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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옥수수밭 설사 사건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10월에서 11월이 되면 알자스는 사냥의 계절입니다. 한국처럼 야생 짐승들의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즈음, 사냥 문화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중세 문화를 물씬 느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낯선 상황이지만 멋진 악단의 복장으로 사냥 나팔수들이 콘서트를 열거나 일 년에 한번 미사 전례에 성가대 봉사를 하기도 합니다. 봄에 심어 둔 옥수수가 자라면서 여름 동안 그곳은 야생 짐승들의 은신처가 됩니다. 가을 수확철이 되면 옥수수를 걷으면서 들판 사냥도 함께 시작합니다. 못에 물을 빼고 고기를 잡듯이, 트랙터가 바깥쪽으로부터 수확을 하며 밭 중심으로 짐승들을 몰아 넣으면 사냥꾼들과 개들이 포위를 하고 있다가 튀어 나오는 야생 짐승 들을 향해 총격을 가합니다. 그래서인지 큰 숲에서만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시골 옥수수밭에서도 수확시기 동안에는 총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시야가 확보된 벌판이긴 했지만 저 같은 행인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자스는 농경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포도, 옥수수, 갖가지 과일과 양배추를 포함한 채소 농사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옥수수밭에 관하여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봄과 여름 내내 엄청난 양의 물을 주고 길러서 장대처럼 키워 놓고는 가을이 되어 옥수수가 말라 잎이 누렇게 변하도록 수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재작년 2018년은 봄부터 가물어서 사제관 주변 어느 옥수수밭이 너무 망가진 채 버려진 것 같았는데, 동네 주민에게 듣자니 가뭄이 너무 심해 그 옥수수밭 주인이 농사를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농장도 그런식으로 방치되어 있는데다가, 그런 모습은 그 다음 해도 대체로 마찬가지였습니다. 6~7월에는 농장 규모가 클 경우에는 스프링클러 방식이라 하더라도 두 시간마다 물 호스를 옮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농민들은 거의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힘들여 농사를 지었으면서 ‘왜 옥수수들이 바싹 마르기까지 수확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런데 이 질문 자체가 이곳 옥수수 농사에 대한 저의 무지와 무관심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곳 옥수수는 가축들 사료용이라 누렇게 익고 말라버린 옥수수 머리뿐 아니라 잎과 줄기 모두 갈아서 사료로 쓴다는 것입니다. 그 설명을 들을 무렵 ‘아, 그 옥수수조차 없어서 굶는 지구 이웃들이 있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10월 초 어느 주일 오후, 벨포르(대구대교구 초대 계산동 성당 주임 김보록 신부님의 고향)에서 선교사 A신부가 방문했습니다. 젊은 형제가 비교적 나이가 많은 저를 돌보는 형국입니다. 제게 기타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식사나 와인을 같이 하기도 하고 산책도 합니다. 둘이 만나면 주로 영적인 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귀한 영적 친구입니다. A신부는 뭐든 잘 먹고 무슨 제안이든 잘 수용하며 남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가 하면, 자신의 회심과 영적 체험도 곧잘 나누어주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신부입니다. 그전에는 산책 중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했다면, 지금은 각자 하루 20단 묵주기도 바치기를 하는 중이어서 함께 로사리오를 바칩니다. 저는 일부러 낯선 지리도 익힐 겸, 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걸으면서 출발할 때 환희와 빛의 신비, 돌아올 때 고통과 영광의 신비를 바칩니다. 마칠 때쯤이면 거의 집에 도착합니다. 간혹 목이 말라 바로 맥주집으로 가서 한 잔 하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사제관으로 돌아오면 가끔 좋은 와인과 함께 A신부가 기타를 연주하며 성가와 팝송을 불러 줍니다. 이 때쯤이면 저는 신학생 시절의 여름, 지리산으로 교리교사연수회를 가서 별을 보며 밤새 노래하던 그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추억의 친구들 얼굴까지요.

