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여한준 롯젤로 신부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 마태오 5,1-12ㄴ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5장 1-12ㄴ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다가온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1절)

-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들의 것이 된다고 합니까?(3절)

- 위로를 받고 땅을 차지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4-5절)

-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과 자비로운 사람들은 왜 행복합니까?(6-7절)

-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이들은 어떠해야 합니까?(8절)

-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왜 행복합니까?(9-10절)

-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고,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들어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11-12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행복이 뭘까요?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요? 국어사전에 따르면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만족과 기쁨을 느껴야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까요? 언젠가 청년들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했더니 “성공해야 행복해집니다.”라고 대답을 했었습니다. 성공!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성공이고,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 성공이며, 때가 되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성공이고, 시간이 지나면 ‘좋은 차, 비싼 집, 사회적 지위’ 거기에다 어느 정도의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의 공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먼저 성공하는 것, 남들보다 더 성공하는 것’이 행복인 양 착각을 합니다. 정말 성공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 끝에 풍요로운 행복이 있다고 믿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착실하고 또 치열하게 노력하여, UCLA와 MIT를 졸업하고, ‘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으며 세계적 컨설팅그룹에 입사하였습니다. 잘 나가는 컨설턴트 2년 차 시절, 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집에 살고 돈도 잘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아이티로 봉사 활동을 간 그는 ‘돈이 있어야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 후 신학교에 들어간 그는 “왜 사는지,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며, 2016년 5월 21일 보스턴교구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배웅진(크리스토퍼)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가까이 있는 제자들과 수많은 군중에게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이 행복 하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를 살도록 우리가 지녀야 할 덕목이 가난과 슬픔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난과 슬픔, 주림과 목마름을 겪는 비참한 삶을 참고 살라는 격려도 아닙니다. 행복의 기준은 세상과 현재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있음을 알려주시며 행복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해야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가치를 두기에 지금 행복한 사람은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먼 미국에서 자신의 삶을 과감히 바꾸어 행복해졌다는 어느 사제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따뜻한 미담이 아니라 아직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 자신의 행복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묵상해보며, 우리 각자 행복의 기준을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서 찾을 수 있도록 신앙의 은혜를 청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294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 니다.

 

 

 

11월 8일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 마태 25,1-13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5장 1-13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4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7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8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비유를 들어 하늘 나라를 설명하십니까?(1절)

-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는 각각 몇 명입니까?(2절)

- 어리석은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기름을 각각 어떻게 가지고 있습니까?(3-4절)

- 처녀들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5절)

-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6절)

-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청한 것은 무엇이며, 슬기로운 처녀들은 어떻게 대답합니까?(8-9절)

- 신랑이 온 시점은 언제이며, 문 안으로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간 이들은 누구입니까?(10절)

- 문을 열어 달라고 청하는 처녀들에게 주인이 한 대답은 무엇입니까?(12-1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두 명의 진행자가 사람을 만나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퀴즈를 내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얼마 전, 긴 세월 초등학교 앞을 지켜 온 문방구가 주인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폐업을 하게 된 ‘후암동 문방구’ 할머니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아쉬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가 소개되었고, 가방을 메고 하교하는 아이들의 인터뷰 영상도 나왔습니다. 그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관해 얘기를 하며, “죽는다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에 4~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할 일을 다 한 거요. 자기가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거요.” 어떻게 초등학생이 저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이별이요. 슬픈 거요. 더 이상 못 보는 거요.”라는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죽음!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당연한 사실.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나에게는 죽음이 없는 것처럼, 혹은 아직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무시하고 부정하고 모른 척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하며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자신의 죽음을 차곡차곡 잘 준비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도 이 죽음과 같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것도 내가 생각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올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열 처녀’에 비유하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따르면,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고 하십니다.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의 차이는 지능의 차이나 지식의 정도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등만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등과 함께 기름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차이에 불과합니다. 등을 준비하는 이유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등을 들고 갔는데 불을 밝힐 수 없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등을 가진 것이며 등이 없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기름의 양은 달랐습니다. 어리석은 다섯은 ‘당장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있었고, 슬기로운 다섯은 ‘나중에 필요한 여분’까지도 함께 챙겨 두었습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몰랐던 것을 슬기로운 처녀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신랑은 내가 생각할 때가 아니라 그분이 원하실 때에 온다는 것! 그러니 내가 예상한 만큼의 양이 아니라 더 넉넉하게 기름을 챙겨 두어야 한다는 것! 즉 내가 아니라 신랑에게 주도권이 있음을 알기에, 내가 아니라 신랑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철저한 준비와 대비를 하는 슬기로움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이치, 모든 존재와 변화, 나의 삶까지도 그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아는 지혜, 그래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사에 경거망동하거나 자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함에 있어 소홀함이 없도록 등잔 뚜껑을 자주 열어보며 기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합니다. 그러한 준비로 신랑을 올바로 맞이합니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자기 확신과 고집으로 자신의 등잔을 열어보려 하지 않았고, 결국 기름이 비어 있는 빈 등잔으로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불손과 우를 범하고 맙니다. 여러분은 슬기롭게 살고 계십니까? 어리석게 살고 계십니까?

