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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함께 산다는 것!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 생재들의 이야기


글 박미해 글라라 | 성요셉재활원 생활팀 팀장

 

“안녕!” “안녕! 안녕!” “안녕하세요.” “잘 잤어요?” 매일 아침 ‘라’ 보다 높은 ‘시’ 톤으로 생활실을 돌아다니며 요란한 인사로 하루를 시작한다. 돌아오는 답은 조금씩 다르다. “엄마, 엄마~~”, “선생님~” 하며 더 큰 목소리로 반겨주기도 하고, 몸으로 먼저 달려와 안는 분, 반드시 악수를 해야 하는 분, “아줌마 ~ 가위바위보!” 하며 손을 내미는 분까지. 그 중에서도 “글!라!라! 공주님!”이라고 떼창하듯 반겨주는 웃음집. 남자 분들만 사는 곳인데 살짝 강요가 있었지만 역시 최고다!

떠들썩한 인사 중에도 나는 한 분 한 분이 내는 목소리와 행동, 표정으로 밤사이 아프지는 않았는지,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이제는 본능에 가깝게 확인이 된다.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성요셉재활원은 가톨릭 인수 30주년을 맞은 경북 고령의 중증 장애인들의 오래된 집이다. 이 안에서 내가 ‘성요셉인’이 된 지도 벌써 17년, 그 시간 동안 장애인들과 함께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이들의 걸음과 내 걸음이 같아지기 위해 참 많이 울기도, 웃기도 했었다.

곁에서 함께 사는 것이 보람만으로 가득 차면 좋겠지만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 참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애정과 열정을 지키고 살아 올 수 있었던 힘은 매일 아침 복음을 읽고 짧게라도 묵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있지 않을까 한다. 요즘 나의 묵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 ‘생재’ 들이다.

시설 밖 여느 사람들의 삶처럼 우리 집에도 한 분 한 분마다 하루가 있고 그 하루가 모여 삶이 채워지고 있다. 이들의 삶에는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 아니 잠들어 있는 동안까지도 곁에 있는 이의 보조와 도움이 필요하다. 그분들 곁에 늘 있는 이들이 바로 생활재활교사(우리는 줄여서 ‘생재’라고 한다.)이다.

 

첫 글에 소개하고자 하는 건 그리 거창하고 대단한 사회복지이야기는 아니지만 함께 살아야만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생재들만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성요셉 생재의 소소한 이야기다.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생재는 중증장애인들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함께 고민(사정, 회의)하고 준비(계획)하고 만들어(실천)주고, 경험과 추억(평가, 결과)이 될 수 있도록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장애인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그들의 곁에서 항상 묵묵히 보조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힘들 때도 많고, 눈물 보이는 날도 많으나 그래도 우리 생재들에게 우리만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어 소개드리려 한다.

 

첫 번째는 백화점 신상 핸드크림 쇼핑이다. 우리 집을 방문하거나 시설을 평가하러 오는 분들이 “냄새가 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신다. 시설, 특히 중증장애인시설의 경우 신변 처리를 스스로 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무리 청결에 힘쓴다 하더라도 특유의 냄새가 있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 가정에서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시설에서는 생재들의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00여 명의 장애인들이 살고 있지만 스스로 신변처리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분은 10%도 되지 않는다. 40%는 화장실 이용에 보조가 있어야 하고 그 외 50%는 기저귀나 안심팬티로 해결하기 때문에 반드시 생재의 도움이 있어야 신변처리가 가능하다. 냄새뿐만 아니라 기저귀를 착용하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누워있기만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기저귀 발진이나 욕창이 발생하는 일이 거의 없다.

