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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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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여한준 롯젤로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8월 2일 연중 제18주일 : 마태 14,13-21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4장 13-21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어디로 물러가셨으며, 군중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13절)

-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어떤 마음이 드셨고,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14절)

- 제자들은 군중들을 왜 돌려보내려 합니까?(15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16절)

-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무엇을 하십니까?(19절)

-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은 얼마였습니까? (20절)

- 빵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얼마나 되었습니까?(21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배를 타고 건너온 외딴곳!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긴 늦은 저녁 시간! 세례자 요한의 죽음 소식에 마음은 무겁고, 찾아온 병자들을 고쳐주느라 몸은 힘드신 예수님! 가진 것이라고는 탈탈 털어보아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인 제자들!

 

끼니때를 넘겨 배가 고픈 예수님과 제자들만 먹기에도 부족한 음식을 두고, 함께 굶주렸을 수많은 군중이 눈에 밟혀 고민에 빠진 제자들은 눈앞에 펼쳐진 난감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님께 제안을 합니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비록 넉넉하지 않은 양의 음식이지만, 시장하실 스승님과 함께 군중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자,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마을로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 생각했던 제자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다.’라고 하시니, ‘혹시 스승님께서 우리가 모르는 음식을 더 가지고 계시는가?’ 하는 기대를 해 보려는데,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는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부풀었던 기대를 접으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결국 제자들이 처음 제안했던 대로 ‘군중을 돌려보내어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는 것’으로 끝날 것 같았던 상황은 의외의 반전을 맞이합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이 그것을 풀밭에 앉은 군중에게 나누어주니, 모두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차도록 남았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 외딴곳이라는 장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힘든 상황의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던 제자들이 몰랐던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기억했다면, 예수님이 지금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돌려보내자.’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제자들이 잊고 있던 것, 제자들이 몰랐던 것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분명 “보낼 필요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말하고, 결정하고, 선택하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몰라서, 혹은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려 ‘필요가 없는 것’을 두고 ‘그래야만 하는 줄’ 착각하며 전전긍긍 난감해하며 고민하는 일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저녁때가 되어 날도 이미 저물었을 때, 엠마오를 향해 가던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예수님을 ‘그냥 보내지 않고’, 오히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루카 24,28-29 참조)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고,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수시로 잊어버려 눈앞에 펼쳐지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동안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어버려 ‘필요가 없는 것’을 두고 ‘그래야만 하는 줄’ 착각하며 전전긍긍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나 생각해봅시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살아오면서 예수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필요가 없는 것’을 두고 ‘그래야만 하는 줄’ 착각하며 힘들어했던 적은 없었는지 나누어 보고,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6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8월 9일 연중 제19주일 : 마태 14,22-3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4장 22-3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 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어디로 가셨고, 무엇을 하십니까?(23절)

- 배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24절)

- 제자들은 무엇을 보고 두려워 소리를 질렀습니까?(26절)

-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27절)

- 물에 빠져든 베드로의 감정 상태는 어떠하며, 그가 예수님께 했던 말은 무엇입니까?(30절)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붙잡으시며 뭐라고 말씀하십니까?(31절)

-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오르자 어떤 현상이 일어났고, 배 안의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은 어떠합니까?(32-3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면서 두려움은 점점 작아질까요? 아니면 오히려 점점 더 커질까요?

깜깜한 밤, 영화에 나오는 유령이나 귀신, 집에 혼자 있는 것,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 것, 치과에 가서 검사를 받는 것, 어린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면서 이런 것들을 무서워하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 새로운 도전, 삶의 변화, 책임을 지는 것, 가까워지는 죽음, 이런 것들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두려움은 어른이 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어릴 적 느끼는 두려움은 주변의 환경과 외부의 조건으로 인해 주어지는 두려움이 더 많은 반면, 어른이 되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두려움이 더 많아 보입니다.

 

신앙의 여정도 이와 비슷해서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먼저 새벽에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댑니다. 깜깜한 새벽이라는 환경과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을 본다는 외부의 조건으로 제자들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잠시 뒤, “오너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베드로는 점점 물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하며 소리를 지르자,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아주십니다.

제자들이 느낀 첫 번째 두려움이 주님을 유령으로 착각해서 생긴 두려움, 외부에서 주어지는 두려움, 주님을 알지 못해서 생긴 두려움이었다면, 두 번째 베드로의 두려움은 나의 믿음이 약해서 생기는 두려움,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 자신을 믿지 못해 생긴 두려움이었습니다.

 

외부적인 조건 때문에 겁을 내며 두려워하던 아이처럼 신앙생활의 초년생들은 ‘예수님이 주님이 맞나? 잘못된 것에 희망을 두는 것은 아닐까? 세속의 가치관과 눈에 보이는 물질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이 조금 익숙해졌을 때 우리는 ‘내가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혹시 빠지지는 않을까?’하며 자신을 믿지 못해서 결심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과감히 변화하지 못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는 두려움부터 자신을 믿지 못하는 두려움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때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 하지 마라.” 그리고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해 포기하고 좌절하게 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시며,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또 하느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고 있는 자신의 의지와 신앙을 믿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어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는다면 우리 삶에 불어오는 맞바람은 모두 그칠 것입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가는데 방해가 되는 각자의 내·외적 두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묵상해 보고, 그 두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믿음의 은총을 예수님께 청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5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8월 16일 연중 제20주일 : 마태 15,21-28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5장 21-28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21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 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물러가신 곳은 어디입니까?(21절) - 가나안 부인은 예수님께 무엇이라고 소리칩니까?(22절)

-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며, 그 여자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23-24절)

- 그 여자는 예수님께 어떻게 청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합니까?(25-26절)

- 예수님의 거절의 말씀에 그 여자는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27절)

-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며, 무엇을 해주십니까?(28절)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넘사벽’이란 말을 아십니까?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격차를 줄이거나 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을 베풀기 위해 오신 예수님이지만, 구원의 선포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순서는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의 끈질기고도 간절한 청원 앞에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 냉소적이고 무서우리만큼 단호하십니다.

