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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8월 4일 연중 제18주일 : 루카 12,13-21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2장 13-21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무엇을 청하고 있습니까?(13절)

-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15절)

- 부유한 사람이 어떤 생각과 말을 하고 있습니까? (17-19절)

- 하느님께서 부유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20절)

-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21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중(12,1-12)에 당신 주위에 모여 있던 군중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청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렇게 부름으로 자신을 ‘제자’처럼 드러내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이 아니라 ‘형제에게 유산을 자신에게 나누어주라고 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요청은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제자가 되기보다는 예수님의 권위를 이용하려는 사람이었음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오늘 복음은 제자인척 예수님 주변에 머물며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람아”라고 부르시며 말씀을 시작하시고, 그가 당신을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삼는 것을 거절하십니다. 그를 다른 호칭이 아니라 ‘사람아’라고 부르시며 예수님께서는 그가 사람으로 지닌 한계성과 본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그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시는 듯합니다. 당시의 유산 상속의 판결은 율사들이나 율법에 밝은 사람들이 내렸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그렇게 인간적인 일을 결정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것을 거부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질문했던 〈 그 〉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며 가르침을 주십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탐욕이라는 단어는 형제에게 유산을 제대로 나누어 받지 못하는 그에게는 모진 말씀일 수 있습니다.(신명 21,17참조) 그러나 진정 두려워해야 하고 신뢰해야 할 존재인 하느님과 인자(人子)이신 예수님, 그리고 성령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 중(12,1-12)에 그가 불쑥 개입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에 대해 달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 보다 자신이 차지해야 할 재산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당신을 신적 존재로 드러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인간적인 재산 분배자로만 봅니다. 그러니 그의 이러한 태도는 탐욕이라고 할 만합니다. 탐욕은 사람의 눈을 가리고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은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들려주는 말씀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씀에 이어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후, 어리석은 부자의 예화/비유(12,16-21)를 전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이천 년 전 그때에도 사람들은 재산에 그의 생명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었나 봅니다. 생명이 하느님이 아니라 재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탐욕은 생겨나는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저적하시며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1) 그리고 ‘하느님에 관해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우리 마음을 돌아봅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생명임에는 모든 이가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재산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인정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1) 그리스 말 전치사 에이스의 해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여기서는 앞에서라는 번역만큼 관해서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맥락에 더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 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부유합니까? 아니면 부유하지 않습니까? 우리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고 풍요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8월 11일 연중 제19주일 : 루카 12,35-4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2장 35-4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혼인 잔치에서 돌아온 주인을 기다리는 바람직한 종의 모습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습니까?(35-36절)

- 예수님께서 “행복하여라”고 말씀하신 이들은 어떤 이들 입니까?(37-38절)

-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에게 주인은 어떻게 합니까?(37절)

- 예수님께서 “명심하여라”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39절)

- 사람의 아들은 언제 옵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합니까?(4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 있던 이들에 관한 가르침(12,15-21)에 이어 당신의 제자들에 대한 가르침이 이어집니다.(12,22-4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말씀하시며 세상 걱정으로 두려워 말고 하느님 나라를 찾아라.’는 가르침을 전하시고(22-32절)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고 말씀(33-34절)하신 후, 오늘 복음인 “깨어 있어라.”는 가르침(35-40절)을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의 복음과의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 더 풍요로워지는 가르침입니다. 지난 주일 복음이 사람들로 묘사된 ‘세상 사람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했다면, 오늘 복음은 ‘제자들’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합니다. 곧 마음속에 있는 모든 탐욕을 경계하며 세상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에 관해서 부요(富饒)하게 되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신 후, 이제는 그런 이들과 함께 있지만 당신 제자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그러한 일에 더해서 주님(주인)이신 사람의 아들이 오시기를 깨어 기다리며 준비하는 종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 가운데 오늘 복음은 제자들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근처에 머물며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자기가 편안한 대로 사는 군중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문지기 종처럼 주인, 곧 주님이신 사람의 아들이 돌아오면 곧바로 문을 열어주려고 깨어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곧 깨어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들이 참된 제자들입니다. 유다인들은 주로 시원하고 한가한 밤에 혼인 잔치를 행했습니다. 그렇기에 혼인 잔치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를 마중하기 위해 깨어 기다리는 일은 충실한 관계의 대명사처럼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전통적으로 종말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예수님께서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주인’으로 번역된 그리스 말은 ‘퀴리오스’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 사용한 ‘주님’이라는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 곧 ‘주인님’이라고 부른 만큼 그분의 종처럼 살아야하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늘 준비하고 깨어 있으며 오시는 주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제자들의 정체성입니다. 그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종이 아니라 주인처럼 행세하며 저 좋은 대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며 살펴보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 적이 있습니까? 기다릴 때의 나의 마음과 행동은 어떠했는지, 또 예수님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어떠한지 나누어 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 루카 12,49-5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2장 49-5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49절)

