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현장 탐방 -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을 위한 기원미사
길 위의 참된 목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을 기원하며


취재 김선자 수산나 기자

 

한국교회 두 번째 사제이며 최초의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을 위한 기원미사가 탄생 200주년이기도 한 3월 1일(월) 오전 11시 성모당에서 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됐다.

1821년 3월 1일 충청남도 청양군 다락골에서 부친 최경환(프란치스코, 순교자)과 모친 이성례(마리아, 복자) 사이에서 여섯 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최양업 신부는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됐고, 1844년 부제품을 받았으며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예수회 마레스카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후 그해 12월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입국해 사목활동을 한 가운데 1861년 6월 15일, 41세에 문경새재 근방에서 선종했다.

조환길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3월 1일, 오늘은 최양업 신부님께서 태어나신 날로 200주년이 되기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정한 대로 시복을 위한 기원 미사를 드리게 됐다.”며 “사제로 서품받고 고국에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고초와 아픔을 겪었던 최양업 신부님은 선종하기까지 박해를 피해 전국을 숨어 다니시면서 많은 교우촌을 방문해 신자들을 만나 사목을 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조환길 대주교는 “한국천주교는 지난 수년 동안 최양업 신부님이 복자품에 오를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피의 순교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며 “최양업 신부님은 ‘길 위의 참된 목자’였고 ‘땀의 증거자’이며 ‘땀의 순교자’였기 때문에 언젠가 시복이 되고 시성이 되리라 믿으며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종하는 그날까지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던 최양업 신부는 11년 6개월 동안 공소 방문을 중심으로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그들의 어려운 삶을 보듬었다. 또한 방인 사제 양성에 힘쓰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가장 근간이 된 기도서 『천주 성교 공과』와 교리서 『성교 요리 문답』의 번역과 교정 작업에 참여하는 등 한글 서적을 통한 문서 전교와 천주가사를 통한 구두 전교에도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