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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예쁜 것과 약한 것, 그리고 슬픈 것


글 허찬욱 도미니코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암으로 죽기 전 철학자 김진영은 병상에서 짧은 메모들을 남깁니다.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썼던 234편의 메모가 『아침의 피아노』(2018)*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쓴 글들로 엮은 그의 유작입니다. 담담한 필치로 적어낸 짧은 글이지만 빨리 읽을 수는 없는 글입니다. 삶이 시들어가는 과정을 먹먹한 마음으로 따라가야 하는 쉽지 않은 독서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계절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냅니다.

이 책에서 그는 한 번의 봄과 가을, 그리고 한 번의 겨울을 삽니다. 그러나 여름만은 그의 병상을 두 번 통과해 지나갑니다. 그는 짧게 머물다 가는 봄을 보며 “가는 봄이여, 새는 울고 물고기 눈에는 눈물”(167)이라는 바쇼의 하이쿠로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가을에는 “마음이 가을날 마른나무처럼 툭 꺾인다”(8)고 쓰지만 그가 가을을 싫어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여름을 대하는 방식은 좀 달랐습니다. 유독 혹독했던 그 해의 더위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2017년 여름에 “여름이 밉다”라고 씁니다.

 

“낮 동안 너무 뜨거웠다. 저녁 무렵 어스름이 들고 바람이 분다. 갑자기 대책 없이 서글퍼진다. 이 여름이 밉다.”(89)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2018년의 글에도 여름에 대한 단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가 여름을 미워했던 이유가 적혀있습니다.

 

“하기야 환자가 아닐 때도 늘 여름 나기가 힘들었다. 대기 안에 빈틈없이 밀집한 생명의 에너지들, 맹목적인 생육과 생장의 열기를 나는 어쩐지 감당하기가 힘들었다.”(219)

 

여름에 뿜어나오는 과한 생명의 에너지, 맹목적인 생육과 생장의 열기를 그는 힘들어했습니다. 모든 것이 자랄 만큼 자랐음에도 줄어들지 않는 생명의 열기 앞에서, 생명의 온기를 조금씩 잃어가는 사람은 얼마나 슬펐을까요. 강한 것은 무람없이 내리쬡니다. 예외 없고 가차없습니다. 강한 것 앞에서 약한 것은 이렇게 힘이 듭니다. ‘여름이 밉다’라고 한 것은 어쩌면, 김진영이라는 약한 이가 느끼는 강함에 대한 거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강하고 거친 것들 앞에서, 약하고 여린 것들이 겪는 현기증 같은 것 말이지요.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수년 전, 아이가 마음껏 놀게 하려고 일부러 맨 아래층에 얻은 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발을 구르거나 뛰어다니려 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줄넘기 연습을 해도 된다고 그녀가 말하자 아이는 물었다. 지렁이랑 달팽이들이 시끄러워하지 않을까?”(21-22)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크고 강한 것들은 대체로 자극에 둔감하고, 어떤 작은 일들에 시달림을 덜 받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이런저런 소음들, 말들, 힘들, 그런 것이 주변에 작고 약한 것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크고 강한 것들은 알기가 어렵지요. 그것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본래 그런 종류의 고통에는 둔감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거꾸로 말하자면 작고 약한 것들일수록 다른 존재의 고통에 더 잘 공감하고 다른 존재들을 더 잘 배려할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 저는 (지렁이와 달팽이를 걱정하는) 이 아이의 생각이 결코 바보 같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도덕적으로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한 존재들은 약한 자극에 둔감합니다. 강한 존재들에게 자극의 역치는 계속 높아져 어지간한 소리는 소리도 아니며, 어지간한 빛은 빛도 아닙니다. 그래서 강한 존재들은 강한 자극들을 함부로 뿜어댑니다. 하지만 약한 존재들은 그들이 뿜어대는 강한 자극들이 버겁습니다. 약한 존재들은 강한 자극이 주는 불편함을 너무도 잘 압니다. 그 불편함을 잘 알기에, 약한 존재들은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에게 같은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 애를 쓰지요. 이렇게 강한 존재는 점점 더 둔감해지고, 약한 존재는 점점 더 섬세해집니다.

강한 존재는 좀처럼 아름답기 힘듭니다. 둔감하고 투박한 존재가 아름답기는 힘든 일이지요. 약하고 섬세한 존재들, 그래서 다른 존재들과의 조화를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몸을 움츠릴 줄 아는 존재들만이 슬프지만 아름답습니다. “예쁜 것과 약한 것, 그리고 슬픈 것은 거의 같은 것은 아닐까.”라고 권희철은 말합니다.

‘여름이 밉다’라고 쓴 김진영의 메모는 사실 밉다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 여름이 밉다. 그래, 미워한다는 것, 그 또한 사랑이고 생이리라.” (90) 가차 없이 내리쬐는 폭염같은 세상에서 마음을 다치는 것도 약한 존재, 그러고도 결국 세상을 끌어안는 것도 약한 존재들입니다.

예쁘고, 약한 것, 그리고 슬픈 것들이 부디 오래 살아남기를, 오래 살아남아 너무 뜨겁지 않은 계절, 바람 서늘한 계절을 보기를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8월 20일은 김진영의 2주기입니다. 김진영은 그가 낯선 세상으로 들어서게 된다면, 그곳은 “바람이 지나가는 서늘한 곳”(219)이길 바라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가 원하는 곳에 있겠지요. 그렇길 바랍니다.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한겨레출판사 2018

 

 

**희랍어 시간, 한강, 문학동네 2011

***문학동네 채널1: 문학이야기 제19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