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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여한준 롯젤로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10월 4일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 마태 21,33-4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1장 33-4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밭 임자는 포도밭을 누구에게 내주고 멀리 떠납니까?(33절)

- 주인은 왜 종들을 소작인들에게 보냅니까?(34절)

- 소작인들은 종들을 붙잡아 어떻게 합니까?(35-36절)

-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아들을 보내며 어떤 생각을 합니까?(37절)

- 소작인들은 주인의 아들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합니까?(38-39절)

- 주인은 돌아와서 악한 소작인들을 어떻게 합니까?(41절)

-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은 나중에 어떻게 되며, 이는 누가 이룬 일입니까?(42절)

- 하느님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주신다고 하십니까?(4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어느 본당에서 수십 년째 동네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마당을 개방하고 주차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늘어나는 차량 수와 신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긴 고민과 논의 끝에 성당 마당 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하고 리모컨을 판매하였습니다. 리모컨이 있는 사람들만 성당 마당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동네 주민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하느님 믿는 사람들이 너무한다.”, “성당 다니면서 이렇게 야박하냐!”고 하며, 새로 변화된 모습에 비난하고 항의하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동안 성당의 배려로 편하게 주차했던 것에 대한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지금 불편해진 상황에 항의하고 비난하는 모습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배려가 지속되면 권리로 여긴다.’고 했던가요? 아무도 준 적이 없는데 스스로 가졌다고 착각하며, 처음부터 자기 것인양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러다가 원래 주인이 나타나 돌려달라고 하면 분노하고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 자기 몫에 대한 지나친 애착 때문입니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습니다. 포도 수확 철이 가까워져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내자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매질 하고 죽였습니다. 심지어 다시 보낸 종들과 주인의 아들마저 그렇게 죽이며, 저희끼리 이렇게 말합니다. “저자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포도밭이 원래 누구의 것인지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도 준 적이 없는데 스스로 가질 수 있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이런 착각으로 ‘주인의 몫’을 탐하고, 포도밭까지 욕심낸 소작인들은 결국 가차없이 벌을 받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원래 ‘누구의 것’인지, 이것은 ‘누구의 몫’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준 적도 없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원칙대로 하는 것을 두고 권리와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정말로 다 내 것이 맞는지, 오늘 내가 받고 있는 것이 순전히 다 내 몫이 맞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인의 몫을 주인에게 돌려드리고, 더 많은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다 내 것이 맞는지 돌아보며, 나의 몫 중에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 각자에게 포도밭을 맡기신 주님께 어떻게 보답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감사드릴 것을 나누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3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0월 11일 연중 제28주일 : 마태 22,1-14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2장 1-14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 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하늘나라는 무엇에 비길 수 있습니까?(2절)

-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3-6절)

- 진노한 임금은 그들을 어떻게 합니까?(7절)

- 임금은 혼인 잔치를 손님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어떤 이들을 다시 초대합니까?(8-10절)

- 혼인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11-1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다음, 예수님이 알려준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를 믿으며 살고 있지만,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사람들에게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성조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이집트 탈출에 대한 특별한 신앙 체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에게 선택 받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율법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뜻이 이와 달랐더라도 당시 종교와 정치 지도자, 그러니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이렇게 믿고 또 가르쳤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민족적 혈통과 율법 준수라는 기준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들며, 율법을 잘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받은 이들’로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하느님은 세상과 동떨어져 저 높은 하늘에 계시거나 거룩한 성전 안에만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는 하느님으로 바뀌었고, 하느님 나라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혈통과 율법이라는 조건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민족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들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새로운 조건을 두고 ‘아무나 만나는 대로, 그러니까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라는 말로 설명하십니다.

‘초대받은 이들’과 ‘아무나 만나는 대로’는 완전히 다른 조건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이런 변화 앞에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초대받은 이들’만 갈 수 있던 시절, ‘초대받지 못한 이들’은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원인을 ‘초대한 사람’에게 돌리며 자신을 제외시킨 그를 원망할 수 있었고, 들어가지 못하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만나는 대로’ 갈 수 있는, 즉 누구나 갈 수 있는 지금, 잔치에 들어갔다가 쫓겨나는 이유를 더 이상 초대한 사람에게 돌리며 원망할 수 없습니다. 잔치에서 쫓겨나는 이유는 ‘예복을 갖추지 않은 나의 잘못, 내 책임’이기에 자신을 원망하며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누구나 갈 수 있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온전히 내 몫이며, 내 책임이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초대받은 이들’에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로 분명히 넓어졌지만, 단순히 소수에서 모두에게로 기준이 넓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이라는 것이 ‘나의 책임’으로 변화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복을 갖추지 않은 것은 온전히 내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이 넓어진 만큼, 우리의 책임은 더욱 커진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합당한 준비가 부족했던 나의 책임이 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습니다. 이 선택은 ‘하느님의 선택’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하는 나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 삶을 잘 선택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합당한 준비(예복)를 갖추어 ‘바깥 어둠 속에 내던져지지 말아야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합당한 준비를 갖추기 위해 지금 나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선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묵상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6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0월 18일 연중 제29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 마태 28,16-2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8장 16-2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어디로 갔습니까?(16절)

-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떤 행동을 하며, 그들의 마음 상태는 어떠합니까?(17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를 제자로 삼으라고 하십니까?(19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무엇을 가르치게 하십니까?(19-20절)

-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은 무엇입니까?(2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전교주일인 오늘의 복음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며 제자들에게 선교 사명을 부여하는 장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명입니다.