소리를 지르는 여인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시자, 제자들이 “돌려보내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자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고 하시며, 차갑게 선을 그으십니다. 그런데도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하며 엎드려 청하는 여인에게 이번에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며 이방인이라는 처지를 강아지에게까지 빗대며, 그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그야말로 이 여인에게 예수님의 자비와 구원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넘사벽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벽이 허물어집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단호하고 차가웠던 예수님의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내리고, 결국 호되게 마귀가 들렸던 여인의 딸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넘사벽을 허물어 버린 것을 주님께서는 ‘큰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며 주님이라는 것을 아는 지혜! 묵묵부답의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끈질기게 뒤따라가는 용기와 인내심!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을 구분하며 선을 긋는 단호함 앞에 달려와 엎드려 절을 하는 겸손! 이 모든 것이 믿음의 토대가 되겠지만,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바꾸어 벽을 허물어 버린 것은 이 말이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자리, 자기의 처지가 강아지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미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내 자리가 상 위가 아니라 상 아래라는 것, 내 음식이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는 것! 이렇게 이방인으로 이스라엘의 주님이신 예수님께 청하는 마음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굳이 자녀들에게 줄 빵을 집어 일부러 던져 주지 않아도 됩니다. 떨어지는 부스러기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떨어질 때까지 줄곧 상 아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그 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선을 지키며 예수님께 청하자, 주님께서는 오히려 벽을 허물어버리고 다가가십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 여인에게서 주님께 청하는 마음과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자비에 의지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하며 서슴없이 청하던 우리의 모습이 너무 당당하거나 선을 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동안 주님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격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좋은 대접만 받기를 원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해 줍니다.

주님의 자리를 지켜드리고, 내가 있을 자리를 잘 아는 것! 그것이 큰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방인 여인과 비교하여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청할 때 나의 마음과 자세는 어떠한지 떠올려 보고,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지 함께 나누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8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8월 23일 연중 제21주일 : 마태 16,13-2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6장 13-2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질문하십니까?(13절)

- 제자들의 대답은 어떠합니까?(14절)

-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시라고 대답합니까? (15-16절)

-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17-19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2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 ♪ ♬ ”

“나에게 넌 내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되고 ~ ♪ ♬ ”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란 제목의 노래처럼 서로 소중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면 ‘나에게 네가 특별한 만큼, 너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한 것’은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사람들은 주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너에게 난,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십니다. 이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와 똑같이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예수라는 사람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시작인만큼,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앎이고, 신앙이고,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이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여기서 ‘나에게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은 ‘나에게 넌?’에 대한 대답인 동시에,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너에게 나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구나!’ 하는 ‘너에게 난?’에 대한 대답이 됩니다.

 

그런데 문득, 오늘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한 베드로에게 이번에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반석)이다.”

‘너에게 내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란 말이지? 나에게 너는 <베드로, 교회의 반석>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나에게 누구인지?’를 알고 믿고 고백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예수님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지?’ 하는 것이 궁금해집니다. ‘나에게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너는 나에게 교회의 반석이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일까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여러분은 누구일까요?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과연 베드로 사도와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과연 베드로 사도가 들은 예수님의 대답을 나도 들을 수 있을까요?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란 노래 대신, ‘예수님에게 난, 나에게 예수님은?’이란 제목으로 새로운 가사를 써보면 좋겠습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에게 예수님은, 또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존재일지 묵상해보고, 생활 안에서 말과 행동으로 내가 믿는 예수님을 어떻게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각자의 다짐을 실천하도록 노력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8월 30일 연중 제22주일 : 마태 16,21-27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6장 21-27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밝히십니까?(21절)

-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의 행동과 반박은 어떠합니까? (22절)

- 베드로의 반박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23절)

-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4절)

-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과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각각 어떻게 됩니까?(25절)

- 사람의 아들이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때는 언제

입니까?(27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본능처럼 저절로 일어나는 마음이기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두고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자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저 개인의 취향이라 인정하고 존중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좋아하는 음식이나 개인의 취향에 관한 선택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중대한 사안이라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만 선택할 때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일수록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잠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고려한 다음,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을 선택하고,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성숙한 인간,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반박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싫은 것을 거부하는 모습이 마치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스승님의 고난과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분명 ‘하기 싫은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다가,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형제요 제자로 주님의 뒤를 따라 가고자 한다면 본능에 따라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만 하지 말고, ‘해야 하는 것’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주님의 걸림돌’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은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분명 하기 싫은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뒤를 따르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 하고 싶어도 참고 하기 싫은 일도 기쁘게 한다면’,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때, 다 갚아 주실 겁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는 생활 안에서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분별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하느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해야 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청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4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