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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편지
평신도들의 세계 1
- 본당이라는 밭에 묻힌 보물 신자들


글 심탁 클레멘스 신부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교구 선교사목

오베르네 본당에 온지 1년 반이 지납니다. 과거 본당 신부 시절에는 사목회 임원들을 중요한 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로 살면서 기도하는 신자들(매일미사, 묵주기도, 성시간, 성체조배 등)이 가장 귀한 보물로 보입니다. 기도하는 신자가 없다면 유럽 교회나 한국 교회나 건물만 남은 껍데기라 하겠습니다.

 

평신도 권력

이곳 알자스교회 본당은 ‘사목자문위원회(Conseil Pastoral)’, ‘사목추진팀(Equipe d’Animation Pastorale, 본당사목위원회)’, 그리고 한국의 재무건축위원회를 합쳐 놓은 것 같은 ‘교회재산관리위원회(Conseil de fabrique)’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임 신부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총괄합니다. 오베르네 본당의 ‘사목자문위원회’는 유명무실해서 실질적인 본당사목은 나머지 두 위원회에서 추진합니다. 제가 협력 사제로서 유일하게 참석하는 회의는 ‘사목추진팀’입니다.

사목 형태 혹은 사목적 상황은 교구별, 본당별로 다양하지만 보다 결정적으로 주임 신부의 비전과 능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주임 신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사목 너무 편향되고 가변적이고 사목의 초보적 단계라고 여겨서 보다 다수 신자들을 본당 활동에 참여시키고 본당 전체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시스템 사목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경험상 ‘시스템’이 만들어진 본당에서도 후임 신부가 어떤 사목적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저의 상황 파악이 매우 부분적일 수 있음을 전제로, 이곳 선교 현장의 특수한 체험과 소감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한국으로 치면 ‘본당 총회장’ 역할을 하는 신자가 미사 독서자 명단 짜기, 본당 헌금 세기부터 재무관리, 세개 팀의 본당 성가대의 주일미사 봉사 시간 배정, 성가곡 선정과 선창자, 반주자 배정 운영 관리 및 직접 주일미사 선창까지 합니다. 3월 1일자로 재무건축위원장까지 맡았습니다. 그의 유고시에는 그의 아내가 대신 선창을 하고 공지사항 발표도 겸합니다. 참 낯선 체험입니다.

둘째, 평신도 유급교사 한 사람이 이 지역 여러 개의 본당 교리교육을 담당합니다. 한 사람의 교사가 여러 명의 신부의 지원과 협력을 받아, 첫고해–첫영성체(초)-신앙고백(중)-견진성사(고) 교리교재 결정, 교리 시간을 계획하고 진행합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부모 교사들을 연수시켜서 본당 단위에서 교리교육 봉사를 하게 하고, 합동으로 공식 피정과 공식 미사와 전례에 참여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들어 개별 본당 차원의 부모 교사의 교리는 중단되고, 국가가 허락한 교회 공식 모임의 성격으로만 교리 및 집회가 가능해서 교구 유급 교사가 지역 단위로 모아서 교육관에서 교리를 진행합니다. 이때 교구 지침에 따라 신부든 유급 교사든 부모 교사든 항상 두 명 이상의 성인이 입회하에 교리를 해야 합니다. 갖가지 불미스러운 사고를 방지한다는 목적입니다.

셋째, 새로운 회심자의 출현으로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목회가 아닌 이 회심자를 중심으로 최근 성 바오로 사도 회심을 기념하는 ‘말씀의 축제’, 즉 복음 선포 행사를 개회하게 되었습니다. 에즈라 8장의 율법 봉독 장면을 모델로 말씀 선포 행사에 31명의 독서자가 참여하였고, 참관하러 온 사람, 성경을 들고 와서 따라 읽는 사람, 구경하러 온 사람, 관광객 등이 성당을 다녀갔습니다. 바로 여기에 새로운 에너지의 움직임으로 발전을 위한 충돌이 발생합니다.

