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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기 청소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청소년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글 김가영 비비안나 | 고등학교 2학년, 중리성당

 

지난 7월 28일(일)부터 31일(수)까지 일본 나가사키와 히라도 일대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처음 가는 해외성지순례라 무척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기 전 일본 불매운동이 시작되어 현지 분위기 등이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7일 기도를 바치며 순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청했는데, 일본에 도착하니 다행스럽게도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분위기도, 날씨도 좋아서 기쁜 마음으로 순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원폭자료관이었습니다. 원폭자료관은 1945년 8월 9일에 나가사키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파괴된 나가사키의 모습과 피폭 자료 등을 전시해놓은 곳입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된 시계는 폭탄 투하시간인 11시 2분을 가리킨 채로 멈췄는데 그것 외에도 다양한 피폭 자료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시관을 나와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에 조선인 희생자들의 추모비 앞에서 그들을 생각하며 주모경을 바쳤습니다.

  

다음으로 나가이 타카시(바오로) 박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으로 갔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 간 나가이 타카시 박사는 피폭자들을 치료하고 평화를 위해 힘쓰신 분입니다. 기념관 바로 옆에는 박사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만들어 준 한 칸짜리 방이 있는데 이 집을 ‘여기당(如己堂)’이라고 합니다.

  

첫째 날 순례미사는 나가사키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인 우라카미 성당에서 드렸습니다. 우라카미 성당은 원폭 투하 당시 건물이 붕괴되고 그 안에 있던 신자 8,000여 명이 사망했던 곳입니다. 성당 입구에는 파손되고 검게 그을린 당시의 석상들이 있었고 미사를 드렸던 소성당에는 원폭 투하 당시 피폭을 당한 ‘피폭 마리아’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우라카미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평화’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던 나가사키의 신자들과 신

부님들이 평화를 짓밟아버리는 전쟁에 희생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죄 없는 일반시민들과, 특히 강제로 일본에 끌려와 힘겹게 살아가다 희생된 조선인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또 피폭된 성모상을 보면서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둘째 날에는 26성인의 순교지를 순례했습니다. 26성인 기념관 옆에 세워진 성 필립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가이드 선생님으로부터 필립보 성인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26성인은 1597년 2월 5일에 그곳에서 순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이번 순례에 참가한 우리보다도 어린 12살, 13살, 14살의 어린이도 있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희는 그분들의 굳건한 신앙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주모경을 바치고 26성인 기념관으로 이동했습니다.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니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상이 보였습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예수회 신부님으로서 인도 고아에서 활발히 선교를 하다가 일본인 안지로를 만나 1549년 8월 15일 안지로의 고향인 일본 가고시마로 가셨습니다. 하비에르 성인은 가고시마의 영주에게 엄청난 환대를 받았고 이후 히라도와 야마구치를 방문하며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고 합니다. 기념관의 한쪽 벽에는 바오로 미키 성인이 매달려 있는 십자가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바오로 미키 성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을 처형하는 사람을 용서한다고 하시고 그 사람을 개종시키며 순교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셨지만 ‘과연 자신을 십자가에 매달고 창으로 찌르는 그 사람까지도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용서라는 것을 잘 실천해왔는지 잠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순례한 곳은 오우라 천주당입니다. 오우라 천주당은 프티쟌 신부님이 1865년 3월 17일 가쿠레 기리시탄(숨어있는 그리스도인) 들을 기적적으로 만난 장소입니다. 200년 전 평신도 지도자는 “7대 후 로마에서 신부님이 찾아오고 신앙의 자유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순교했고, 우라카미에 살던 그의 후손들이 “프랑스 절에 산타 마리아가 계신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 오우라 천주당에 계신 프티쟌 신부님을 찾아가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현재 오우라 천주당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오우라 천주당을 마지막으로 나가사키에서 히라도로 이동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히라도에서 이키츠키 섬으로 이동하여 이키츠키 자료관으로 갔습니다. 이키츠키 자료관에서 이키츠키 섬에 있던 가쿠레 기리시탄이 종교를 어떻게 변형해왔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 곳에서 본 기도문이나 전례 등은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그곳을 나와 이키츠키의 평신도 지도자였던 가스팔이 그의 가족들과 함께 순교하고 묻힌 가스팔 묘에 들러 주모경을 바쳤습니다. 히모사시 성당에서 셋째 날 순례미사를 드리고 오후에는 자비에르 기념 성당을 순례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히라도 성당이었으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이곳에서 최초로 가톨릭을 포교한 것을 기념하여 전쟁 중 소실된 성당을 재건립한 것입니다. 성당은 절이 많이 들어선 언덕 위에 있는데 절이 많으니 가톨릭 신자들이 이 길로 오면 감시를 피해 비밀 공소로 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이 주변은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순례한 타비라성당은 프랑스인 드로 신부님이 신자들을 위해 산 땅에 신자들이 세운 성당입니다. 드로 신부님은 신자들이 가난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신기술을 가르치고, 서양에서 과일과 밀을 들여와서 재배하게 했습니다. 저는 신자들의 신앙뿐 아니라 삶까지 신경쓰며 돌보아주신 드로 신부님의 일생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후쿠오카의 주교좌성당인 다이묘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

 

저는 이번 순례를 통해 일본에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파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애쓰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과 많은 선교사들의 일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자신의 목숨으로 신앙을 지켜낸 많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묵상하며 저의 신앙을 한층 더 굳건히 할 수 있었고 신앙인으로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저 또한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끝으로 이번 성지순례를 함께해 주신 청소년국 신부님과 선생님들, 기도해주신 모든 부모님께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