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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여한준 롯젤로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9월 6일 연중 제23주일 : 마태 18,15-2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8장 15-2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15절)

- 예수님께서는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몇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고 하시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16절)

- 그가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어떻게 여기라고 하십니까?(17절)

-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매고 풀면 하늘에서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18절)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청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십니까?(19절)

-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어떤 곳에서 함께 계신다고 합니까?(2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은 형제가 회개하도록 돕는 우리의 노력을 멈추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형제가 죄를 짓거든, 그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고 하십니다. 다른 누구의 개입 없이 일대일로 만나서 좋게 타이르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듣지 않거든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지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타이르라고 하십니다. 일대이 혹은 일대삼으로 만나서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도록 도와주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가 “그들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고 하십니다. 일대일, 일대이나 일대삼, 그래도 안 되면 일대교회(공동체전체)로 만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죄를 지은 한 사람의 회개를 돕기 위해 혼자서 노력하고, 그래도 안 되면 둘이나 셋이 함께 노력하고 그래도 안 되면 교회가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십니다.

죄를 지어놓고도 수차례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타이르는 것을 끝까지 듣지 않고, 심지어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의 이런 마음이 너무나 냉소적이고 딱딱하고 완고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만 마음을 모아 청하면 ‘들어주시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고 하십니다.

냉소적이고 딱딱하고 완고하여 ‘듣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과 달리 ‘무엇이든 이루어 주시는 관대하고 너그럽고 자비로운 하느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마치 우리는 옹졸하고 치졸하고 완고한 마음으로 자꾸 땅에서 매고만 있고, 하느님께서는 넓고 자비롭고 관대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늘에서 풀고 싶어 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나는 이미 하늘에서 다 풀고 있으니, 이제 너희가 땅에서 풀기만 하면 된다.’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언제쯤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는 단둘이 만나서 타이르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는 이 땅에서 단단히 매지 않고 쉽게 풀어 버릴 수 있을까요?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비록 죄는 짓더라도 서로 타이르고 그 타이름을 들어주며 무엇이든지 풀어주며 산다면, 이 땅이 바로 모든 것이 풀려 버린 하느님 나라가 되지는 않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 풀고 계십니다. 이제 이 땅에서 우리가 풀기만 하면 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딱딱하고 완고하게 매여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미 모든 것을 다 풀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은총을 청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5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13일 연중 제24주일 : 마태 18,21-35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8장 21-35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베드로는 예수님께 어떤 질문을 합니까?(21절)

- 예수님께서는 몇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십니까? (22절)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무엇에 비유하십니까?(23절)

- 빚을 갚을 길이 없는 종에게 주인은 어떤 명령을 합니까? (25절)

- 주인은 종에게 어떤 마음이 들었고, 종에게 취한 행동은 무엇입니까?(27절)

- 빚을 탕감 받은 종은 다른 빚진 동료에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28절, 30절)

- 주인은 빚을 탕감 받은 종을 불러 들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32-33절)

- 화가 난 주인은 종에게 어떤 조치를 취합니까?(34절)

- 예수님께서는 자기 형제들을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35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선한 의도로 좋은 일을 했을 때, 그것을 보고 영향을 받아 그 좋은 일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연예인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와 같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이 봉사, 헌혈, 기부를 했을 때 그것을 보고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강요하고 억지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시작한 좋은 일을 자발적으로 따라 참여하고 서로가 함께하면서 세상을 더욱 따뜻하고 살기 좋게 만들기에, 그 목적도 과정도 바람직한 아름다운 문화라 여겨집니다. 결국 선한 영향력이란 선함, 아름다움, 착함, 따뜻함, 관심, 배려, 인내, 나눔…. 이런 것들이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종들과 정확하게 셈을 하는 임금처럼 분명 하느님은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정확히 셈을 하여, 빌린 대로 갚기를 바라는 정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런데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라는 간청 앞에 한없는 자비를 베푸시어 모든 부채를 단번에 탕감해 주십니다.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피조물인 인간이 불쌍해서? 우리의 청원이 너무나 간절해서? 아니면 크신 자비로움으로 더 큰 흠숭을 받기 위해서? 철저히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 넉넉한 자비를 베푸시는 이유를 우리는 왕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니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이유는 그분의 자비를 체험한 우리가 그 영향을 받아 우리도 서로를 용서해주는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즉 자비의 영향력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라시며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 자비의 선한 영향력을 거슬러, 보고도 따라 하지 않고 알고도 잊어버리고 받고도 베풀지 않으면,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다시 정의로움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한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시작된 자비의 릴레이를 무참히 끊어버리는 우리의 무자비가 결국 자신을 심판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우시며 동시에 자비로우십니다. 우리는 늘 그분의 정의와 자비 앞에 서 있습니다. 스스로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주며 자비로운 사람이 될 때 자비로운 하느님 앞에 서게 되겠지만, 형제의 청을 들어주려고도 하지 않는 무자비한 사람이 될 때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하느님 앞에 서 계십니까?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내 삶의 자리에서 주위의 이웃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우리 각자의 선한 영향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생각해보고, 그것을 신앙 안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4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루카 9,23-26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9장 23-26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23절)

