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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오베르네 본당의 교리반과 스카우트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제가 있는 본당의 청소년 교육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첫째, 본당의 주임신부가 책임자로서 관리하는 주일학교 형태의 교리반입니다. 여기에는 40대 유급 교리교사와 제가 협력하여 교리반을 운영합니다. 여러 본당에서 후보들을 신청 받아 나이별로 교리반을 구성하고, 첫고해반(초등부 저학년)과 첫영성체반(초등부 고학년)은 부모 교리교사들의 자원봉사로 각 마을의 가정이나 교육관에서 진행됩니다. 그리고 신앙고백반(중등부)과 견진성사반(고등부)은 본당의 교육관에서 유급 교리교사와 청년·청소년 담당인 제(들러리)가 함께 책임지고 교리를 진행합니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 중요한 조직은 스카우트입니다. 과거 수십 년간 스카우트는 본당 청소년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여기서도 모든 사목이 주임신부의 스타일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한 끝에 상당히 위축된 형태로 오늘까지 살아남아 있습니다. 본당의 사목적 차원에서 볼 때 독립적 조직력과 기획력, 추진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주임신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스카우트를 장악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바, 어쩌면 스카우트 지도자들과 주임신부 사이의 대화 및 소통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주일학교 교리교육방식은 교리 중에 질의응답도 하고 참여를 유도하긴 하지만 대개 정적이고 지적인 교리교육방식입니다. 문제로 보이는 것은 이 아이들 중에 매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교리 시간은 대개 격주 두 시간으로 편성됩니다. 한편 스카우트 교육은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본당의 교육관에서 소집하고, 각 팀별로 야외 활동을 나갑니다. 이들이 중요한 미사에 참례할 때는 스카우트 스카프와 단복을 입은 아이들과 청년들, 어른들이 성당을 메웁니다. 그들만의 활력과 조직력이 첫째 그룹의 정적인 주일학교 방식의 교리반 아이들의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두 그룹에 중복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주임신부로부터 첫 번째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주임신부는 제가 청년·청소년을 책임지고 교리교사 역할을 병행하며, 조직을 성장시키기를 바랐습니다. 콜마르(Colmar)에서 그랬듯이 청소년 전례음악 밴드를 만들기를 기대했고, 그 외 스카우트 지도를 맡으라고 했습니다. 대구에서 저는 A본당 신부 때 신학생들과 팔공산에서 스카우트 교육을 받았고, B본당에서 주일 학교에 스카우트 교육 체계를 도입하긴 했지만 그 장점들을 알기만 할 뿐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전혀 갖추지 않았습니다. 나름 그 길로 가고 있는데….

 

주간 매일의 미사와 장례미사 때 강론 준비를 하다 보면, 한 주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목요일부터는 주일 미사 강론을 걱정합니다. 늦어도 금요일 밤에는 주일 강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미완성일 때는 토요일 오전까지도 원고 교정을 넘길 수가 없습니다. 한편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30분, 본당 사무직원들과 제의방 봉사자들과의 티타임이 있는데, 강론 준비가 안 된 날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인터폰이 와서 미팅에 합류하게 되면 제 걱정과 다른 산만한 대화들로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날에는 본당 관련 일상의 대화 한가운데

앉아 있어도 마음은 콩밭(강론 준비 마무리 걱정)에 가 있어서, 눈앞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멍 해지는 순간, 갑자기 날아드는 질문에 더욱 바보가 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주임신부는 제 불어 실력의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티타임 후 11시경부터 다시 강론 준비가 안 될 때는 토요일 오후 2시 30분부터 있는 스카우트 모임에도 가지 않습니다. 그런 어느 날, 주임신부가 스카우트의 근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모른다고 했더니, “스카우트 지도 신부가 왜 모르냐?”고 묻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신부는 주간에 쉬고 주말에만 일하는 줄 압니다.) 그저 피상적으로 출석하여 인사만 나누던 저는 “매주의 세부사항을 내가 다 알아야 하느냐 ?”고 반문하자 주임신부가 “그렇다.”고 합니다.(아는 것도 없는 제가 무엇을 주도하길 바라는 것인지?) “강론 준비가 안 될 때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주임신부는 “너는 한 주간 내내 뭐 하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일 강론 준비도 안 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 그는 남의 속을 모릅니다 .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내가 한국말로 하면 훨씬 낫지. 속으로 중얼중얼.) 그런데 그 주일 교중미사에 공동 집전을 하다가 우연히 본 그의 강론 원고는 10여 년 전의 것이었습니다.(아, 그 자신감! 화살 통에 활이 그득하니 두려울 것 없었도다!)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하고 나니, 이제 놀라거나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의 길을 가리라고 다짐할 뿐.

