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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염치(廉恥)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어느 작가의 글을 읽다가 “염치”라는 부분에서 눈길이 멎었습니다. 조금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남녀노소를 떠나 내가 좋아하는 부류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염치’의 유무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 ‘염치’다.”1)

 

‘염치(廉恥)’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치거나 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남에게 폐를 끼치고도 부끄럽거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보고 우리는 몰염치(沒廉恥), 파렴치(破廉恥)라는 말을 쓰고, ‘염치없는 놈’이라고 욕을 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위가 높아지고 돈이 많아질수록 ‘염치’를 내팽개치기 쉽습니다. 그러고 보면 염치는 교만이라는 말과 대척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들고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염치 있는 사람의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반면에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안하무인인 사람, 염치없는 사람은 추합니다.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사람, 임산부 자리에 앉아 비켜 주지 않는 사람, 대로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길가에 가래침을 함부로 뱉는 사람, 횡단보도나 학교 앞에서도 차를 난폭하게 모는 사람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염치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의롭지 못함을 느끼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맹자(孟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心) 안에 갖추고 있는 본성(性)을 다루면서 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데 이는 인(仁)의 덕성이 우리 마음 안에 갖춰져 있다는 단서이고, 불의를 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는데 이는 의(義)로움이 갖춰져 있다는 단서이며,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예(禮)의 덕성이 갖춰져 있다는 단서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것은 지혜(智)의 덕성이 갖춰져 있다는 단서입니다.2) 이 가운데 두 번째, 의(義)가 우리 마음 안에 갖춰져 있기에 우리는 자신이 의롭지 못한 일을 했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며 타인의 불의를 보았을 때 분노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불의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 염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맹자는 역설합니다.

 

오늘날은 개인의 자유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그 부작용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양보는 경시되고, 이런 것은 나약한 이들의 덕목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힘 있고 강한 사람은 자신의 주장만을 강조하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지쳐 일단 나부터 챙기고 보자는 생각에 염치가 없어지거나(몰염치), 내 마음속의 염치를 부숴 버리기도(파렴치) 합니다. 저부터라도 염치 있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省察)이 필요하겠지요.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

 

1)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위즈덤하우스, 82쪽.

2) 『맹자』, 「공손추상」, 6장 참조.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