 

“할 일을 다 하는 것, 자기가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한 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슬기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신랑이신 주님은 내가 생각할 때가 아니라 그분이 원하실 때 오시는 분이십니다. 기름이 비어 있는 빈 등잔으로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기 위해 지금 주어진 삶 안에서 나는 어떻게 슬기롭게 ‘나의 할 일’을 다 할 수 있을지 기도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4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 마태 25,14-30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5장 14-30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주인은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맡깁니까?(14-15절)

- 재산을 받은 종들은 그것을 각각 어떻게 관리합니까? (16-18절)

- 다섯 탈렌트를 받은 종은 돌아온 주인에게 어떻게 보고하며, 주인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0-21절)

- 두 탈렌트를 받은 종은 돌아온 주인에게 어떻게 보고하며, 주인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2-23절)

-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돌아온 주인에게 어떻게 보고하며, 주인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4-28절)

-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와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각각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29절)

-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어떻게 됩니까?(3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서 여행을 떠나는 주인의 재산을 맡은 종들 가운데 ‘착하고 성실한’ 종들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도 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주인의 돈을 활용하여 두 배로 늘렸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주인님, 보십시오. 이만큼 더 벌었습니다.”라고 하는 종의 말에는 기뻐서 즐거워하는 마음뿐 아니라 뿌듯해하는 자신감마저 묻어납니다. 그런 종에게 주인은 “잘하였다.”라는 칭찬과 함께 “이제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라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에 반해 악하고 게으른 종은 자신에게 맡겨진 돈을 숨겨 두었다가, 그대로 돌려줍니다. “주인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하는 그의 말에는 기쁨과 자신감이 아닌, 한껏 위축되고 주눅든 불안함이 느껴집니다.

착하고 성실함과 악하고 게으름으로 분류되는 극명한 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보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들에게 주인은 ‘나를 믿고 당신 재산을 맡기신 분’,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주인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고, 그런 주인에게 칭찬을 받기를 바라는 종들은 열심히 노력해 돈을 더 벌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그들이 하는 일은 귀찮고 하기 싫은 일, 할 수 없는 일,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라 그저 작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돌아온 주인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기 때문입니다.(실제로 주인이 돌아와 “작은 일에 성실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악하고 게으른 종의 마음속 주인은 ‘모진 분’이고,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려 하는 두려운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혼날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탈렌트를 굴리는 것도 너무나 힘들고 큰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하느님을 화를 내시고 벌하시는 분, 완벽을 요구하시는 분,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두려워 늘 소극적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와 달리 하느님을 항상 용서하시는 분, 한없이 자비로우신 분, 나의 능력을 인정하고 믿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칭찬 받기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이용하여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신앙 행위도 달라집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하느님 모습의 전부라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에 대한 오해는 우리를 악하게 만들고, 하느님 모습에 대한 왜곡은 우리를 게으르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 내 표정, 내 말투, 내 시선, 내 체온은 내가 믿는 하느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능력과 내가 가진 것을 잘 이용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도 하느님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착하고 성실함과 악하고 게으름으로 분류되는 차이의 원인은 ‘하느님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옵니다. 나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지 돌아보며, 착하고 성실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3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 주간) : 마태 25,31-46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5장 31-46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 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사람의 아들은 영광에 싸여 올 때 누구와 함께 옵니까? (31절)

-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으면 모여드는 모든 민족들은 어떻게 합니까?(32-33절)

-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며, 또 그들은 어떻게 대답합니까?(34-40절)

- 임금은 자기 왼쪽에 있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며, 또 그들은 어떻게 대답합니까?(41-45절)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누구와 같다고 하십니까? (40절, 45절)

- 임금의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이들은 각각 어떻게 됩니까? (46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이 그라르에서 나그네살이를 하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은 ‘아내를 탐하려는 남자들 손에 자신이 죽게 될까봐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라르 임금 아비멜렉은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인 줄 알고 사라를 데려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꿈에 나타난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예고하였고, 이에 아비멜렉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자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네가 흠 없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한 줄 안다. 네가 나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준 이가 바로 나다.”(창세 20,6)

