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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독서 일기
드레스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여자, 턱시도를 입고 햄버거를 먹는 남자


글 전형천 미카엘 신부 | 국내연학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드레스 아래에 캔버스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있습니다. 나비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남자도 있습니다. 둘은 아무렇지 않게 계단에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지요. 그리고 드레스와 운동화, 턱시도와 햄버거만큼이나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그냥 ‘툭’ 내려놓은 작은 장식물입니다. 이것은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트로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 가운데 하나이지요. 오른쪽의 남성은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라는 배우입니다. 왼쪽의 여성은 그의 연인 루니 마라(Rooney Mara)고요. 호아킨은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조커」로 남우주연상을 탔습니다.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호아킨은 햄버거를 사서 마라와 함께 소박하게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지나가던 사진작가 그렉 윌리엄스가 이 장면을 사진에 담았고요.

 

오스카상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바닥에 툭 내려놓을 수 있는 남자가 함께 계단에 앉아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여자를 만난 것도 영화를 통해서였지요. 둘은 영화 「그녀(Her)」에서 이혼한 부부로 나왔습니다. 두 사람이 촬영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호아킨은 마라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답니다. 마라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잘 걸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사실은 마라가 아주 수줍음이 많을 뿐이었고, 나중에야 호아킨이 오해를 풀었다고 합니다. 둘은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구로 지내다가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이라는 영화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연인이 되었죠. 호아킨은 인터뷰를 통해서 루니 마라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루니 마라는 내가 인터넷에서 검색 해본 유일한 여자다.” 마라는 이렇게 말했죠. “호아킨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밤새 함께 보아주는 사람이다.”

 

이 사진은 2월의 것이고 두 사람의 아이가 9월에 태어났으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실은 사진 속에 한 사람이 더 있었던 셈이네요. 호아킨은 태어난 아기에게 ‘리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바로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의 이름이었죠.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탓에, 두 형제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고 합니다. 배우로서 먼저 주목을 받은 것은 리버 피닉스였습니다. 리버는 수려한 외모와 우수한 연기력으로 스타가 되었죠. 하지만 늘 자신의 연기는 호아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리버가 스물셋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야 맙니다. 힘든 시기를 의지했던 형, 늘 자신을 인정해 주었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은 호아킨에게 큰 슬픔이었겠지요. 그것도 모자라 미디어가 리버의 죽음을 대하는 행태를 바라보며 호아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구급대원을 찾는 호아킨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방송에 공개되었고, 장례식장에 기자들이 몰려와 리버의 시신에 사진기를 들이밀었죠. 밤낮없이 집을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대고 질문하는 작태에 진절머리를 느낀 호아킨은 슬픔과 충격 속에 잠시 영화계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돌아온 호아킨은 오스카상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었죠. 오스카 수상소감 때에 호아킨은 세상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호아킨은 리버가 열일곱에 지은 가사를 빌려 수상소감을 마무리했습니다. “고난에 빠진 이를 사랑으로 돕는다면 평화가 뒤따를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사진 속 두 사람이 먹고 있는 것은 채식주의자를 위한 버거라고 합니다. 호아킨은 공장형 축산업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며 환경을 크게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채식주의를 실천해왔지요. 오스카 기간 내내 환경을 생각해서 같은 턱시도를 입었고, 영화제와 관련된 행사를 오갈 때는 전세기를 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고요. 그러니까 형 리버가 노래한 것을 동생 호아킨은 실천으로 옮기고 있었다고 해도 되겠지요.

 

사실은 사진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살피고서야 다시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드레스 아래 운동화, 턱시도를 입은 신사와 햄버거, 계단에 놓인 트로피가 묘하게 닮은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동물을 사랑하고 비슷한 관심사와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독서 일기에 어울리지 않게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문장이나 기호가 보여주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까지 살필 때 다르게 읽을 수 있고 좀 더 깊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을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번에는 사진 한 장을 읽은 것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다시 묻고 싶네요.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시나요? 또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 사진 : ⓒ Greg Williams / 출처 : 그렉 윌리엄스 인스타그램(@gregwilliams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