껴졌다. 이들은 성적이 우수하고 행동도 반듯한 일반적인 모범생들과는 거리가 먼 유형의 아이들이다. 성적만 따진다면 최상위권이지만 교칙이라는 잣대만 들이대면 그 순위가 중간도 안 된다. 멋진 훈계와 상담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흘려듣고 체력은 돌덩이 같아서 한 대씩 얻어맞는 것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 지도의 수단이 마땅찮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넘쳐서 돌아서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어도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자기 주장이 강하여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통제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앞이라 하더라도 무작정 순종하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겁 없이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을 던지기도 하여 버릇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또래 집단에서 의리를 중시하여 친구들을 가려 사귀지도 않고 책임을 피하지도 않아서 학생부에 자주 불려오기도 하는 아이들이다. 우수한 성적이 아까워 내려놓지도 못하지만 장악하기도 쉽지 않은 이런 아이들을 많은 선생님들은 버거워하며 부적응아나 문제아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아이들과는 늘 정면 대응을 했다. 나무랄 일이 있으면 피하지 않았고 마음을 읽으며 한 발짝 다가가기 위해서 애썼다. 그래서 평소에는 교사와 제자라는 엄격한 관계이기 보다는 편한 선후배로 격이 없이 지내려고 마음을 쏟기도 했다. 비록 행동은 절제되지 않았지만 촌 머슴아들의 투박하고 꾸밈없는 성격이 매력적이고 선생님 앞이라 겉으로 머리는 조아리며 내숭을 떠는 아이들보다 편했다. 게다가 ‘선생님들은 공부 잘 하는 아이들에 대한 편애가 심하다.’는 선입견을 해소하는 데에는 이 아이들이 적격이다. 규정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거칠게 다룰 수도 있고 돌아서면 툴툴 털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고 길고 지루한 훈계보다 엉덩이 들이미는 모습에 정이 간다. 그래서 넘치는 에너지를 공부에 조금만 더 쏟아 준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하기 위해 틈만 나면 격려와 칭찬을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도저히 용서되지 않을 것 같은 허물들도 눈감아 주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결정하고픈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강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무작정 윽박질러서 굴복시키려고 하거나 그들이 툭 던지는 말이나 즉흥적인 행동에 흥분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안 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수업시간에 자주 졸고 시험기간에도 빈둥거리며 성적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목표에 대한 성취 욕구도 남다르며 마음을 다잡는 순간에는 집중력이 무서울 정도다. 결과가 계획에서 빗나가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고 강하게 표출하는 경우도 많다. 내면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신중하게 하는 일반적인 모범생들과는 정반대의 행동양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착실하고 모범적인 사람은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요가 깔려있는 학교생활이 이들에게는 때때로 숨막히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마음껏 뛰어 다닐 수 있는 넓은 들판이 필요하다. 오늘 같은 날 이들은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며 도서관에 숨죽이고 앉아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든 것이 당연하고 내일 맞는 한이 있어도 자제할 수 없는 열기를 발산해야 한다. 그래서 이심전심으로 평소에 서로 의지하고 지냈던 세 사람은 그렇게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서너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도원결의라도 다지듯 서로 기대어 두려움과 함께 가슴 속의 응어리를 토해 냈을 것이다. 그날의 자율학습 감독 정도는 파악했을 것이고 어차피 걸리면 순순히 넘어갈 것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규칙을 어기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기며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관점에서 보면 이 아이들은 일벌백계의 단호함이 정당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선배로서 모교에 근무하면서 학교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리화하면서 마음을 다독여 보았지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그 아이들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오늘 나의 방식이 아이들에게 큰 두려움을 주어 자신의 행동을 일거에 바꿀 리 만무하다면 나의 행동은 그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선배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좀더 여유롭게 우리만 아는 비밀로 남겨두며 웃어넘기는 아량을 보이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평소에는 마치 이런 행동조차도 잘 이해해 주는 형처럼 말해 놓고 배신자처럼 행동한 것은 아닌지,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에도 정신은 더 또렷해지고 머리는 무거워졌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되짚어 보면 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인 친구들의 일탈에 대해서 모른 척 눈감아 주신 선생님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 때문에 행동을 고치려고 애쓴 기억들이 그제야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니 내일 아침이라도 아무 일 아닌 듯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주고 넘어가야지 하며 잠을 청하려는데 누군가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깜짝 놀라 문을 열어젖히니 세 명의 아이들이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다가가 녀석들을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이 내 방을 떠난 것은 새벽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십 리가 넘는 밤길을 걸어 심야에 그렇게 찾아온 잊히지 않는 일화로 유명해진 그 세 명의 제자는 현재 초등 장학사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로, 그리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고급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때때로 우리가 원하는 행동방식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른들의 말이니까 동의하는 듯 행동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행동을 선택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모범생이라 정의한 조건들을 가끔씩 생각해 본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 모범의 조건일 수 없다.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척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라기 위해서 흔들리는 것은 건강한 모범생의 조건이어야 한다. 흔들리는 것에 너무 민감하고 내 아이만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자라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기대로 인해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