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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9월 1일 연중 제22주일 : 루카 14,1.7-14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4장 1.7-14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 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할 때의 일입니까?(1절)

-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을 보시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고 계십니까?(7절)

- 비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8~10절)

-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11절)

- 예수님께서는 어떤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까?(12~13절)

- 예수님께서 “너는 행복할 것이다.”고 하신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14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중(13,22)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집에서 음식을 잡수실 때의 일을 오늘 복음이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종 병자를 고쳐주시며 안식일의 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14,2-6) 그리고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보면서 끝자리에 앉으라는 말씀을 전하시고(7-11절)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는 보답할 수 없는 이들을 초대하라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 오늘 복음입니 다.(12-14절)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만찬을 차리고 사람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나누는 것을 종교적 의무로 생각하였습니다.(느헤 8,9-12 참조) 그래서 회당에 유명한 율법 교사를 초빙하여 강연을 듣고 이어지는 성대한 식사를 가지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지켜보는 그 자리에서 기적을 행하시어 안식일 잔치 자리를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자리로 만드시며 그곳에 자리하게 될 사람들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대 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보시고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의 비유를 전하시는데, 혼인 잔치는 당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성대한 잔치였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서 벌어지는 기쁨을 전하는 비유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엄격했던 자신의 삶만큼 자신들의 위엄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느님의 식탁에서 가졌다고 생각하는 권리만큼 일상적 식사 자리에서도 동일한 권리를 찾고자 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 식탁자리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겸손한 자리 선택은 현실의 초대에서 고려해야 할 원칙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잔치 자리를 준비하기 위한 삶의 태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현실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안식일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늘 겸손하고 진중한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그 잔치에 초대받은 이는 이미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항상 우리 자신의 허영에 대해 성찰해 봅시다. 안식일 잔치가 인간적인 잔치만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깨닫고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잔치가 되도록 말입니다.

이제 초대한 이에 대한 말씀이 이어지는데 비유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침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보답할 수 없는 이를 초대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운 잔치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애덕을 실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추구해야하는 보상은 현세의 보상보다 부활 때에 주어질 보상임을 기억하며 그때에 주님 앞에서 의인으로 선포되는 보상을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어느 모임에 초대 받았을 때 또는 초대할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나 자신이 높아 보이기 위해 남을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못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고 존중과 배려로 다른 사람을 대하도록 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8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8일 연중 제23주일 : 루카 14,25-3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4장 25-3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 많은 군중에게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26~27절)

- ‘탑’의 비유는 무엇입니까?(28~30절)

-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움에서 맞설 수 없다면 그는 어떻게 합니까?(31~32절)

- 두 비유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3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돌아서는 행동은 예수님의 특별한 의중을 드러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당신과 무관한 군중이 아니라 당신의 제자로서 당신의 여정을 함께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 이들은 더 이상 군중이 아니라 제자의 모습을 갖추어야 하며, 겉으로만 함께 길을 걷는 이들이 아니라 속마음까지 예수님과 같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제자의 삶의 요구하시며 먼저 가족만이 아니라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중한 존재를 미워하라는 말씀이 참 모질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족이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스승이신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차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을 우선적으로 사랑하고 예수님께 충실하라.’1)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제자의 자리에 있지 않고 다시 군중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말씀이 이어집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사형장으로 가는 이들이 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 제자의 삶은 이 세상에 죽고 저 세상에서 새 생명을 얻는 삶으로, 자신의 생명이나 명예를 박탈 당할 각오를 해야 하고 예수님과 같은 운명을 나눌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탑을 세우는 일과 전쟁을 준비하는 일의 비유를 통해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해 볼 것을 권고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름에는 철저한 추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순간적인 열정만이 아니라 포기할 줄 모르는 믿음과 성실함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종합하며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 외에 모든 것에 대한 버림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삶의 태도로, 예수님께서 제자도(弟子道)를 가르치실 때마다 강조하신 것이며(5,11.28; 18,22.28; 9,57-62 참조) 당신 외에 소중한 존재를 미워하라는 모진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당신과 함께 길을 가려는 이들이 더 이상 군중이 아니라 제자로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언제든지 예수님을 떠날 수 있는 군중의 모습인지 아니면 속마음까지 예수님과 같아지려는 참 제자의 모습인지요? 십자가를 향한 당신의 여정에서 예수님께서는 구경꾼이 아니라 전우(戰友)로 함께 할 제자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 위해 우리 각자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 니다.

