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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사목을 하며
또 다른 아픔이 있는 이들


글 정진섭 도미니코 신부 | 교구 병원사목부 담당

 

병원에서 돌봄이 필요한 이들은 환우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돌보고 있는 가족들도 돌봄의 대상입니다. 이번 달 저는 여러분들과 환우들의 가족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가족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가족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서로에게 누구보다도 크게 영향을 주죠. 그러기에 가족 중 한 사람의 아픔은 가족 전체의 아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환우들의 삶이 병으로 인해 변화되는 것처럼 가족들의 삶도 그로 인해 바뀌어 갑니다. 의사에게 병명을 들었을 때 환우들 다음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은 가족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집니다. 두렵기도 합니다. 당사자에 대한 걱정도 큽니다. 연민의 마음도 일어납니다. 믿기지 않아 부정해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런 여러 가지 마음으로 혼자 눈물을 훔치는 나날이 많아집니다. 그래도 아픈 사람을 생각하며 참고 참으며 용기를 가져보려 합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집에서의 삶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환우들을 돌보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기도 하고 일자리를 옮기기도 합니다. 아픈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 씻는 것도, 먹는 것도 포기하게 됩니다. 잠도 푹 자지 못합니다. 편한 잠자리를 포기하고 환자 옆 보호자 침대에서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아픔을 호소하는 환우들을 위해 깊이 잠들지 못하죠. 간병을 도맡아 하지 않는 다른 가족들의 삶 역시 우울하고 불안합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일상생활을 하고 있지만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됩니다. 환자의 상태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예민해집니다.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의 이야기 하나하나,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쓰게 됩니다. 때로는 환우들보다 더 그렇기도 합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00병원에서 봉성체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봉성체를 하는 마지막 환우인 것 같아 원목 수녀님께 “이 환자가 마지막이죠?”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봉성체를 마치고 보호자가 “마지막이 무슨 뜻이에요?”라며 걱정 어린 시선으로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설명해 드렸고 그제서야 보호자는 안도의 한숨을 돌리셨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환우들과 가족들 앞에서는 말 한마디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의 삶의 모습도, 마음의 상태도 다 변화됩니다. 기존의 삶의 방식은 무너져 버리고 더욱 예민해진 마음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을 크게 짓누르는 감정은 아버지를, 어머니를, 내 남편을, 내 아내를, 아들을, 딸을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입니다. 환우들과 가족들은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걱정합니다. 0.1%의 확률이라도 혹시나 잘못될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환우들과 가족들의 여정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우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통의 여정,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여정을 가족들도 똑같이 느끼고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 잠시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그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의 병명을 알고부터 생업을 포기하고 아내 옆을 지켜 오셨습니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두렵지만 아내에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한 자매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자신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한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딸에게 고맙고, 사랑하고, 미안하다고 꼭 이야기 해 주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환우들과 또 다른 아픔을 겪고 계시는 가족들… 어쩌면 ‘힘든 사람 앞에서 힘든 내색 하면 안돼.’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아픈 마음을 숨기고 억누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여러분의 가족을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힘듦과 어려움, 아픔 때문에 가족들 한 명 한 명의 힘듦과 어려움, 아픔은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닌지 하고 말입니다. 나의 기쁨은 가족들에게 또 다른 기쁨과 행복한 일이 됩니다. 나의 슬픔과 아픔은 가족들에게 또 다른 슬픔과 아픔이 됩니다.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아들, 딸의 얼굴들… 나로 인해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을 때, 말을 걸 수 있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들도 여러분들과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