그런 10월의 어느 저녁, A신부에게는 손전등을 주고 저는 헤드라이트를 이마에 달고 묵주기도를 하며 주택가를 지나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기온이 시내와 4~5도 정도 차이가 난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빛의 신비’ 기도가 끝나갈 무렵 저희는 옥수수밭과 철로 사이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도를 끊은 A신부가 “신부님, 설사 났습니다!” “….!” 별빛 외에는 사방이 깜깜. 철로쪽으로 갈 수는 없고 임시 해우소는 옥수수밭 뿐이었습니다. 전방에 몸을 숨기기 좋은 큰 나무와 숲이 있었으나 긴급상황이라 몇 걸음의 이동도 위험했습니다. 마침 제가 설사를 자주 하던 시기라 휴지를 빨리 꺼내 주었는데 키가 커서 그런지 그다지 다급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천천히 항공모함이 움직이듯 미끄러져 가며 옥수수밭으로 접근하더니 역시 천천히 몸을 낮추었습니다.

 

이곳은 야생 짐승들이 야간에 잘 나타납니다. 여우, 노루, 오소리, 맷돼지 등 어둠 속에서 파란 두 눈빛만을 반짝이며 사람을 바라보는 이름 모를 중견 크기의 동물 등등. 그래서 비상 매복을 하고는 A신부 쪽으로 한번 빛을 비추고 저의 앞과 뒤를 비추며 사방경계 근무를 섰습니다. 그러면서 혼자 ‘빛의 신비’를 마무리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가려던 들판 쪽 방향에서 대형 트럭의 전조등의 강력한 불빛 하나가 저를 비춥니다. ‘오잉? 어디선가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인가?’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집중적으로 빤히 비추는 것이 지나가는 자동차 같진 않았습니다. 잠시 저의 이마 전등을 제압하는 듯한 기분이 들다가 다시 꺼졌습니다. 아무튼 이상하다고 여기며 A신부가 들어간 옥수수밭 근처를 오며가며 짐승을 쫓고 빛의 신비를 마무리했습니다. 설사치고는 시간이 길다 싶을 무렵, 장신의 A신부 머리와 어깨가 옥수수대 위로 불쑥 올라 왔습니다. 역시 천천히 수습하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습니다. 왜냐하면 동시에 ‘숲속의 기린 혹은 공룡’이 떠올랐고 가을 옥수수밭에 뿌려진 ‘한국산 된장’ 같은 것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어둘까, 짓궂은 생각도 스쳤지만 눈사진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160cm 키의 제가 거기 있었더라면 일어서도 길에서 보이지 않았을 텐데….

드디어 수습을 마친 A신부가 길로 내려섰고 우리는 집을 향해 몇 걸음을 걷기 시작했는데 뒤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사냥개 한 마리를 앞세우고 엽총을 어깨에 맨 사람이 키만한 총받침대를 들고는 화가 난 표정과 목소리로 ‘여기서 뭐하느냐?’며 윽박질렀습니다. 분위기가 긴장되면서 살벌했습니다. ‘밭 지키는 주인이 우리가 한 짓을 본 것인가?’ 어깨에 맨 대형 전등을 보니 앞서 말했던 그 강력한 불빛의 주인공! 거짓말을 할 수는 없고 저는 다만 제가 한 일만 말했습니다. ‘우리는 묵주기도를 하며 산책 중이었는데 너무나 급한 나머지 여기서 소변을 봤습니다.’, ‘그런데 왜 불빛을 사방으로 비추느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일단 옥수수밭에 저질러 놓은 것도 있고 해서 두어 번 사과부터 했습니다.

그러자 앞으로는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밤에 밭주변에 빛을 비추면 안 되는 건가?’ 대형 전등과 엽총과 사냥개를 데리고 노기로 무장한 사람한테 질문하는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사과를 하고는 얼른 자리를 피했습니다.

 

‘뭐가 문제였지?’ 돌아오면서 사건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그는 야간 사냥을 위해 매복해 있었는데 A신부가 설사하는 동안 제가 경계를 서면서 이마의 불빛으로 짐승들을 사방으로 쫓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끼리 긴장을 풀며 한마디 했습니다. “야, 니 키가 커서 오늘 밤에 자칫 사냥꾼한테 머리에 총 맞을 뻔했다. 니가 설사한 자리에 쓰러지면 큰 키에 똥물 묻은 너를 내가 어떻게 옮기냐? 그나저나 그렇게 죽으면 순교(?), 순직은 될랑가? 선교역사에는 뭐라고 기록될까? 옥수수밭 선교사 설사(설사하다 죽은)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