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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Ave Maria”, 그것이 알고 싶다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 I 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 가톨릭교회에서는 매년 5월을 성모성월로 보냅니다. 하느님께 선택받은 은총의 여인,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믿음의 여인, 예수님의 어머니. 그 외에도 다양한 모습의 성모 마리아를 기억하고 그 삶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십자가 죽음까지 예수님 곁에 머물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많은 작곡가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베 마리아(성모송), 마니피캇(성모 찬송), 스타밧 마테르(슬픔의 성모)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많은 곡 중에서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음악적 조예가 깊지 않아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노래를 꼽으라면 바로 ‘아베 마리아’입니다.

'Ave Maria, gratia plena.(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로 시작되는 라틴어 ‘성모송’의 첫 구절을 따서 ‘아베마리아’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아베 마리아’가 흐르고 있나요? 아마도 프랑스 낭만 음악을 대표하는 샤를 구노의 아베 마리아,독일 낭만 음악을 대표하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삽입곡으로 유명해진 카치니 아베 마리아 중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이 유명한 곡들에 닿아있는 사연을 조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샤를 구노의 아베 마리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피아노곡인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번 전주곡 위에 구노가 아름다운 선율을 붙여 완성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곡이 한국과도 인연이 닿아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노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는데, 이 당시 많은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으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구노의 절친 역시 이들 중 한 사람으로 선교 활동을 하다 조선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조선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인지 제5대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구노는 한국으로 떠난 선교사 신부들의 순교 소식을 전해 듣고 아베 마리아를 작곡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카치니 아베 마리아

드라마 〈천국의 계단〉 삽입곡으로 유명해진 카치니 아베 마리아의 작곡가는 카치니가 아닙니다. 이 곡의 작곡가로 알려진 줄리오 카치니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작곡가로 1551년에 태어났습니다. 이 시대의 음악은 조성, 화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치니 아베 마리아로 알려진 이 곡의 진짜 작곡가는 1925년에 태어난 러시아 작곡가 표도로비치 바빌로프입니다. 자신의 작품을 르네상스 시대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의 이름으로 발표하곤 했는데, 바빌 로프가 죽고 2 년 뒤 어느 소프라노의 음반에 이 곡이 ‘카치니’ 의 이름으로 수록되었고 이후 '카치니 아베 마리아’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원래 종교음악으로 작곡된 곡은 아닙니다.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연인〉을 가사로 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중 여섯 번째 곡 〈엘렌의 세 번째 노래〉가 원곡입니다. 호숫가 성모상에 이마를 대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내용으로 “아베 마리아,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라는 가사로 시작되고 스콧의 시를 번역한 독일어 가사 대신 라틴어 성모송 가사로 대체해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수히 많은 성악가가 부른 아베 마리아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2006년 파리에서의 무대입니다. 연주 전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었지만,한국행 을 포기하고 예정되어 있었던 독창회를 무사히 마칩니다. 마지막 앙코르곡을 앞두고서야 아버지의 죽음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아버지는 제가 여기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걸 기뻐하실 거에요. 저는 아버지를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라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눈빛을 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부른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그저 노래가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딸의 간절한 기 도로 다가왔습니다.

2019년, 인류의 유산이자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노트르담대성당 화재 때에도 아베 마리아가 울려 펴졌습니다. 불타는 노트르담대성당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참담함 속에 파리 시민들이 부르던 성모송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입니다. 기도의 말조차 찾기 어려운 많은 순간에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로 끝맺는 성모송은 위로와 희망을 건넵니다. 지금도, 내가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도 부족한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말입니다.

제가 세례를 받고 한참 뒤에 신앙을 가지게 된 어머니는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너희를 위해서 기도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참 미안하다.” 왜 자녀를 위해 기도한 적이 없겠습니까. 늘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바랐던 매일이 기도였을 터인데…. 다 주고서도 부족한 듯 느껴지는 마음, 그 마음으로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가 바로 아베 마리아, 성모송이 아닐까 합니다.

기적같이 아름다운 5월, 음악으로 바치는 기도가 더욱 풍성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