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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무화과(無花果)를 먹으며…
-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 월간 〈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식당에서 후식으로 무화과가 나왔습니다. 예전엔 주로 말린 무화과를 먹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재배해 신선한 무화과를 맛볼 수 있습니다. 8월부터 10월까지가 제철이지요. 무화과는 쉽게 무르기 때문에 이삼일 내에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잼을 만들거나 말려서 보관합니다. 성경에도 무화과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요. 창세기에도 등장하니(3,7) 정말 오래된 과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언급하셨기에 무화과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친숙한 것 같습니다.

 

겉은 못생겼고 맛도 없어 보이는데, 잘라 보면 속이 빨갛고 화려합니다. 무화과(無花果)라는 이름은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인데, 꽃도 없이 어떻게 열매가 맺힐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먹는 무화과 열매는 열매가 아니라 바로 꽃입니다. 무화과는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비대해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말려 들어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먹는 무화과 열매의 푸른 껍질은 꽃 받침대이고, 그 속의 붉은 열매는 수많은 꽃인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꽃도 없이 어느 날 열매만 익기 때문에 ‘꽃 없는 과일(무화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무화과만 봐도,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화과처럼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속이 알차 아름다운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주장만 내 세우기보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 평생을 봉사하며 살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사람이 있지요. 앞 다퉈 자기 목소리만 내려는 오늘날에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워 보입니다. 노자(老子)는 도(道)를 추구하는 성인은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내보이지 않기에 밝으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않기에 드러나며, 스스로 자랑하지 않기에 공이 있고, 스스로 뽐내지 않기에 오래간다.”1)

 

노자는 도(道)를 설명하면서 빈 그릇과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도 자체가 마치 텅 빈 그릇과 같아 아무 작용도 없을 듯하지만, 오히려 비어 있기에 채우지 못할 것이 없고, 쓰려고 하면 그 작용도 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런 도(道)를 따르고자 하는 인간도 스스로 자신의 그릇을 비워야 하겠지요.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만을 강조하거나, 자신의 공을 뽐내고 싶어 하고 남 앞에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면,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온갖 욕망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마태 23,25-26)

 

우리는 하느님께서 만드신 보물을 품고 있는 질그릇입니다.(2코린 4,7 참조) 하지만 그릇 안이 나의 것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다른 것을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이를 받아 줄 마음의 여유도 없고, 형제의 아픔이나 사랑이 들어올 공간도 없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의 사랑마저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나의 그릇을 자꾸만 비워 나갈 때, 그 빈 공간만큼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찰 것입니다. 옆에 있는 형제자매의 아픔과 관심이 들어올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무화과처럼 속이 알차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내면을 비워 나가야 한다는 역설의 진리를 깨닫고 실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무화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드는 생각입니다.

 

1) 『노자』, 22장.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