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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내 마음은 어디에?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실장

 

책을 읽다가 문득, ‘방금 읽은 부분이 무슨 내용이었지?’ 하며 앞부분을 다시 읽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딴 생각에 빠져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놓칠 때도 있지요. 강의나 강론을 듣다가 다른 생각하느라 그 시간을 통째로 날려 버린 경험도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내 ‘마음’이 딴 데 가 있어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오감(五感)으로 외부의 상황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시각으로 보고, 청각으로 듣고, 후각으로 냄새 맡고, 미각으로 맛보고, 촉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감각을 주관하고 받아들여 인식하고 판단하는 것은 뇌의 작용이지요.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함께하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내 마음이 근심걱정으로 가득 차 있거나,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거나, 여행이나 신나는 일을 앞두고 마음이 들떠 있다면, 그래서 내 마음이 ‘지금, 여기’에 붙어 있지 않고 다른 데 가 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충실할 수가 없겠지요. 『대학(大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1)

성경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지요.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사도 28, 26-27)

우리 몸은 지금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기 싫은 학교에 가서 억지로 수업을 듣거나,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줘야 하거나, 재미없는 기도 시간이나 미사 시간에 억지로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거나…. 내가 바로 지금, 내 몸이 있는 이곳에 마음도 함께하며 이 시간에 충실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지금 여기에 발붙이지 못하고 늘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그것도 제대로 된 삶이 아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 21) 이 말씀은 바꿔 보면 이런 뜻이겠지요. “너의 마음이 가 있는 곳에 너의 보물이 있다.” 여러분이 지금 보물이라고 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고 싶다면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가 있는 곳에 여러분의 보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보물은 ‘지금, 여기’ 있는데, 우

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있는데 우리는 엉뚱하게도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요. 신기루같이 잡으면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욕심에 마음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요.

 

1) 『대학(大學)』,「정심장(正心章)」.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