성경통독 중 이 대목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비멜렉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주셨다고?’, ‘그런데 왜 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막지 않고 계실까? 그러면 왜 세상의 죄는 못 막고 계실까?’ 왜? 왜? 이 물음과 오늘 복음 묵상이 겹치자, 예수님께서 마치 대답처럼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때부터 영원한 생명의 잔치를 준비하셨고, 그것이 온전히 우리를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역시 하느님은 다 계획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준비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민족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인 그때, 우리를 위해 준비된 곳이 아니라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갈’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막기 위한 하느님의 힘보다 더 크고 강한 무언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을 거부하며, 하느님께서 손수 준비해 두신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차버리는 크고 강한 힘은 바로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마치 습관처럼 행하는 ‘무관심’입니다. 저주를 받고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런 주님을 봤으면 했을 거라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몰랐다는 겁니다.

하지만 복을 받고 하느님 나라로 간 사람들 역시 “언제 주님께서 도움이 필요할 때, 합당한 도움을 드렸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합니다. 이미 일상 속에서 습관처럼 평소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선행과 자애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두 부류 다 몰랐지만, 벌을 받은 이들은 ‘해야 하는지를’ 몰랐고, 복을 받은 이들은 ‘한 줄을’ 몰랐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들어갈 하느님 나라를 이미 준비해 두셨고,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주고 계십니다. 이런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의 보호를 무너뜨리는 큰 힘은 강도나 살인과 같은 의지로 저지른 악행이 아니라 선행을 하지 않은 무관심입니다. 우리가 한 줄도 모르게 했던 수많은 선행과 자애가 우리를 죄로부터 막아주고,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하느님의 계획과 하느님의 보호를 무너뜨리는 큰 힘은 선행을 하지 않은 무관심에서 비롯됩니다. 우리 주위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은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고, 우리를 죄로부터 막아주고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 줄 구체적인 선행을 한 가지 정해서 실천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 : 마르 13,33-37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13장 33-37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조심하고 깨어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33절)

-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은 집을 떠나면서 종들과 문지기에게 무엇을 분부합니까?(34절)

-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35절)

-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갑자기 돌아왔을 때 어떤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십니까?(36절)

-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시는 것입니까?(37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아침. 현관 앞에서 분주히 구두를 신으며, 핸드폰을 건네주는 아내에게)

“갔다 올게!”

(웅크리고 앉아, 엎드린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집 잘 보고 있어요. 갔다 올게!”

(유치원 선생님 손을 잡고 등원 버스를 타러 가던 중, 뒤를 돌아보며)

“엄마 갔다 올게!”

『매일 하는 말이지만 지켜야 하는 말! “갔다 올게!”』

 

“갔다 올게!”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끔 해주는 제가 좋아하는 어느 광고의 한 대목입니다. “갔다 올게!”라는 말은 떠나는 자에게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지켜야 할 약속이며, 남은 자에게는 ‘꼭 돌아와야 해!’ 하는 희망과 ‘잘 기다릴게!’ 하는 또 다른 약속을 남겨줍니다. “갔다 올게!” 신부가 되고 나서 아무도 없는 텅 빈 사제관을 나서며 “갔다 올게!”라는 말을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에는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따뜻한 말입니다.

 

대림 제1주일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주인은 집을 떠나며 종을 불러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깁니다. 문지기가 맡은 권한과 할 일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주인은 먼 길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갔다 올게!”

이제 권한을 받은 종들은 각자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겁니다. 그것이 “갔다 올게!”라는 주인의 말에 희망을 둔, ‘잘 기다리겠습니다.’ 하는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과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희망은 종들에게 새로운 힘이 되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대림 시기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기이며, 세상의 종말에 왕이요 심판자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는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로, 어머니로, 아들로, 딸로, 선생님으로, 학생으로, 점주로, 아르바이트생으로, 학생으로, 사제로, 신앙인으로…. 그리고 잠시 먼 길을 떠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갔다 올게!” 예수님의 이 말씀에 믿음과 희망을 두는 우리는 “기다릴게요.”라는 응답을 해야 합니다. 지금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기쁘고 성실히 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대림 제1주일, 예수님의 “갔다 올게!”를 희망하며, 나의 “기다릴게요!”를 결심하면 좋겠습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깨어 있는 것은 지금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기쁘고 성실히 해나가는 것입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 각자에게 권한을 주어 맡기신 몫의 일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며, 그 몫의 일을 성실히 다함으로써 아기 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정성껏 준비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9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