 

회심한 새 선교사 : 코로나 아줌마

일년 전 저와의 면담성사 후 코로나19로 입원해서 사선을 넘나들다 기사회생한 자매, 일명 ‘코로나 아줌마’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녀는 은퇴 후 성가대, 렉시오디비나 팀, 병자 방문 도우미, 성령기도회 모임 등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에 걸려 죽음의 위기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완전히 주님의 말씀으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사, 성무일도 및 독서의 기도뿐 아니라 성경 독서 중 특히 예언서들과 바오로 서간에 깊이 매료되더니 평신도 신학과정에 등록해서 방송교육을 받습니다. 그동안 사목회는 전례를 중심으로 수비적으로 본당을 관리하던 편이었습니다. 선교사가 된 그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를 받아들여 말씀의 축제를 저에게 제안했고, 저는 주임 신부(우울증으로 한 달 넘게 입원 및 휴양을 한 후 사목에 복귀를 준비 중)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그들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이에 주임 신부는 사목위원들에게 그녀의 제안을 메일로 공유하며 의견을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으나 이미 언급한 총회장급 신자 H가 ‘생각은 좋다.’로 시작해서 ‘그러나…’로 결국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합니다.

 

충돌

1월 6일 수요일, 저는 아침 기도와 미사를 마치고 미사 중에 받은 주님의 은혜를 사뭇 느끼며 사무실에 아침 인사를 하러 들릅니다. 이번 성탄에 100장 정도의 성탄카드를 돌렸으나, H 부부에게 전달하지 못한 카드를 며칠째 손가방 속에 넣고 다녔는데, 마침 그가 사무실에 앉아 있습니다. ‘봉주르!’ 인사를 하고 영하 1도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손을 녹이기 위해 일단 히터쪽으로 다가가는 순간, 주임 신부의 질문을 시작으로 H의 기습 공격이 시작됩니다. 주임 신부 왈, ‘도대체 말씀 축제 관련해서, 너는 L 자매랑 무슨 이야기를 했냐?’(제가 무슨 선동이나 사주를 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H는 ‘이런식의 일개 평신도의 주도적 행위는 정상적이지 않다. 공식적 절차 밟아야 한다.(생략)’라고 말합니다. ‘이게 뭐지?(…)’ 지난 성탄 전야 미사 준비 과정에서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저에게 명령하던 불편한 태도가 떠오릅니다. 성탄 전야미사의 도입부 어린이 성가대 관련하여 H가 저에게 준 스트레스의 기억이 남아 있던 터에 ‘뭐가 문젠데?’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아무나 본당 사목의 주도권을 잡게 하면 안 된다. 정상적이지 않다.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드디어 폭발!(참고: 저희는 서로 존댓말이 아니라 친근한 말을 사용하니, 한국말로는 표현이 더욱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제가 말하기를 ‘난 이해 못해!’(뭔가 잘못되었다는 표현을 이렇게 합니다.) ‘신자가 하는 건의를 듣고 서면으로 잘 준비해서 주임신부에게 가서 직접 말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비공식적이고 정상적이지 않다면 뭐가 정상이고 공식적이냐?’(속으로 하고 싶었던 말: 네 생각이 아니고, 너의 권위 아래 있지 않으면 비정상적이고 비공식적이냐? 네가 주임보다 상전이냐? 주임 신부가 너의 똘마니냐?) 또 물었습니다. ‘그럼 나같은 신참 신부가 모르는 무슨 교본이나 지침서가 있냐?’ 저의 화난 모습을 처음 보는 여비서(사무장, 약 70세)가 답합니다. ‘그런 거 없다, 끌레망!’ 저의 융단폭격: ‘본당 사무행정을 모를 수밖에 없는 신자들의 단순한 질문과 건의사항에 대해 신부인 나도 모르고 너만 아는 절차를 들이대면 되겠나? 사목의 목적이 뭔데? 신자들의 아픔과 필요에 응답하고 약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우고 신앙으로 더 기쁘게 살도록 돕는 거 아니냐?’ … ‘우리가 나이만 어른이지, 하느님 앞에서는 다들 어린 자녀잖아! 어린 자녀들이 뭔가 어설프게 시도를 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기를 죽이면 되겠냐? 너는 집에서 학교에서 애들한테 그렇게 했냐?’(다행히 참은 말: 너는 학교 교장까지 한 사람이 전혀 교육학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준비없이 나오는 대로 말했습니다. 마치 검도 시합할 때처럼 소리를 좀 질렀던가 봅니다. 주임 신부가 놀라며 ‘듀 깔므, 끌레망, 듀 깔므!’(진정해, 끌레망, 진정해!) 버럭하고 나니, 더 이상 표정 관리가 안됩니다. 오베르네에 와서 이렇게 면전에 대고 화를 낸 기억이 없었으니까요. 에잇, Exodus! 손가방에서 카드를 꺼내서 앉아있는 H에게 건네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복 많이 받아라!’ 하고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H가 당황해 하며 이 코로나 시대에 저의 팔을 덥석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