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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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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5월 5일 부활 제3주일 (생명주일) : 요한 21,1-19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1장 1-19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 십시오.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15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 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있었던 제자들은 누구입니까?(1-2절)

- 시몬 베드로와 함께 고기를 잡으러 간 그들은 얼마만큼 고기를 잡았습니까?(3절)

- 예수님께서 아침이 될 무렵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십니까?(4-6절)

-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자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7-8절)

-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본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9-10절)

- 시몬 베드로가 그물을 끌어 올리자 그 안에는 고기 몇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까?(11절)

- 12-13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는 몇 번째였습니까?(14절)

- 예수님과 베드로가 나눈 대화는 무엇입니까?(15-18절)

- 19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요한복음은 갈릴래아 호수를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운 갈릴래아 지역의 주도(主都) 이름을 따라 티베리아스 호수라고 부릅니다. 제자들은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최소 6명 이상의 제자가 함께 있습니다. 밤새 고기잡이를 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던 참에 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부활 후 이미 두 번이나 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세 번째 만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예쁘게 부르는 ‘얘들아’라는 말로 부르며 당신의 애정을 드러내십니다. 성인인 제자들도 당신 눈에 그런 아이들처럼 보였나 봅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는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지니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가 잡힙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주님이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벗고 있던 겉옷을 입고 호수에 뛰어듭니다. 그에게는 이제 고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그리고 그분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됩니다. 왜 옷을 다시 입고 호수에 뛰어들었을까요? 복음은 그가 뛰어든 방향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단지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가 주님임을 듣고 겉옷을 걸치고 물에 뛰어드는 이상한 행동을 했음을 강조해줍니다. 알몸을 겉옷으로 가리고 물속으로 뛰어든 베드로의 행동은 그가 참회했음을 우회적으로 전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 작은 배로 그물을 끌고 오고, 베드로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있고 빵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 오너라.’고 하자 베드로가 그제서야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립니다. 그물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숫자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큰 고기가 가득 들어 있었음에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꽉 찬 충만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충만함에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교회라고 한다면 이 일은 꽉 찬 하나로 있을 수 있는 교회의 신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그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신지 알고 누구이신지 묻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다가오셔서’ ‘주셨다’고 전하면서 이 일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동과 주도권만을 부각시킵니다. 이 일은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이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징은 성체성사적인 의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세 번째 나타나시어 식사를 주도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음식 나눔은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합니다.

 

아침을 먹은 후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왜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고 하십니다. 문맥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린 양들’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당신의 어린 양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또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같은 대답을 하고,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는 “어린”이 빠져 있는 “내 양들”을 돌보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린” 양들은 “얘들아”하고 부른 제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또한 다른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 베드로는 예전과는 다른 항구한 사랑의 마음임을 드러내려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1)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베드로의 대답이 좀 다릅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주님이라는 고백이 첨가되며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는 말씀을 다시 전하시고 이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따라라.”고 마지막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확신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그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날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1)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세 번의 질문에 베드로는 사랑하는 줄을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사랑에 대한 세 번의 확인은 세 번에 걸친 베드로의 배반에 상응하는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에 대한 물음에 처음 두 번은 아가파오 동사를 사용하시고 세 번째는 필레오 동사를 사용하십니다. 반면 베드로는 세 번 다 필레오 동사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아가페적 사랑과 필리아적 사랑의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의 학자들 대부분은 언어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요한계 문헌 용례로 봅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제자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처럼 우리 일상 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함께하십니다. 매 순간 이웃과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그분을 알아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가질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하며 살아갑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3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5월 12일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 요한 10,27-3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0장 27-3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나(예수님)와 양들의 관계는 어떠합니까?(27절)

- 나(예수님)는 양들에게 무엇을 주며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28절)

- 예수님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29절)

- 예수님과 아버지는 어떤 관계입니까?(3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성전 봉헌 축제는 유다 마카베오가 시리아왕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에 의해 이교 제단이 세워졌던(BC 175년) 성전을 정화하고 새롭게 봉헌한 것(BC 164년)을 기념하는 축제로 마카베오서에서 자세히 이야기됩니다. 이 축제는 겨울 무렵(음력 11월 25일경)에 열렸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때에”(10,22) 성전의 안쪽 제일 끝에 있던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이교(異敎) 제대가 세워지면서 모욕 받았고 마카베오 항전으로 성전이 정화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에 차가운 초겨울 공기를 맞으며 완공자 솔로몬의 이름을 딴 아버지의 집인 성전, 곧 당신 집인 성전의 주랑에서 걷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당신 집이지만(2,17) 당신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성전을 정화하시며(13-22절) 본격적인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 성전이 정화된 것을 기념하는 이 축제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목자의 비유(10,1-6)를 들며 “나는 착한 목자이다.”(7-21절)라는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께 유다인이 찾아와 당신을 둘러싸고 위협하듯이 요구합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주시오.”(24절)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줄곧 가르치셨던(18,20) 곳인 성전에서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는 내 양들이 아니기 때문이다.”(10,25-26절)라고 말씀하시며 오늘 복음 말씀을 전하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양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내 양들, 곧 예수님의 양들과 그렇지 않은 양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내 양들”이라는 말씀을 사용하시며 당신의 양이 아닌 이들도 있음을 지적하시고 유다인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당신의 양들은 당신을 알아 따르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양들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들에게 징벌의 말씀이라기보다 초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 앞에서 그들을 위해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양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양으로 남아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예수님의 초대 말씀은 이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는 말씀은 당신이 메시아인지를 묻는 유다인들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으로, 당신께서 메시아, 곧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이심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5장에서부터 유다인들을 향해 시작된 당신 계시의 정점이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은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며(10,31) 초대의 말씀을 거절합니다. 돌 던짐은 죄를 지은 이들을 단죄하는 유다인들의 방법입니다. 유다인들은 알아들었지만 예수님의 양이 되기를 이렇게 거절하였고, 초대의 말씀은 결국 우리들에게 새롭게 전해지며 동일한 물음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의 양으로 살고 싶습니까?’ … 성소주일입니다. 당신의 양으로 불린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양으로 불린 우리의 모습이 참 예쁠 수 있도록 한 주간을 만들어 갑시다. 우리는 그들과 달라야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는 매일 어떤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인터넷에 허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5월 19일 부활 제5주일 : 요한 13,31-33ㄱ.34-35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3장 31-33ㄱ.34-35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간 뒤 말씀하셨습니까?(31ㄱ절)

