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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현장에서 - ‘대상’ 수상작
가장 따뜻한 인정


글 김선영 | 성주군종합사회복지관 서비스제공2팀장

 

이번 호부터 사회복지의 현장에서는 천주교대구대교구 사회복지회에서 주최한 “2019년 대구카리타스, 우리들의 이야기공모전에서 수상한 사회복지사들의 수기를 한 편씩 소개해드립니다. - 편집자 주()

 

초심 : 2016년 1월 나는 성주군종합사회복지관의 바우처 담당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나는 마흔이 넘어 사회복지 실습 과목을 시간제로 이수한 후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가진 경력단절여성이었다. 이런 나에게 드디어 취업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성주군종합사회복지관에 바우처 담당 계약직으로 입사를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시골은 도시보다는 구직 경쟁력이 다소 낮고 그때만 해도 누가 나에게 백만 원만 주면 죽어라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터라 출근하는 자체가 너무 기쁜 나머지 출근하자마자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나서서 했고, 어떤 일이든 무슨 일이든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다.

복지관에서 봉고차를 운전하려면 1종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운전학원에서 젊은 강사에게 혼이 나며 배워서 면허증을 취득했고, 관련분야에 대해 좀더 공부를 하고 싶어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합격자 발표날에는 마치 복권에 당첨 된 듯이 기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앞에 닥친 모든 일들을 열심히 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이런 초심은 흐려지고, 보이지 않게 갈라진 물길이 있듯이 넘어설 수 없는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사실 내가 미혼이던 IMF 전에는 ‘계약직’, ‘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힘들면 그만두고 나오는 곳이 직장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경력단절여성으로 지내던 나는 사회의 이런 가혹한 현실을 잘 몰랐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사농공상처럼 넘어설 수 없는 신분제에 갇혀, 자신이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소외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상습적인 지각과 함께하는 일에 온 몸을 던지지 않는, 연차가 오래된 직원을 모닝콜까지 해주며 챙기는 모습에서 ‘계약직 사원이라면 저렇게까지 할까? 다음해 재계약을 안 하고 말 테지…정규직끼리는 서로 챙기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갓 대학에 입학한 딸에게도 “다 필요 없다. 출산휴가 갈 수 있는 정규직으로 입사만 하면 된다.”고 할 정도로 나에게는 정규직이 철밥통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들이 쑥 들어가게 된 사건이 생겼다. 내가 담당하는 프로그램 참여자

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구급차를 타고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 했다. 부장님과 팀장님이 함께 달려가고 급한 고비를 넘긴 후 정신이 나간 상태로 새벽녘에 복지관으로 돌아 왔을 때 함께 남아서 걱정해 주던 직원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에는 너무 놀라 정신이 없었는데 지난 내 생각대로라면 사고의 책임을 일개 계약직인 내 탓으로 하면 될 텐데 아무도 나의 탓이라 하지 않고 위로해 주던 모습들을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 비정규직이라는 틀에 갇혀 오히려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진 않았나 반성이 되었다.

 

가장 따뜻한 인정 ‘우리 모두 계약직이다.’

2018년 1월, 나는 입사 2년 만에 서비스제공2팀 팀장이 되었다. 사회복지 전공자도 아니고 경력도 짧은 40대 후반 아줌마에게는 파격적인 인사라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다. 그해 우리복지관에는 계약직 과장도 나왔다.

팀장 업무분장 후 관장님과 첫 면담을 하는 날에 관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계약직입니다. 나는 법인 계약직, 선생님은 기관 계약직. 어차피 우리 인생 자체가 유한한 계약직입니다.” 라고 하신 말씀은 내 평생 가슴에 각인된 충격이었다. 그 순간 가슴속에 응어리진 무엇인가가 탁 풀어지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스스로 자격지심에 빠져 있으면서도 표시내지 않으려고 온 마음으로 애쓰는 나에게 그 마음을 알아주는 관리자의 한마디는 참 큰 의미로 다가왔다. 깨어있는 관리자의 열린 생각과 행동으로 급여 체계와 수당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없도록 노력하면서 계약직들의 퇴사율은 2년 가까이 0%에 이르렀다.

 

행복한 어울림과 일상의 기적 ‘절차탁마(切磋琢磨)’

안정적인 궤도를 벗어나 나를 팀장으로 업무분장하고, 지체 장애인 행정도우미 친구를 행복청년 일자리로 채용한 모험적인 결정을 한 그들에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심지어 부장님은 ‘절차탁마’라는 팀장 스터디를 실시하고 있다. 팀장 스터디를 통해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90년생들을 이해하고 올바른 수퍼 비전을 줄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키고자 하신다. 사실 안절부절하며 좌충우돌하고 있는 신입팀장인 나 때문인가 싶어 가슴이 쿡 찔리지만 모른 척하고 무조건 열심히 배우고자 한다. 올 연말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의 진정한 철학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다.

지금 우리 서비스제공팀은 4년차인 20대 중반의 깐깐한 선임 사회복지사, 전직 운동선수였던 영양사, 올해 환갑인 다혈질 조리사, 장애인행정도우미에서 행복청년일자리로 돌아온 지체장애 사회복지사,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한 엘레강스한 심리치료사, 마지막으로 열정 만큼은 자신있는 신출내기 선임팀장이 한 팀을 이루어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지내고 있다.

월급받은 만큼만 일하면 되는 월급쟁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던 나는 남을 도와줄 수 있는 행복한 직업인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타인과 함께 체험하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현장에서 내가 성장하고 도전할 수 있는 가슴 뛰는 삶을 꿈꾸고 있다.

앞으로는 내가 담당한 프로그램만 잘 하면 된다는 시선에서 사회복지의 철학을 고민하며 공공선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진정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 나를 이런 사회복지사로 만들고 주고 있는 성주군종합사회복지관이 나는 너무너무 좋다.

2019년 나는 지금 성주군종합사회복지관의 법인 계약직이 아닌 기관 계약직 사회복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