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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글 허찬욱 도미니코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레이먼드 카버(Ramond Carver, 1938-1988)의 단편집 『대성당』에는 표제작인 ‘대성당’을 비롯하여, ‘깃털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같은 유명한 단편들이 많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이 중에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에 관한 작은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한 부부에게 여덟 살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아이는 등굣길에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그날은 마침 그 아이의 생일이었지요. 교통사고 후, 의식을 잃은 아이는 곧 병원으로 옮겨집니다. 남편과 아내는 병상에 누운 아이 옆을 번갈아 가며 지킵니다. 집에 잠시 들린 남자는 집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어서 케이크를 가져가라’는 빵집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아내가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해 케이크를 주문한 것이었는데, 남편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남자는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끊어버리지요. 빵집 주인은 다시 전화를 겁니다. 화가 난 빵집 주인은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케이크를 가져가라’는 말만 퉁명스레 반복합니다. 남자는 악의적인 장난전화라 여겨, 계속 전화를 끊습니다. 바로 그날 밤에 아이가 죽습니다. 빵집 주인의 전화는 계속 이어지고, 결국 아이의 아빠는 격노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집요하게 사람을 괴롭힐 수 있냐고 수화기 너머의 빵집 주인에게 고함을 칩니다.

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 남편은 함께 빵집을 찾아갑니다. 울먹이며 찾아온 부부를 빵집 주인은 퉁명스레 대합니다. 아내는 빵집 주인에게 오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제야 빵집 주인은 태도를 누그러뜨리며 사과를 하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제분에게 일어난 일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한 일도 죄송합니다. 내게는 아이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것뿐이라오.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126)* 부부는 빵집 주인의 이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빵집 주인은 부부에게 잠시 앉으라며 권하고는, 따뜻한 커피와 설탕 종지를 내밉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127)

 

밖은 추웠지만, 빵집 안은 따뜻했습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단락은 빵집 안의 온기를 그대로 전해줍니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 주인이 말했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이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128)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빵집 주인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과연 어떤 말과 어떤 위로가 그들을 다시 일으킬 수 있었겠습니까? 빵집 주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빵을 대접하는 일뿐이었습니다. 빵을 먹는다고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올 리도 없고, 아이를 잃은 슬픔이 사라지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먹어두는 일이 도움이 된다고 빵집 주인은 조심스레 말합니다. 다행히도 부부는 빵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빵을 먹는 일이 상심에 잠긴 부부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소설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저 부부가 ‘먹을 수 있는 만큼 많이 먹었다’고 적고 있으며, ‘형광등 불빛이 햇빛처럼 느껴졌다’고 적고 있으며,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문장들을 읽고 우리는 부부의 슬픔이 치유되었다고 성급히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쉽게 치유될 슬픔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장만으로도 먹먹한 가슴을 조금은 쓸어내리게 됩니다. 다행이라 여기게 됩니다. 빵집 안의 온기를, 갓 구워낸 빵의 따뜻함을, 그리고 딱 그만큼의 사람 사이의 온기를 느끼게 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라고 번역된 원래 문장은 “a small, good thing(83)**”입니다. ‘작지만, 좋은 것’이라는 평범한 이 말은 소설가 김연수의 번역으로 맛있는 빵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으로요.

김연수는 해설에서 이렇게 씁니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너무나 왜소한 존재다. 그의 삶은 운이 좌우할 뿐이며 대개의 경우에는 하나의 사고가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진다. 그런데 카버는 인간이라고 하는 이 ‘small thing’의 중간에 ‘good’이라는 단어를 끼워 넣는다. 그러자 이 ‘small thing’은 ‘something’, 즉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뭔가가 된다.(334)”

 

인간이 겪는 불행은 크고 명확하며, 그 불행을 마주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작고 불분명합니다. 작고 불분명하지만, 그것이 함께 불행을 겪는 타인에게 약간의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것이겠지요.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별 것 아닌 것 같은 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별 것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그것이라도 하는 것이지요. 실행에 옮겨진 ‘별 것 아닌 것’은 그제야 겨우 ‘어떤 것’이 됩니다.

 

평론가 이동진은 이런 말도 합니다. “결국 인간이 주고 받는 위로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별 것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요. 이 말도 맞습니다. 만약 빵집 주인이 부부의 슬픔을 직접 위로하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지나간 일을 털어버리고 어서 일어나라는 훈계라도 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부부는 그 빵집을 박차고 나왔을 것입니다. 부부는 슬픔에 젖어, 추운 겨울의 밤거리를 정처 없이 헤맸을 겁니다.

빵집 주인은 자신이 만든 빵을 수줍게 내밀 뿐이었습니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 어쩌면, 별 것 아닌 것만이 도움이 됩니다. 별 것 아니어서, 다행히도 도움이 됩니다.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역, 문학동네 2018

**『Cathedral』, Raymond Carver, Vintage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