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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부당청구 과태료 500만 원!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카리타스복지교육센터 소장

 

 “부당청구 과태료를 500만원 내라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대여섯 해 전 대구 시내에서 수발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방문해 도와드리는 일을 하는 방문요양센터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보면서 사무국 직원들이 주고받은 말이다. 한 가정을 방문해 어르신 목욕을 시켜 드리려는데 한사코 방문목욕용 욕조에는 들어가려 하지 않고 당신이 평소에 목욕하던 큰 대야에서 목욕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한참을 씨름하다 큰 대야에서 목욕을 시켜드렸는데 점검 온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그것을 알아내어 부당청구라고 한 것이다. 규정된 욕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목욕을 시켜 드렸기 때문이다.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을이 갑을 이길 재간이 없다. 행정소송을 하려면 과태료보다 비용이 더 들 수 있고, 이긴다고 해도 뒷감당이 안 된다.

작년에 진주에서는 더 답답한 일이 있었다. 53년간 그 지역에서 무의탁 어르신, 장애를 가진 사람,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성심원이 2008년 장기요양제도가 생기면서 프란치스코 노인전문요양원으로 바뀌어 수발이 필요한 어르신을 모셨다. 2015년 3월 진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현지조사를 나왔다. 현지조사 과정 중 요양보호사를 못 구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주방 조리원이나 위생원을 요양보호사로 등록했고, 요양보호사가 조리원이 없는 기간에 주방에서 밥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경우를 전문용어로 ‘장기요양기관 인력배치기준 위반’이라고 한다. 밥을 할 사람이 없어 다른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밥을 한 대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3억 1천 8백만 원을 환수하겠다고 했다. 진주시는 그 금액에 따라 프란치스코 전문요양원에 82일간 업무정지 명령을 내렸고, 이를 피하려면 환수금의 5배인 16억 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결국 이 요양원을 운영하던 작은 형제회는 시설을 폐쇄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현지조사를 하는 방법도 고압적이다. 조사 받는 시설에 현지조사팀이 오면 한쪽에서는 출근부, 급식일지, 시설일지 등 관계 장부를 대조해가며 어긋나는 곳이 없는지 찾고, 다른 한쪽에서는 몇 명의 직원을 무작위로 지목해서 출근부터 퇴근까지 한 일을 낱낱이 이야기하거나 적도록 한다. 만약 일치하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나오거나 자기 고유 업무 외에 다른 일을 도와준 적이 있으면 인력배치기준 위반이고 부당청구가 된다. 사정이 그러니 장기요양시설이나 기관에서는 한 직원이 법에 따라 하도록 규정된 일 외에는 업무와 관련이 있어도 지시하거나 도와달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했다면 현지조사를 왔을 때 직원들에게 말맞추기 거짓말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수발이 필요한 어르신이 있는 가정에서 어르신을 장기요양시설로 모시려고 하면 필요한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요양병원은 많다. 그런데 병원은 질환이 있는 사람이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것을 목적으로 지어졌고,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대개 그렇게 생각한다. 요양병원은 오래 거주하며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요양원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요양원에 쉽게 가려면 여성 어르신이라야 한다. 남성 어르신이라면 체격이 작고 가벼워야 한다. 이도저도 안 되면 늘 웃는 인상, 편안한 목소리, 고분고분한 성격 정도는 갖추어야 요양원에 ‘합격’할 수 있다. 장기요양 수가는 그 어르신이 수발을 필요로 하는 정도와 치매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체중 40kg에 신변처리는 스스로 하려 하시고 다른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친절한 할머니이든, 체중 85kg에 일상의 모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야 만족하는 할아버지라도 장기요양등급이 같으면 동일한 수가를 적용 받는다. 이런 경우에 요양원에서 어떤 어르신을 모시고 싶어 할까?

   정부와 언론이 장기요양보험과 관련해 가장 자주 다루는 주제는 부정수급이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2015년도에 1,028개 요양기관을 현지 조사해 조사받은 기관 가운데 75.3%인 774개 시설에서 부정이 드러났으며, 그 부정금액도 235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정부는 의료계와 사회복지계의 부정수급을 뿌리 뽑기 위해 부정수급 신고포상제도를 만들고, 보건복지부에 특별사법경찰권을 가진 조사단을 설치하는 등 감독과 통제 중심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마저 이런 상황에서 이미 시장화된 장기요양사업은 교회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이 분야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면 가톨릭신자인 어르신이 신앙생활을 하며 노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익과 편리함만 추구하는 개인의 부정과 나태 탓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그 환경이영향을 받는다. 그 때문에 사회제도, 정책, 그리고 정책을 집행하는 방식도 개인이 인간의 근본 본성에 따라 행동하기 쉽도록 바뀌어야 한다.

사회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은 ‘공동선(The common good)’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26항에서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자기 완성을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로 정의한 공동선은 인간의 자기완성, 곧 인간다운 삶을 더 쉽고, 더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사회 환경을 바꾸어 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를 앞의 예에 적용하면 어르신은 지역, 종교, 문화를 비롯해 지금까지 살아 온 일상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장기요양기관이 지역에 있고, 가족이 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어르신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장기요양기관 근무자가 어르신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일을 찾아 실천할 수 있으려면 통제보다 지원, 감독보다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장기요양기관이 경제적 효율성과 어르신 조건과 관계없이 모든 어르신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수가정책도 필요하다. 장기요양기관에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한 감독과 조사 이전에 무엇이, 왜 부정수급이 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장기요양기관도 국가와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기정화 노력을 해야 한다. 공동선에 관한 교회 가르침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해당 문제에 가까이 있으면서 인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의지와 필요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평신도 사도직 교령』 2항은 그리스도인은 “복음화와 인간 성화에 힘쓰며 현세 질서에 복음 정신을 침투시켜 그 질서를 완성하도록 노력”함으로써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한다고 했다. 현세 질서에 복음을 침투시킨다는 표현은 우리 각자가 일하고 사는 곳에서 모든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 스며들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여기에서 질서란 그런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관습, 규범, 법률, 제도, 정책 등을 의미한다. 결국 복음화와 공동선, 그리고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는 일과 어르신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직업생활은 분리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