‘위드(with) 코로나 시대’, ‘포스트(post) 코로나 시대’, ‘애프터(after) 코로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밀접, 밀폐, 밀집’을 피하는 비대면 사회에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우리의 사명을 충실하게 실천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간 열한 제자는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몸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리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은 의심이 있는 상태!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놀고 있는 상황! 이것은 한 인격체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불일치’이며 ‘이중성’의 표현입니다. 동시에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와 달리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상태’입니다. 탄생 때부터 신성과 인성이 하나이셨고 말씀과 행위가 하나이셨으며, 시작과 끝이 변함없으셨던 예수님이시기에 이제는 하늘과 땅마저 그분 안에서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일치와 결합’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을 통해 ‘단일성과 완전함’이 드러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아, 하늘에 계시면서도 동시에 이 땅에 있는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기에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다.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 영원과 시간을 당신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와 하나가 되어 함께 계신데,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이중적인 모습으로 하나가 아닌 둘로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하늘과 땅을 구분하고, 하느님과 내가 분리되어 신앙과 삶이 각자 따로 놀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다른 줄 압니다. 나와 너를 구분 짓고, 내 것과 네 것을 차별하며 심지어 나 자신도 하나로 일치시키지 못해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고, 말과 행동이 다르며 어제와 오늘의 변덕이 심하고 진짜 내 모습(내면)과 남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외면)이 다르게 살아갑니다.

 

민족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전교를 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나와 예수님이 함께 있음을 알아, 나와 네가 하나가 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로 일치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한분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미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 자신과도 일치를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하는데!’ 하는 마음과 그러지 못하는 몸으로 분리되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봅시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의 ‘일치와 결합’과 반대되는 나와 너를 구분 짓고 차별하고, 나의 내면과 외면이 불일치하는 요소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숙고해 봅시다. 그리고 신앙과 삶,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나로 일치시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님께 청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5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0월 25일 연중 제30주일 : 마태 22,34-4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2장 34-4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습니까?(34절)

- 율법교사 한 사람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묻습니까?(35절)

- 율법에서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36-38절)

- 율법의 둘째 계명은 무엇입니까?(39절)

-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은 어디에 달려있습니까?(4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을 하신 하느님이 아니라 실제로 ‘참사람’이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하느님처럼 말을 하시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의 말씀, ‘참 하느님’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온전한 하느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451년 칼체돈 공의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2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으며,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정식을 완성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사람이 다르지 않고 하나로 결합되어 존재하신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이 세상 우리 가까이 현존하고 계심을 알리고,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증언하셨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존재하심으로써 하느님이 이 땅에 현존하시게 되었고 이로써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으며 영원과 시간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를 가르던 모든 분리의 장벽과 서로를 갈라놓던 경계가 이제는 완전히 치워졌습니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했던, 아니 알기 싫었던 유다인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분으로 성전에 임재하시며, 더럽고 부정한 죄인을 심판하고 벌하시며 이방인들을 차별하고 배척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정결과 부정, 거룩함과 세속적임, 의인과 죄인, 결국 하느님과 사람은 절대로 하나가 될 수 없고 같아질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 분리와 구분과 경계의 기준은 ‘율법 규정’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이미 ‘하느님과 사람이 같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아직 ‘하느님과 사람을 철저히 따로’ 생각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율법 교사 한 사람이 묻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이들에게는 ‘계명’이, 그것도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라 말씀하시며, 이어서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이미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이 똑같습니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이웃과 자신도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똑같다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 안에 하느님과 사람은 하나이고, 예수님이 가져오신 하느님 나라에서는 하느님과 사람, 나와 이웃이 하나인데,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첫째가 무엇인지? 가장 큰 것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혹시 아직도 나에게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계급, 서열, 등수, 순서, 크기’에만 두고 있다면 하느님과 사람, 하늘과 땅, 죄인과 의인을 분리시키며 “무엇이 첫째이고 먼저인지, 누가 나와 더 친한 첫째인지, 무엇이 나에게 더 큰 이익일지?”를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시험했던 율법 학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곳에 ‘형제애와 이웃 사랑’은 있을 곳이 없습니다. 사랑은 차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같다’를 말씀하시며 ‘하나’로 살고 계신데, 나는 ‘다르다’를 말하며 ‘둘’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첫째이고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중요한 가치판단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고, 분리와 구분의 경계를 내려놓고 나와 이웃이 하나임을 고백하는 사랑의 계명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비를 간구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1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