 

1) 아람어나 히브리어에는 비교급이 없기 때문에 덜 사랑하라.’는 것을 미워하라.’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창세 29,31.33; 신명 21,15-17; 말라 1,2-3; 루카 16,13)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동일한 내용을 덜 사랑하라.’(10,37)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9월 15일 연중 제24주일 : 루카 15,1-1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5장 1-1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세리들과 죄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1절)

- 이에 대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2절)

-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마리를 잃으면 어떻게 합니까?(4절)

-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5~6절)

-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는 부인이 한 닢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합니까?(8절)

- 잃었던 은전을 찾은 여인은 어떻게 합니까?(9절)

-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무엇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씀하십니까?(7절, 1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예수님 곁으로 모여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이것을 보고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며 투덜거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누가 진정한 주인인지 생각하게 하며 그 주인과 함께하는 기쁨에 대해 알려줍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 시대에 의롭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16,15) 이들에 비해 세리는 직업적인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전체적인 틀은 세상의 주인처럼 행세하는 의롭다는 이들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평가의 주체들은 예수님을 거저 죄인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는 의롭지 않아 보이는 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 말씀을 전하시며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고 당신과 함께하는 삶으로 그들을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두 비유 속에서 동일하게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6.9절)라는 초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하느님의 천사들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 기뻐한다.’(7.10절)는 선포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당신을 하늘에 대해서 알고, 하느님의 천사들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존재로 선포하시는 것이며 하늘에서 기뻐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고 투덜대는 사람들을 당신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길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자리에는 회개한 사람과 초대에 응한 친구와 이웃이 있습니다. 의롭다는 이들이 자신의 의로움에 도취되어 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면 기쁨의 자리에 함께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늘과 분리 된 이들이며 하느님과 다른 판단을 하고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로 남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을 접고 하느님께 의로운 판단을 맡겨드릴 때, 곧 내가 아니라 그 분을 의로움의 주인으로 모실 때만 이 기쁨의 자리에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투덜거림은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을 판단하며 그의 의로움을 논하고 투덜거리며 뒷담화를 합니다. 의로움에 대한 판단 주체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느님을 알고 또한 그분의 판단 기준을 안다는 교만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투덜거리는 사람인지? 죄인임을 인정하는 잃어버린 사람인지? 당신과 기쁨을 함께 나누시려고 우리에게 들려주신 비유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초대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도드립니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 사랑에 우리가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8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 니다.

 

 

 

9월 22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 루카 9,23-26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9장 23-26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내 뒤를 따라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23절)

-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과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의 목숨은 어떻게 됩니까?(24절)

- 25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 사람의 아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26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베드로 사도가 제자들의 대표로 나서며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9,20)라고 고백합니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는 됐다 싶으셨는지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 말씀을 처음으로 하십니다.(22-23절)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오늘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은 〈당신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르코는 이 말씀을 “제자들과 함께 군중”(8,34)에게, 마태오는 “제자들”(16,24)에게만 하셨는데, 루카가 전하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당신을 따르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열려 있음을 강조합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 그 모습을 전함에 있어서 오늘 복음이 특별히 부각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병행하는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서에는 없는 〈날마다〉라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9,23)는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 단 한 번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이어져야 하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오늘 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대축일’을 경축 이동으로 지냅니다. 이분들이 완성하신 순교라는 거룩한 행위는 단 한 번의 십자가로 이루어진 일회적인 사건이지만 매일매일의 작은 십자가가 결정적으로 한 번에 드러난 사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복음을 전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사도 14,22)라고 말했듯이 〈날마다〉 지는 우리의 작은 십자가가 모여야 순교라는 거룩한 사건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세상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는 십자가가 어리석고 불필요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평가이지 예수님의 평가가 아님을 기억합시다. 〈날마다〉 지는 십자가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으로 지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시다. 영원한 생명과 천국에 대한 갈망으로 세상을 이기며 나아갑시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날마다 지고가야 하는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지 나누어 보고 순교 성월을 맞아 성인들의 삶을 묵상해봅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8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29일 연중 제26주일 : 루카 16,19-31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16장 19-31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부자의 모습은 어떠합니까?(19절)

- 부잣집 대문 앞의 라자로의 모습은 어떠합니까?(20~21절)

- 가난한 이와 부자는 죽어서 어디에 있습니까?(22~23절)

- 아브라함 곁에 있는 라자로를 본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무슨 말을 합니까?(24절)

-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25~26절)

- 아브라함에게 부자는 무엇을 청합니까?(27~28절)

-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고 하자, 부자는 어떻게 대답합니까?(30절)

- 31절을 함께 낭독합시다.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16,13)라는 말씀을 듣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는 말씀과 함께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15-31절) 오늘 복음인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그들에게 행해진 연속된 가르침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부자와 가난한 이의 처지가 죽은 이후에 완전히 뒤바뀐다는 이야기(19-26절)와 모세와 예언자들의 가르침대로 살며 회개해야 한다는 이야기(27-31절)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왕처럼 값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호의호식하며 살았던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이의 이름인 ‘라자로’1)가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천국과 우리가 읽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은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남깁니다.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게 되자 비로소 깨달음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아버지의 집에 있는 다섯 형제의 구원을 위해 나서게 됩니다. 그가 깨달은 방법은 ‘회개’였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말하며 라자로를 보내달라고 청하지만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만을 듣게 됩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세상 방방곡곡에 전해진 이 시대에도 여전히 돈을 좋아하며 예수님을 비웃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 기세마저 등등해 보입니다. 부자가 가진 재물이 그를 천국으로 이끌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재물이 많아도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으며, 그 때에는 후회해도 이미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전하신 이 비유 말씀이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말씀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이웃의 아픔이나 어려운 일을 볼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찾아보고 기도와 선행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0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 니다.

 

1) 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