식사부터 설거지, 세탁, 세면까지 모든 일상을 함께하다 보니 대다수의 생재들 손은 늘 거칠고 손바닥은 굳은살과 습진으로 고생하고 있다. 때문에 자연스레 손에 대한 열등감이 많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감추고 악수를 청할 때에도 손 내밀기를 부끄러워한다. 고가의 핸드크림 쇼핑이 사치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보기만 해도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거친 손이 열등감일 수밖에 없는 선생님들에게는 누구도 사치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은 선생님들의 손에 알록달록한 네일아트가 아닌 굳은살과 습진이 가득한 것을 볼 때면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지만 또 핸드크림을 바르며 웃어 보이는 모습을 보면 그저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두 번째는 향수이다. 사실 이건 일반적이기 보다는 개인적인 면이 더 크다. 아무리 청결하게 하더라도 시설 특유의 냄새가 난다. 살다보면 무뎌지기도 하지만 샤워를 하고 퇴근을 해도 이미 몸에 깊숙이 밴 듯 냄새가 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자주 있다. 중증장애인과 함께하기 위해선 늘 긴장해야 한다. 잠시 ‘괜찮겠지.’ 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하고 다치기도 하며 위험한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 생활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함께하는 시간에는 온 신경이 집중되고 예민해진다. 시설 특유의 냄새는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긴장하게 만든다. 좋은 향기는 ‘쉼’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이 일을 하면서 향수를 애용하게 되었다. 특히 피곤하고 지칠 때 좋은 향기가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밝아진다. 왠지 다시 새로운 기운이 돋는 듯하여 조금은 사치스러울지도 모르지만 향수 사랑이다.

 

세 번째는 야간 근무 중에 먹는 야식, ○○○ 치킨!이다. 생재들은 24시간 격일제로 근무를 하기 때문에 바쁜 업무를 마무리하고 저녁기도를 드린 후 취침시간 이후에야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늦은 저녁 거주인들과 살았던 하루를 나누고 일지를 써야하는 시간이다. 함께 모여 일지를 쓰다가 누군가 갑자기 “치킨 먹어요. 내가 쏠게.”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치킨 사는 사람은 무조건 선배님이다. “선배님, 고마워요.” 깔깔 웃으며 전하는 마음 뒤에는 자연스레 그날의 삶이 한 곳으로 모인다. 자연스러운 나누기 시간 속에 먹는 치킨의 맛은 퇴근 후 집에 가서 아무리 맛있다는 치킨을 시켜도 따라 올 수가 없다. 성요셉재활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 치킨! 오죽하면 퇴사를 하고 떠난 직원들도 가끔 생각난다는, ‘진정 함께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맛’이다. 시골이다 보니 야간에 배달을 해 주는 곳이 이곳뿐이라 더 맛있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정말 평범한,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핸드크림, 향수, 치킨이 우리 생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 자체이다. 나 또한 생재이기에 감히 거창한 사회복지이야기를 담아내기보다는 우리 생재들의 노력과 소소한 일상의 한켠을 보여주고 싶다.

하느님의 말씀은 내 마음 바닥의 찌꺼기에 항상 따끔한 나무람을 주시고, 늘 부족하지만 깨어서 살도록 하시는 충고이며 내가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성요셉재활원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몰라준다고 답답해했잖아. 실컷 함 해봐라.’ 하시는 것처럼 하느님은 이렇게 부족한 내가 글을 쓰도록 힘을 실어주신다.

더 좋은 서비스는 더 나은 삶을 만든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하는 데에는 생재들의 노력이 필요하고 어쩌면 생재들의 희생이 필요하지만 갈수록 자유롭고 보다 쉬운 일을 선호하여 생활재활교사로 함께하려는 이들은 실상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나는 기도하고 응원하고 그들의 곁에 있어주고 있다.

 

사회는 탈시설을 외치고 인권을 강조하며 시설에 대한 비판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진정 도움이 있어야 하는 이곳에 쏟아지는 눈총에 마음이 시리다. 어쩌면 은총 밖에 있다 할지도 모르지만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진정 은총 속에 모여살고 있음을 몸소 느낀다. 가장 낮은 곳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이사 43,4) 라는 말씀을 닮은 우리 복덩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생재들은 오늘도 묵묵히 성요셉인으로서 서로를 의지하고 나누며 열심히,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준비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약력 : 박미해 님은 2002년에 성요셉 복지재단에 입사해 성요셉요양원, 재활원(중증장애인시설이며 100명의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거주시설)의 생활실(장애인들이 살고 있는 방, )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직접 서비스를 하는 생활재활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