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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성지순례기
남미 성지순례를 다녀와서(4)
- 멕시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글 정은미 레지나|성김대건성당

 

4. 쿠스코 . 마추픽추, 시쿠아니교구

성지순례 15일차인 오늘은 페루 수도 리마에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에 내렸다. 여기서 112km 떨어진 우르밤바 계곡에 위치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미니버스와 기차로 한참 더 가야 하므로 쿠스코에 머물며 쿠스코 시내 관광과 식사를 한 후 오얀따이 딴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시골의 한적한 곳으로 멀리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이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저녁미사를 마치고 그동안 순례하면서 느낀 소감을 조별로 간단하게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뒤 다음 날 마추픽추 일정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 다.

  

드디어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라는 마추픽추를 만나는 날! 우리는 일찍 기상해서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 오전 5시 30분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게 되는데, 마추픽추 동네로 가는 길 위의 풍경은 문명과는 거리가 먼 목가적인 아름다운 풍경들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페루의 신비라는 잉카제국의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절벽을 깎아지른 꼬불꼬불한 산길에 고산지대라 매우 험난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의 주변 경관은 아열대 고원 지대의 특성을 지닌 듯 선인장과 용설란이 특히 눈에 띄었다. 마추픽추는 15세기 중반 잉카제국시대에 건설된 산 속 마을로 잉카제국의 종교와 문화를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해발 2,437m에 위치한 고산지대로 산 아래에서는 어디에 서도 볼 수 없다고 하여 ‘잃어버린 도시’라고도 불린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뒤에 이곳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가 1911년 미국의 예일대 교수였던 빙엄에 의해 재발견되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버스에서 내리니 입구부터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고, 입장권을 끊고도 한참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마추픽추로 향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올라가는 내내 단체사진도 찍고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눈인사도 나누며 주변경치를 감상하는 사이 정상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한바탕 소나기가 내려 잠시 비를 피하면서 정상에서 바라본 마추픽추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에 탄성이 저절로 나오게 할 만큼 신비로웠다. 촘촘하면서도 정교하게 쌓여진 돌과 고산지대에 계단식 농경지를 시설한 지혜, 그리고 계단 중간 중간마다 있는 수로는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의 주거공간으로 보이는 집터와 곡식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식량저장소의 건물 흔적 등 마추픽추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잉카문명(태양의 후손)이 태양신-하늘(곤돌), 땅(재규어), 지하(뱀)를 섬기기 위한 영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어졌다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했다. 뜨거운 남미의 태양을 신으로 모셨던 잉카인들이 이토록 웅장한 건축물을 건설하도록 가능케 한 힘은 무엇인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거대한 자연만큼 위대한 인간의 힘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느낀 곳이었다.

 

다음날은 안데스산맥과 마추픽추 유적으로만 알려진 남미 페루에 위치한 시쿠아니 대목구를 방문하였다. 시쿠아니 대목구는 3,500~40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는 길이 좁고 험난한 관계로 우리 일행들은 25인승 작은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끝없이 이어진 안데스산맥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시쿠아니 대목구로 향했다. 시쿠아니 대목구는 이번 성지순례에 동행한 수원교구 능곡성당 황주원 주임신부님께서 6년간 사목을 하셨던 곳으로 이번 순례에서 많은 의미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대목구는 교구보다는 규모가 작은 곳으로 신자 수는 30만 명에 이르지만 사제는 10~15명 정도이며 본당은 30개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사제가 부족하니 한 사람이 2~3개의 본당을 사목하고 있고 그곳에 소속된 공소의 수는 한 본당에 작게는 5개, 많게는 20개까지 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곳 시쿠아니는 지역이 워낙 넓고 교통수단은 열악한 관계로 대부분 공소로 운영되는 곳이 많고, 공소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 한 번 미사 하는 곳도 있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공소의 축제 행사 때만 가서 세례를 주고 첫영성체도 한다고 한다. 같은 하느님을 믿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사는 우리들이지만 너무나 다른 환경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처지와 현실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시쿠아니 대목구장 로페즈 주교님과 함께한 미사 중에 사제가 부족한 이곳에 많은 신부님이 오셔서 더 많은 선교활동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렸다.