-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24절)

-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경우는 무엇입니까?(25절)

-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26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늘 ‘내가 옳고, 내가 다 알고, 내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또다시 상처받게 될까 봐 두려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호의를 의심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내가 가진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만으로 모든 것을 구분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 내가 가진 물질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 의견, 내 상처, 내 소유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나에게 집중하며 자신에게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부자연스럽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원활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하느님에 대한 관심과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내어 놓지도, 자신을 버리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을 위해 온전히 내어놓은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을 버리기’, 즉 ‘나를 내려놓기’ 라고 하십니다. 나를 내려놓지 않으면, 십자가를 질 수도 없으며 예수님 뒤를 따라갈 수도 없습니다. 이를 강조하시듯 예수님께서는 ‘자신’, ‘자기 목숨’, ‘자기 자신’이라는 다양한 표현으로 ‘나를 내려놓기’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를 내려놓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과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며, 나도 틀릴 수 있고, 나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내려놓은 사람은 과거의 상처를 깨끗이 치유 받고 경직된 상태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호의를 있는 그대로 순수하고 기쁘게 수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를 내려놓은 사람은 내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의 가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성은 끊임없이 내 의견, 내 상처, 내 소유, 그리고 내 목숨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나를 내려놓기’를 해야만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뒤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세상의 여정을 걸어가는 내 어깨에 무겁게 지고 있는 것이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한 내 십자가인지, 아니면 내려놓지 못한 나 자신인지?’ 고개를 돌려 살펴봅시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내가 지금 무겁게 지고 있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십자가인지 혹은 내가 내려놓지 못한 나 자신인지 돌아보며, 나를 내려놓기 위해 특별히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지 묵상해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83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27일 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 마태 21,28-32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1장 28-32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했을 때 그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9절)

- 아버지가 또 다른 아들에게 같은 말을 했을 때 그의 말과 행동은 어떠합니까?(30절)

- 두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사람입니까? (31절)

- 요한이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그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3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큰 사기를 당하고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훌훌 털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누워 화병이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슴 아픈 시련을 경험하고도 그럴 수 있다며 금세 잊어버리며 일상을 똑같이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신에 대한 상처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불신하며 만남의 기회를 차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키워온 사업이 실패를 하고도 다음에 다시 하면 될 거라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격을 받고 쓰러져 평생 원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이웃과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위기와 시련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 위기와 시련을 새로운 성장을 위한 촉진제라고 생각하며 극복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조건에서 완전히 다른 결과에 다다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며, 습관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말과 같이, 생각은 참으로 중요하고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서 생각이 큰 힘을 발휘하는 만큼, 한번 생각한 것을 다시 바꾸는 일이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서 맏아들은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하며 순명하지 않고, 오히려 “싫습니다.”라며 반항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 바빠서인지? 귀찮아서인지? 포도밭 일이 힘들어 서인지? 그냥 그날 기분이 나빠서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맏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분명 ‘싫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자신이 한 선택, 아버지 앞에서 했던 ‘생각을 바꾸어’ 결국 일하러 갔습니다.

이는 요한의 의로운 가르침을 듣고, 자기의 생각을 바꾸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간 세리와 창녀들에 관한 희망의 이야기이며, 끝까지 생각을 바꾸지 않아 회개하지 않았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도 생각만 바꾸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발견하며,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지 않아 늘 하던 대로 하고, 편한 대로 하고, 마음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가는 사람’과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믿지 않았던 사람’의 결과는 완전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생각만 바꾸면, 당장 하느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위기와 시련 앞에서 나 자신이 보이는 반응이 어떠한지 떠올려 보고, 생각을 바꾸어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지혜를 청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8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