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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묵주기도


글 김광고 요한 | 가창성당 ‘인자하신 동정녀’ 쁘레시디움

 

나는 묵주기도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왜 그런지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은 불편하고 죄스러운 생각이 들어서다. 의식적으로 고해성사 때 내려주시는 보속은 나를 위해 내려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이외에는 나를 위해서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비교적 건강하지 못해 자주 병원에 입원을 한다. 병원에 입원하면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도 묵주기도를 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제일 많이 한다. 그러면 누구를 위해서 하는가? 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지향을 두고 하는데 결국은 그 기도가 돌고 돌아 나를 위한 기도가 되는 것을 체험했다.

내 친구 중에 평소 운동과 체력관리를 잘해 건강에는 자신있다며 병원이라면 질색하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강권을 하니까 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아보게 되었는데 결과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였다. 그때서야 정밀검사를 해보니 위암으로 판정이 났다. 그럼에도 병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은 친구는 미국에 살고 있는 딸에게 가기로 예정 된 계획에 의해 다녀와서 수술을 받으면 안 되겠냐고 했단다. 결국 수술을 받게 된 친구는 수술 후 “전이가 많이 되어 경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이라는 담당의사의 말에 때늦은 후회를 하였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어찌 하랴. 마음을 다잡고 식이요법과 체력 증강을 위해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장기까지 전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죽기 싫다는 데 있었다. 자식들도 모두 성공하여 이제야말로 자식 걱정 없이 노후를 살면 되는 것을, 현실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그때 그의 나이 69세로, 지나가는 말처럼 5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 내가 열심히 기도해 줄게. 그렇게 될 것이니 마음 놓고 살아보게나.” 나는 묵주기도를 할 때마다 지향을 두고 열심히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그는 75세 되던 해에 하늘로 떠났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를 신앙으로 인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는 서울에, 나는 대구에 살고 있어서 2~3개월에 한 번씩 내가 상경하여 투병하는 그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를 만날 때 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하면 “그래, 고마워.”라고만 말했지만 그 답을 들을 때마다 확신을 하곤 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그와 나, 모두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 지금도 나는 감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