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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그의 몫을 돌려주는 일, 참여(Participation)


글 도건창 세례자요한 | 꽃동네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카리타스학과 교수

 

“나도 미쳤지, 내가 이게 무슨 꼴이고!”

본당사회복지위원 교육 도중에 한 어르신께서 당신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하셨다. 그분은 오랫동안 이웃에게 밑반찬을 가져다 드렸는데 며칠 전 너무 속이 상했다고 하셨다. 어르신이 방문하는 집 가운데 아파트 4층에 사는 집이 있는데 밑반찬을 가지고 가도 그 집에 사는 분을 통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 밑반찬을 가지고 갔다가 한 할머니가 그 아파트 문 앞에서 다른 분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셨다. 계단 아래에서 잠시 쉬면서 쳐다보니 그 할머니가 집주인이고 손님은 어르신과 마찬가지로 밑반찬을 전해주러 오신 분 같았다.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의 연세가 당신과 비슷했고 건강은 오히려 더 나아 보이는데 여러 곳에서 밑반찬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셨다. 손님이 가고 난 뒤 할머니에게 그동안 ○○성당에서 밑반찬을 가져다 드린 사람이라고 인사하면서 열린 현관문을 통해 안쪽을 보니 거실에 다른 곳에서 보내온 밑반찬 보자기가 두 개 더 있었다. 속이 상한 그 어르신은 “보니 이 집은 밑반찬 안 갖다 줘도 되겠네요.”라고 불쑥 내뱉었고, 상대방도 “그러면 그렇게 하이소. 누가 언제 갖다 달라 했나? 자기들이 가지고 왔지!”라고 대꾸했다. 그 말에 마음이 많이 상한 어르신은 두말없이 들고 간 밑반찬을 가지고 와 버렸다. 계단을 내려오며 ‘자기나 내나 연배도 비슷하고 몸은 나보다 더 생생한 것 같은데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남한테 반찬 얻어먹고 그러네. 나도 미쳤지. 저런 사람한테 반찬 전해주려고 아픈 다리를 끌고… 잘하는 짓이다! 본당사회복지위원장도 집안 사정을 제대로 알아보기나 하고 부탁하지. 나이 든 사람이 이게 무슨 꼴이고!’ 하면서 실컷 원망했다고 하셨다.

어르신의 마음이 상한 것도 안타깝고 나눔을 통해 당사자가 소중한 주인공인 자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사랑실천이 도리어 상처만 주고받게 된 것도 안타까웠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 아니 어떻게 하면 두 분이 다 만족하고 기뻐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을까?

두 분이 평소 서로 마주치면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사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전에 밑반찬을 받는 할머니께 당신이 꿈꾸는 생활은 어떤 것이며, 스스로 하실 수 있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여쭈어 본 다음에 필요한 도움을 찾았어도 이미 여러 곳에서 받는 밑반찬을 또 요청했을까? 봉사하는 어르신께서 밑반찬 배달이 할머니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계셨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밑반찬 배달을 받는 할머니와 배달하는 어르신이 어떤 반찬을 언제, 어떻게 전달하고 받을지 의논해서 함께 결정했다면 두 분이 다투셨을까? 반찬을 배달하던 어르신이 합의를 할 때에 당신 사정을 설명하고 할머니께 1층에서 밑반찬을 받아주면 고맙겠다는 부탁을 할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물음에 대답을 하다가 밑반찬을 받던 할머니도, 밑반찬을 갖다 주던 어르신도 당신이 관련된 도움 관계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 모두 이 관계에 참여하는 사람, 도움의 필요성과 방식에 관해 알고 의견을 나누며 함께 결정함으로써 능동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도움 전체 과정에 당사자는 물론 모든 관계자에게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사랑 실천 활동을 통해 당사자가 자신이 처한 곤경이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모상답게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당사자가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공이 되고, 다른 사람들도 도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게 도우려면 첫째, 항상 당사자에게 여쭈어 보아야 한다. 도움을 계획하기 전부터 당사자에게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어떤 것인지 여쭈어야 한다. 질문을 받고 대답할 때 사람은 이미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인공이 된다. 당사자는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도움을 일정 부분 스스로 결정한다. 도움을 실제 제공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약속한 도움을 제공하고 그것을 같이 돌아볼 때에도 당사자에게 반드시 여쭈어 보아야 한다.

둘째, 필요한 정보를 그에게 맞는 방식으로 전해주어야 한다. 잘 여쭈어 보려면 당사자가 결정에 참고할 수 있는 중요 정보를 함께 찾거나 알려주어야 한다. 정보는 가능한 한 당사자가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주어야 한다. 당사자에 따라 말로 하는 것이 나을지, 글로 하는 것이 나을지, 글씨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당사자가 익숙한 단어나 문장은 어떤 것인지 고려해야 한다. 제공할 정보의 내용이 복잡하면 무엇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 정보가 중요한지를 설명해 줄 필요도 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이기 때문에 먼저 당사자가 ‘아는 사람’, ‘친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셋째, 함께 의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함께 의논하기는 당사자 의견을 여쭈어 보는 것과 당사자 의견과 다른 자기 의견이나 사정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넷째, 모든 도움 과정에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부탁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자기 역할이 있을 때 당사자가 도움 과정에 주인공으로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맡아야 하는 책임의 범위를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넓혀가는 방향으로 도움 관계가 발전해가야 한다. 도움관계에서 당사자 참여를 위한 노력은 더 쉽게 도와주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당사자와 도움을 주는 사람 모두 도움 관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참여는 “인간 존엄성의 표현이며, 인류 공동체에 대한 공동책임”이다.

국제카리타스는 참여(Participation)가 “인간 존엄성의 표현이며 인류공동체에 대한 공동책임”(『국제카리타스윤리강령』 원칙 3. 참여)을 의미한다고 보고 가톨릭다운 사랑실천을 위한 원칙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참여가 인간 존엄성을 위한 표현이 되는 이유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누구의 말에 따라 이해하며 행동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이해한 다음에 그에 따라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과 관련 된 문화, 경제, 사회생활에서 스스로 경험한 것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사람과 다른 유일무이한 ‘바로 그 사람’이 되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 기회를 막는 것은 그가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참여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사회적 존재답게 살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참여가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존엄한 사람답게 도울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여는 모든 사람이 책임을 가지고 공동선을 위하여 의식적으로 이행하여야 할 의무”(『간추린 사회교리』 189항)이다.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은 사회 전체를 위한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참여는 사람이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위해 가지고 있고 내놓아야 할 몫(part)을 그에게 돌려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