 

사실 아침·저녁 성무일도를 바치는데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식사 준비 및 식사, 복음 연구, 평일미사, 장례미사까지 있을 때는 하루가 꽉 차고 주간 내내 몸도 마음도 정말 바쁩니다. 거의 전쟁입니다. 상주들 만나랴, 그들이 원하는 성가곡들, 그들이 정한 독서와 복음에 맞추어, 그리고 망자의 생애에 비추어 ‘맞춤형 강론’을 구상하랴, 갖가지 회의와 아이들 교리반 참석과 학부형들 모임까지! 게다가 첫 금요일 성시간이 있는 주간은 강론 준비 정말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은 저를 운동 부족으로 내몰고, 소화불량과 두통을 맛보게 합니다. 이해하고 싶지 않거나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나를 이해해주기를 기대하면 더 힘들어질 것이므로 그냥 깨끗이 포기합니다.

 

반면 일상의 기도(미사, 성무일도, 묵주기도)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이렇게 회복이 되면 여유가 생깁니다. 그의 이해를 바라는 대신 최선을 다해 그의 희망대로 해보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안 해 봤으니까요!’ 물론 저의 체력과 시간과 상황이 주임신부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일단 그의 말대로 토 달지 말고 해보자.’ 그리고 ‘나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만약 제가 주임신부였다면 보좌신부가 그렇게 처신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故)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라는 말도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왕 이리 된 것, 저항정신으로 싸우기보다는 흐름을 타자. 그렇지 않으면 내가 더 힘들어지니까….’ 그 누구의 강박도 없이 스스로 ‘마음속으로 겸손하게 순종하는 태도’를 취하기로 한 것입니다. 마음이 한결 편했습니다. ‘나는 주님의 종이다.’를 떠올리며, 고통의 잔을 피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찾아 순종하고자 한 예언자들과 예수님의 흉내를 내보는 것이었습니다.(주임신부가 원수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주님께 더 의탁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제관에서는 나름의 노력과 인내로 일상의 기도 안에서 주님께 의탁하고 봉헌하고 보속으로 바쳐드리는 법을 배웁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스카우트 가족들 앞에서는 다정하고 정중한 한국식 인사(머리숙임+악수+안부묻기)로 요즘은 부모들과 청년·청소년 스카우트 대원들과 두루두루 친근감도 생겼습니다.

  

 

스카우트 대장 오드(Aude), 그녀는 청소년 전례음악 밴드를 만드는 일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요즘 말로 정말 쿨(Cool)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사남매의 자녀를 둔 직장인 여성인데 남편은 개신교 신자입니다. 어린 스카우트 대원들을 인솔하여 캠핑장에 가던 날은 비가 많이 내려 실내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녀는 진취적이며 씩씩할 뿐 아니라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상하게 돌보고 챙기는 어머니였고, 부모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존경스러웠습니다. 감동적인 장면들을 몰래 휴대폰에 담아 두었습니다. 그녀의 가족은 모두 악기를 다룹니다. 그녀는 보컬, 색소폰과 피아노, 그녀의 남편과 큰딸은 기타, 둘째 딸은 플루트, 막내아들은 드럼. 대장 엄마가 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각자 가지고 놀던 악기가 전례 밴드 덕분에 온 가족이 집에서 같은 악보를 가지고 같이 연습하고 미사에 봉사하게 되었다. 너무 기쁘다. 고맙다.’라고 말입니다.

 

 

영국 태생의 젊은 엄마 음악 선생님 캐럴라인(Caroline), 그녀의 딸이 첫영성체를 준비합니다. 저의 부임 초, 첫 만남에서 저는 이 젊은 선생님에게 우리 밴드의 지도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긍정적이었지만 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2019년 12월 성탄음악회에 그녀가 지휘하는 공연장(다른 마을 성당)에 큰 꽃다발을 들고 가서, 공연 끝에 그녀의 가슴에 안겨 주었습니다. 의외의 꽃 앞에서 여성은 눈빛이 흔들리는 듯했습니다. 대사는 달랐지만 마치 연인들이 프러포즈하는 장면과 비슷했습니다. 두 번째 공연장(개신교회)에서는 공연 끝에 터져 나오는 청중들의 박수갈채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가, 그녀가 지휘한 50여 명의 단원에게 꽃 한 송이씩 선사했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무너졌습니다. “내가 도와줄게! 끌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