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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책을 읽는 이유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1)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하고 유명한 글이지요. 이 글자를 표구한 액자가 사무실이나 교실에 걸려 있는 모습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입니다. 학교 정문 석비에 새겨져 있기도 하고요. 안중근 의사께서 쓰신 글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뜻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정말로 입 안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진짜 가시보다 더 날카로운 말을 우리는 참으로 많이 뱉어 냅니다. 세상에 가시 돋친 말이 난무하고, 그 말의 가시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습니다. 내가 하는 말도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가시 돋친 말이 아닐까 돌아보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왜 이 글을 써 남기셨을까요?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에 그러셨겠지요.

 

오늘날은 책을 읽기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찾아보는 시대입니다. 이젠 지식도 인터넷을 통해 영상으로 습득하고,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영화나 동영상 시청으로 합니다. 책에 대한 정보도 인터넷 영상으로 알아보는 실정입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떤 내용인지에 관해서 영상을 통해 소개받습니다. 정작 그 책을 직접 읽어 보는 일은 드뭅니다. 유명한 소설도 영화로 만든다는 소문이 나면 기다렸다가 영화로 봅니다. 훨씬 화려하고 재미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힘들여 책을 읽어야 할까요? 쉽고 편하고 재미있게 영상으로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다른 매체보다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 말입니다. 물론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두 가지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첫째, 책을 읽으면 상상력이 커집니다. 물론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엄청난 창작물이 많습니다. 하지만 문학이나 역사책을 읽으면서 우리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력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영상은 어쩌면 타인(감독이나 작가)의 상상력을 (편하게) 구경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상상력 풍부한 천재들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작품에 압도되고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서 상상한 그 엄청난 세계와 아름다운 감동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나의 눈으로 직접 보고, 내 상상력으로 작업하며 읽은 책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刻印)”됩니다. 그리고 상상력을 키우는 작업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뇌는 죽을 때까지 확장되며 성장합니다. 상상력을 키우며 인식 능력, 전체를 보는 직관력, 절대자 하느님을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능력도 향상될 것입니다.

둘째, 책을 읽는 것을 통해 타인의 의견이나 생각을 경청할 기회를 얻습니다. 나의 삶, 내가 체험할 수 있는 경험, 내가 만나는 사람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이 한 경험이나 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지요. 조용한 나만의 공간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타인의 생각과 의견에 귀기울이는 것이 바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우리는 독단적인 나의 생각에만 갇히지 않을 수 있고, 입 안에 날카로운 가시를 키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는, 타인의 생각을 들으면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나의 마음을 온유하게 해주며 하늘처럼 넓게 해줍니다.

 

9월, 가을입니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책을 읽는 데 계절의 구분이 어디 있고 장소의 구애가 어디 있을까요? 그냥 손을 뻗어 내 곁에 있는 책을 집어 들고 펼쳐 읽으면 됩니다. 어려운 게 결코 아니지요. 무엇을 읽을까, 어떻게 읽을까 고민하지 말고, 책을 읽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거나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물어보지도 말고, 그냥 읽기 시작합시다. 우리 집 서가에 꽂힌 책 가운데 한 권을 고르거나 지금처럼 『빛』잡지를 읽어 나가거나 도서관이나 시내 서점에 들러 나에게 손짓하는 많은 책들 가운데 한 권을 빼들고 읽어 봅시다. 물론 핸드폰은 잠시 내려두어야겠지요.

세간에 유행하던 말을 조금 바꾸어 말해봅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책을 읽자.”

 

1) 천자문, 소학등과 함께 조선시대 아동 교육을 위해 만든 책 추구(推句)에 나오는 글귀로, 우리에겐 안중근 의사께서 쓰신 서예 글씨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