 

미사 후에 방문한 ‘Hogar de ninas’라는 곳은 ‘소녀들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으로, 야나오카본당에 속해 있으며 약 15년 전쯤 생겼다고 한다. 이곳에 기거하는 소녀들은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들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청소년들이 수녀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고아는 아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있다고 한다. 페루의 시골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는 가정이 많은데 대다수의 가정이 가난해서 여자 아이들은 거의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성적으로 학대받은 아이들도 있고, 많은 형제자매들 틈에서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도 없이 양을 키우다가 오는 경우도 있고, 어려서부터 도시에 나가 마약에 손을 대어 경찰에 의해 인계된 소녀들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원장수녀님은 재정의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집 전체를 높은 담으로 쌓아 아이들이 외부세력으로 받는 위협과 유혹의 손길을 차단하고 또 방황하는 아이들이 자주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이곳 소녀들의 집에서는 세 명의 수녀님과 몇 명의 봉사자들이 소녀들에게 학교 교육과 자수, 뜨개질 등을 가르쳐 미래의 삶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고등학교 정규과정까지 이수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이렇게 공부를 마친 소녀들은 페루 수도 리마에 가서 다른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기숙사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며 독립적인 삶을 준비한다고 한다. 황 신부님은 리마에서 4년간 사목하시면서 이곳 소녀의 집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빵 만드는 기계 한 세트를 한국에서 도움을 받아 사 주었는데, 이 기계를 이용하여 아이들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주변에 판매도 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수녀님들과 봉사자들이 준비한 정성 가득한 점심식사를 한 후 방문해 준 우리 일행을 위해 준비한 소녀들의 여러 가지 장기자랑을 보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물질적으로 영성적으로 너무나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곳 소녀의 집에 순례를 다녀온 뒤 실제로 많은 신자 분들의 후원이 있었다. 쿠스코는 듣던 대로 고산지대라 우리 일행은 대부분 고산증으로 숨이 차고 약간의 두통에 시달려 힘들어 했는데, 그곳을 벗어나니 정말로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시쿠아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쿠스코로 가는 시골동네의 풍경은 그지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페루에서의 마지막 날 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 숙소 내 성당에서 아침미사와 식사를 한 뒤 쿠스코의 주광장이며 잉카제국시대의 중심지였던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다. 시내를 천천히 걸어가면서 도시 곳곳에 아직도 남아있는 잉카문명의 흔적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석조건축물을 많이 보았는데 작은 틈새 하나 없이 모서리를 맞춰 쌓아올린 돌담은 대지진에도 끄떡없이 오랜 세월을 잘 견뎌내고 있었다. 쿠스코의 마지막 일정으로 잉카인들의 지혜와 영농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모라이의 농업연구소와 살리네라스의 염전을 찾았다. 계단식으로 땅 속 깊이 들어가면서 옥수수의 성장과 결실을 비교 연구한 모라이의 계단식 농경지는 오늘날에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으며, 잉카인들의 지혜와 과학을 엿볼 수 있었다.

    

살리네라스의 소금밭은 수백 개의 염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옛날 잉카인들은 현명하게도 내륙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소금 물줄기를 모아 계단식으로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였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의 소금은 쓴맛과 떫은맛이 없고 광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인기가 많고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이 소금을 사가는 걸 보았다. 넓게 펼쳐진 페루의 대지는 다양하면서도 광활했고 계절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때라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과 맑고 푸른 하늘은 여행하기에 최적의 기후를 선사해 주었다. 비록 역사의 무지와 우상숭배,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정 부패와 독재로 얼룩져 국민들이 빈곤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자연 안에서의 페루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페루 쿠스코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친 우리는 리마공항에서 이번 성지순례의 마지막 여정지인 멕시코 칸쿤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