-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누가 영광스럽게 되며 또 그 아들은 어떻게 됩니까?(31ㄴ-32절)

-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33절)

-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계명은 무엇입니까?(34절)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을 본 사람은 무엇을 알게 됩니까? (35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의 유언(遺言)이라고 할 수 있는 ‘고별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 서 말씀하셨다.”라는 말입니다. 유다가 나갔음, 곧 예수님의 유언을 들어야하는 사람들에서 유다가 제외되었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고별사는 시작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히 배반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곧 당신의 진정한 제자들에게만 고별사를 전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영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떠남으로서 시작될 일을 영광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곧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이신 당신께서 걸어가실 수난과 죽음의 여정이 바로 영광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영광이심을, 곧 십자가가 수치가 아니라 자랑거리가 됨을 선포하십니다.(1코린 1,18-31 참조) 우리에게는 십자가와 죽음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당신이 참여할 영광에 대해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다음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여기서 “얘들아”라는 말은 예전에 할머니께서 사랑하는 손주들을 예쁘게 부르던 ‘야들아!’라는 경상도 말에 비길 수 있을 정도로 애정이 담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스럽게 부르시며 특별한 사명을 선물을 주십니다. 그것이 ‘새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새 계명은 공관복음에서 이야기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랑에 대한 계명을 전해줍니다. 새 계명은 사랑해야 하는 대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주체의 자세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율법의 정신에 대한 해석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중계명이 주어졌지만 이곳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새로운 계명으로 주어집니다. 이 사랑의 계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 새 계명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충실한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드러내 주듯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드러내 보여 주며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이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교회는 부활 시기임에도 죽음을 준비하는 예수님의 고별사를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별사를 통해 죽음과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영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시고 새 계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復活)은 ‘다시 산다.’는 그 말의 의미대로 항상 죽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으며 죽음은 반드시 부활로 이어짐을 잊지 맙시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바라보시며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영광으로 표현하셨듯이, 우리의 어려움들을 부활을 생각하며 이겨냅시다. 우리 모두가 유다와는 다른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할 수 있는 사랑의 희생을 한 가지씩 정해서 기도와 함께 실천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1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5월 26일 부활 제6주일 (청소년 주일) : 요한 14,23ㄴ-29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4장 23ㄴ-29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아버지의 말씀은 무엇입니까?(23-24절)

- 예수님께서는 언제 이것들을 말씀하셨습니까?(25절)

- 보호자, 곧 성령은 어떤 일을 하는 분이십니까?(26절)

- 예수님께서 남기고 가신 평화는 어떤 것입니까?(27절)

- 28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 예수님께서는 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십니까? (2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 당신의 유언(遺言)인 고별사가 오늘 복음에서도 계속됩니다. 배반자가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앞서서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반복하시며 다른 각도에서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위로하고자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말씀에 따르면 당신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증거이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며, 하느님 나라에서 아버지 하느님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는 조건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분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는 데는 느릴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살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하지만 우리는 그 일에 게으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꾸중하시며 권고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말로 사랑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 말씀은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다는 유다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힘겨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말씀 안에 머물며 살아가는 이들을 격려하고 인정해 주시기 위해 사용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보호자이신 성령을 다시 한 번 약속하시고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는 말씀을 기억시키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가르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함께 당신의 이런 말씀들을 가르치고 기억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再臨)하시어 돌아오실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한다면 예수님을 사랑하며 말씀을 지키고 사는 우리는 평화를 얻게 됩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릅니다. 상황에 따라 기복(起伏)이 있는 평화가 아니라 항구한 평화입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 설 때 이 평화의 진가가 드러날 것입니다. 성령과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부활과 하느님 나라를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겁낼 필요도 없고 죽음 앞에서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세상 속에서 세상에 정복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 제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들이 아주 많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라고 말씀을 주신 것만이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위로 받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믿음을 위로받기 위해 말씀을 기억해야 함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말씀을 우리가 믿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과 평화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맺으신 관계처럼 우리도 각자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돌아보고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 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2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