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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실장

 

건물 벽에 큰 글씨로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고 쓴 광고판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일간신문이나 주간지 광고 면을 봐도 작명소 광고에 이름을 잘못 지어 운명이 안 좋아졌다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을 보고는 합니다.

‘이름’, 참 중요합니다.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이 평생 동안 불리는 것이니 누구나 신중하게 아기의 이름을 짓습니다. 의미도 훌륭해야 하지만 부르는 어감도 좋아야 하지요. 제가 동양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작명에 대해서 물어보고는 합니다. ‘어느 점쟁이가, 어느 스님이 우리 아이 이름이 잘못되어 큰일난다고 하는데 어떡해야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이름을 함부로 짓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이름을 잘못 지어 빨리 죽는다든지 사업이 잘 안 된다고 사람들을 겁주는 사기꾼 같은 작명인들의 행태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음양오행설이나 명리학의 전문가들도 말하기를, 운명을 들먹이며 사람들을 겁주거나 누군가가 잘못되기를 바라며 저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사이비(似而非)라고 합니다.

‘이름(名)’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러니 아이가 태어나면 가족들이 모여 앉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민해서 지어주는 이름이 최고의 이름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름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름대로 사느냐 못사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이름을 갖습니다. 직접 불리는 이름 외에도 직업이나 신분에 맞는 이름이 주어집니다. ‘아버지’, ‘어머니’, ‘부장님’, ‘학생’, ‘아들 딸’, ‘수녀님’, ‘선생님’, ‘레지오 단장님’, ‘반장님’, ‘사장님’, ‘대통령’ 등등. 이름은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이 뒤따라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름이 바로 서는 것입니다.

공자는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가 이름이 바로 서지 않아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름(名)을 바로 세우면(正) 혼돈의 세상이 올바로 다스려질 것입니다. 어느 날 제자인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정치를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자, 공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1)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이름(名)과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질(實)이 서로 부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명실상부(名實相符)”입니다.

 

제나라 경공이 공자께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운 것입니다.”2)

 

위령성월을 맞았습니다. 죽음을 묵상하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시기입니다. 위령성월을 시작하며 왜 ‘이름’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우리의 삶이란 게 결국 얼마나 이름값을 했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 묘지에 가서 거기 적힌 분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 봅니다. 그분들은 모두 그 이름으로 불리며 사제로서 생을 사셨습니다. 이름은 그분들의 삶을 드러내 알려줍니다. 이름값을 한다는 것,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재(實在)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 모릅니다.

함부로 지어진 이름이란 없습니다. 이름대로 살지 못하는 삶이 있을 뿐입니다.

 

1) 『논어』, 「자로」, 3. “必也正名乎.”

2) 『논어』, 「안연」, 11. “君君, 臣臣, 父父, 子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