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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골목신앙
앰뷸런스, 긴급하지만 따뜻해야 할 소리


글 이재근 레오 신부 I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여러분은 앰블런스 소리가 들릴 때 그 안에 타고 있을 사람을 위해 성호를 그으시나요?'

보좌 때의 일이다. 미사 중이었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작은 게 아니었다. 마침 미사는 성찬의 전례에 접어들어 있었다. 화장실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주님, 이 상황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신학생 때 올바른 기도에 대하여 배운 적이 있었다. ‘올바른 기도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난 후, 결과는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버텼다. 그리고 미사 중에 실수하는 것이 주님의 뜻은 절대 아닐 거라 확신했기에 이 또한 지나 갈 것이라 믿었다. 미사가 진행될수록 나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경문을 읽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그러나 나는 버텼다. 이 순간만 버티면 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다. 나는 이겨냈다! 무사히 미사를 마쳤다.

미사 후 가장 먼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사제관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무 사고 없이 화장실에 앉을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한없이 감사드렸다. 그때 사제관 전화벨이 울렸다. 화장실에서 용무 중이었던 나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전화벨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벨이 끊길 무렵 이번에는 사제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화장실에서 나왔기 때문에 문을 열 수 있었다. 사무장님이었다. 사무장님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괜찮냐고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무장님께서 대답하셨다. 미사가 끝나고 할머니들이 단체로 사무실로 몰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사 중에 보좌 신부님 얼굴색이 파래지고 목소리도 떨리고 식은땀을 흘리시는 걸 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확인해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이 상황의 불똥이 갑자기 주임 신부님께로 튀었는데, 도대체 보좌를 얼마나 부려 먹었길래 보좌 신부님 몸 상태가 이렇게 될 수 있냐고 주임 신부님께 따졌던 것이다. 참고로 그 당시 주임 신부님은 나에게 엄청 잘해주셨다.(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그래서 주임 신부님이 내 방에 전화를 하셨고, 전화를 받지 않자 사무장님이 올라오신 것이다. 나는 차마 화장실이 급해서 그랬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지금은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사무장님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할머니 중에 한 분이 내 친구도 보좌 신부님처럼 얼굴색이 변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말도 잘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끝내 하늘나라로 갔다며 빨리 구급차를 부르라고 난리가 나신 것이다. 결국 성당 마당에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사무장님과 함께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앰뷸런스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웃기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했다. 고개를 돌려 버리거나 서둘러 자리를 뜨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앰뷸런스 소리를 피해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길을 가던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그 아주머니는 나와는 다르게 앰뷸런스를 바라보며 걷고 계셨다. 그리고 잠시 가던 길을 멈추시더니 갑자기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걸어가셨다.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앰뷸런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위급한 상황일 텐데 나는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만 떠올리며 혼 자 피하고 있었던 걸까? 평생 기도하며 살기로 결심한 내가 왜 바로 눈앞에서 누군가의 기도를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들을 깨닫지 못했을까?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앰뷸런스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성호를 긋는다. 그리고 어떤 곳에 특강 부탁을 받아 가게 되면 항상 이 이야기를 들려드린다. 그렇게 계속 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신자들이 앰뷸런스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도를 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은총을, 훗날 내가 앰뷸런스를 타고 급하게 병원으로 가게 될 때 나 또한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말이다.

앰뷸런스 소리는 항상 긴박하다. 그래서 운전할 때나 길을 갈 때 앰뷸런스 소리를 듣게 되면 잠시나마 모든 사람들 이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구급차를 바라본다. 특히 지금처럼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그래서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도 더 불안해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앰뷸런스 소리가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을 안심시키고 따뜻하게 해 줄 거라 믿는다. 우리가 앰뷸런스 소리를 들을 때마다 열심히 성호를 긋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작은 실천이 진정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