- 예수님께서 받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50절)

-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아닌 무엇을 일으키러 오셨습니까?(51절)

- 한 집안이 갈라지면 어떤 모습입니까?(52-5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복음은 문맥상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베드로가 (지난 주일 복음에 소개된) “깨어 있어라.”는 말씀이 누구에게 하신 것인지 묻자, 예수님께서는 동문서답처럼 충실한 종(집사)과 불충한 종의 비유(12,41-49)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성실할 것을 훈계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훈계의 말씀 뒤에 오늘 복음인 “불을 지르러 왔다.”(49-50)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51-52)는 말씀을 이어하십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던 사마리아의 한 고을을 불살라 버리자던 제자들을 꾸중하시던 예수님을 생각하면(루카9,54)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1)는 말씀은 상징적인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불은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한 불로, 종말 심판을 시작하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을 불쏘시개처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그 집에 평화를 빌어 주라(10,5)시던 예수님을 생각하면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알아듣기 힘든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런 분열을 일으키셨다기보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분열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

로 본다면 알아듣기가 좀 더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처럼 가정의 분열(9,59-62; 11.27-28; 14,26)을 선포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가정마저 분열될 수밖에 없는 종말을 지금 시작하시고 완성하실 그리스도(미카 5,1-2; 7,6)로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선적으로 베드로와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십자가로 시작하고 또한 완성할 종말의 모습을 잘 인식하여 교회를 이끌기를 바라십니다. 불과 분열이라는 말로 선포되는 이 모습은 두려운 모습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미리 알려주심은 그것을 준비하게 하여 구원으로 이끄시려는 하느님의 사랑과 배려가 담겨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멸망이 아니라 구원임을 생각하며 한 주간을 보냅시다.

 

1)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는 말씀은 루카 복음서에만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예레 20,9; 23,29)이라고 했으며, “엘리야 예언자와 그의 말”(집회 48,1)이라고 했습니다. “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세례(마태 3,11, 루카 3,16)와 세상 종말 심판(마태 13,40; 18,18; 25,41; 마르 9,48; 루카 3,9.16)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분열은 하느님을 따라 사는 삶과 세상을 따라 사는 삶의 갈라짐입니다. 나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 하느님의 뜻은 없는지 생각해 보고 용기를 내어 실천하도록 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8월 25일 연중 제21주일 : 루카 13,22-3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3장 22-3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여행하시는 동안 무엇을 하십니까?(22절)

-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는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십니까?(23-24절)

-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그들이 문을 두드려도 집주인은 어떻게 합니까?(25절)

- 그들은 주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들에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26-27절)

-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29절)

- 30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당신의 여정을 가르침의 장으로 만드십니다. 그 여정 중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고 물으면서 오늘 복음은 시작됩니다. 질문은 “어떤 사람”이 했지만 대답은 “그들”이라는 다수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고 하시며 문을 닫아버리는 집주인의 비유를 전하십니다. 이 비유 속에서 “그들”은 “너희”로 대변되며 “불의를 일삼는 자들”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 밖으로 쫓겨나 있는 이들’로 설명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셨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의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은 좁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구원받을 사람의 수효도 적을 것이라 예상할 수밖에 없었기에 ‘구원받을 사람이 적겠지요?’라는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상상을 해봅니다. 만일 질문을 드린 사람이 구원을 확신하며 하느님의 뜻을 쫓아 천국만을 바라보며 회개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면 구원에 관해서 어떤 질문을 드렸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떤 대답을 하셨을까요? 그런 사람들 앞에 놓인 구원의 문은 분명 좁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사람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9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 회개 〉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미 회개하고 또 끊임없이 회개하려는 이들에게 구원의 문은 아주 넓은 문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구원의 문은 여전히 좁은 문입니까? 아니면 아주 넓게 느껴지는 문입니까? 세상에서 첫째의 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지 맙시다. 세상에서 꼴찌라도 하느님 앞에서 첫째가 될 방법을 찾아봅시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날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에 첫째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금 첫째이고 그때도 첫째일 방법은 바로 지금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이에게 구원의 문은 좁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고 있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나를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누어보고,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