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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의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프로젝트 이야기
교통사고 후 배운 것들


글 김동진 제멜로 신부 | 볼리비아 상 안토니오 본당 주임

 

(8월호에 이어) 우여곡절 끝에 사고 당시 녹음한 운전자의 음주여부에 대한 녹취가 증거로 인정되어 재판에 승소할 수 있었지만 남겨진 마음의 상처는 무척이나 컸습니다. 지구 반대편 다른 언어와 인종의 나라에서 겪었던 낯선 시련에서 온 고통, 평생 장애를 가질지도 모른다는 부상을 입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는 석연치 않은 불편한 마음, 재판과정에서 보았던 불의한 거래들, 보상 문제 앞에서 보인 신자들의 모습에서 느낀 실망과 민낯을 봐야 했던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 경제적 타격, 그리고 신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개인적인 상황에서 온 문제들…. 그때는 제 마음이 다쳐 주변의 아름다운 것이 보이지 않았고, 비관적으로 세상을 보며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세상을 치열하게 사시는 신자 분들에게는 말씀드리기가 너무 부끄럽지만 저는 난생 처음 그때 마음의 상처를 받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고 모두가 그렇듯이 아무렇지 않게 다친 다리에 깁스를 하고, 원시림 속 사제관으로 돌아와 마음과 몸을 추스르며 마음의 상처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되뇌면서도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한 그날부터 시작된 신자들의 방문은 매일매일 끊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너무 양이 많아 다 먹을 수 없었지만 약효가 심히 의심되는 수많은 약초를 달인 신자들의 선물은 몸에 좋았는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에는 순수한 것도 순수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저의 상처 받은 마음은 조금 풀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달여가 지난 어느 날은 앞집 할머니께서 나무껍질을 달인 물을 들고 제 방을 찾아오신 일도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약초물이겠지 하면서 누워 할머니께 감사하다며 잘 마시겠다고 말씀드리니 상처에 바르는 약이라며 직접 발라주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거의 뼈가 붙어가서 다 나아가고는 있었지만 아직 조금 통증이 있어 바르는 약이라기에 흠칫했지만 노구의 몸으로 산속 깊은 곳에 가서 나무껍질을 캐온 후 집에서 이틀 동안 솥에 고아 만든 정성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굳이 반깁스를 풀어야겠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약만 바르고 다시 잘 묶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골절된 부위의 붕대를 풀었습니다. 연고처럼 끈적한 고약을 살살 얹으면 될 거라고 생각한 저의 예상은 단숨에 빗나가 버렸습니다.

그 고약은 골절 부위에 단순히 바르는 것이 아니었고 결코 뼈 속까지 스며들 리가 없었지만 할머니 말씀으로는 뼈 속까지 스며들게 마사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께 괜찮다고 다급하게 설명을 했지만 할머니의 순수한 아니 확신에 찬 믿음을 만류할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주삿바늘을 겁내하는 아이를 대하듯 달래며 괜찮을 것 같다는 저의 의견을 묵살해버리시고, 골절 부위에 정체불명의 고약을 잔뜩 바른 손으로 마사지를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빠드레 씨또(신부를 부르는 애칭)! 시작은 아프지만 조금 지나면 금방 낫습니다.” 다 나아가는 골절 부위에 참을 만한 묵직한 통증이 있었지만 계속 아프다고 하면 아프지 않을 때까지 하실 것 같아서 고통을 꾹 참고 “할머니, 이제 아프지 않습니다. 다 나은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했습니다. 한참을 주무르시던 할머니는 제가 아프지 않은 척하며 약효가 놀랍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만족해 하며 외국인 신부의 발을 낫게 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저를 방문한 친한 본당 봉사자에게 할머니가 방문하셔서 아픈 다리에 고약을 바르시고 마사지를 하고 가셨다고 하소연을 하니 그 형제는 “신부님, 그 약 특효약입니다. 그리고 디젤이 있으면 바르시면 더 금방 낫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술 더 뜬 봉사자의 말에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일이 그동안 있었던 일과 마음 고생을 날려 버리며 더 이상 심각하지 않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무지인지 아님 순수인지 모를 인간적 모습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고, 불완전한 우리의 인생사에 대한 작은 통찰을 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상처 없이 사는 인생도, 굴곡 없는 삶도 없지만 굴곡 속에서 오는 깊이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마음을 닫고 순수함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이들이 상처를 줄 것 같고, 그 마음속 생각과 또 다른 의도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 세상을 밝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기쁨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상처에 굴복하지 말고, 순수하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하루하루의 사명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

 

김동진 신부 : 메일 padregemelokim@gmail.com

카톡 아이디 f-jemello@hanmail.net

 

〈희망의 목장, 마르지 않는 우물, 그리고 건강한 지붕과 벽〉 프로젝트 후원

대구은행 505-10-160569-9 재)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조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