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신부님의 독서일기
부끄러운 읽기, 교회법 선생님과 어느 농부로부터


글 전형천 미카엘신부|국내연학

 

선생님께서는 이 말씀을 자주 하시며 제자들의 정신을 두들 기셨지요. ‘한 사람이 돈을 어떻게 대하고 쓰고 있는지 살피면 그의 영성이 보인다.’ 오늘날처럼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가늠하는 세상에서 꼭 들어맞는 말 같았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무렵, 교회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서는 교회법의 한 조문을 가르쳐주시며 깊이 성찰하도록 하셨습니다.

 

제282조 ① 성직자들은 검소한 생활을 닦고 허영을 풍기는 것을 일체 삼가야 한다. ② 교회 직무를 집행하는 기회에 그들에게 제공되는 재물에서 적절한 생활비와 자기 고유한 신분의 모든 의무를 수행할 비용을 조달하고 남는 여분은 교회의 선익과 애덕의 사업에 선용하기를 원하여야 한다.

 

몇 년이 지난 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선생님들의 말씀을 떠올리고 교회법전을 얼른 찾아보았습니다. 법조문을 두고 함께 읽으며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물어보았습니다. ‘검소’와 ‘허영’의 객관적 기준은 무엇인가? 왜 2항의 조문은 ‘선용하여야 한다.’가 아니라 ‘선용하기를 원하여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는가? 이렇게 내적 지향에 의무를 걸어 둘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이 법규를 어기면 누가 소를 제기하며,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가? 답 할 수 없었던 대화는 흐지부지 끝났고, 늘 그러하듯 실없는 웃음으로 헤어졌습니다.

 

방에 돌아와 홀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법전을 펴고 자세를 바로하고, 마음의 법정을 열었습니다. 교회의 규범과 선생님들의 가르침으로 조금씩 이지러져가는 스스로를 비추었습니다. 아무리 변호해보아도 죄를 피할 길은 없었고 결국은 부끄러움이라는 형벌을 선고하겠지만, 그렇게 서늘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법전의 문장을 마주하니 조금은 달리 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스스로를 마음의 법정에 세우셨을까요. 언젠가는 당신의 제자들도 이 시간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까요. 그래서 이 딱딱한 어투의 조문에 마음을 담아두셨던 걸까요. 그렇게 법규의 띄엄띄엄한 여백에 제자들을 생각하는 염려와 응원을 아무 표시 없이 가득 새겨두셨을까요. 다시 부끄러운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정직하게 고민합니다. 나지막히 선배 신부님 한분을 떠올립니다.

봉화 청량산 자락 비나리 마을 어귀에 통나무로 된 오두막이 하나 있습니다. 그 입구에는 “비나리 달이네 집”이라는 동화 같은 펫말이 하나 있고, 오두막 한쪽 벽에는 보일 듯 말듯하게 나무판 하나가 걸려있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정호경 루도비꼬 신부 살던 자리”

 

안동교구 사제셨던 신부님께서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셨습니다. 특별히 농민들을 사랑하던 분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마시고 춤추고 짓밟히고 갇히셨던 분이셨습니다. 신부님의 책,『밥도 먹고 말도 하고』에서 신부님께서 글을 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혀두셨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못하고 농민의 피땀인 ‘밥’을 널름널름 먹어치우는 내가,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는 생명의 길에 무관심 또는 외면하면서 날름날름 ‘성체’를 먹어치우는 놈이라는 부끄러움을, 작게나마 줄여 보고픈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밥도 먹고 말도 하고』,7쪽)

 

농민과 밥을 소중히 여기셨던 신부님께서는 마침내 스스로 농민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노동할 건강이 남아 있을 때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살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교님의 허락을 얻어 본당을 떠나 비나리로 들어가셨습니다. ‘입품 그만 팔고 몸으로 살련다.’ 하시며 비나리로 떠나실 때 교우들에게는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사제가 된 것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함께하려고 한 일인데,본당 사목만 해서는 개인 구원도 안 될 것 같아 떠나기로 했어요.”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151쪽)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신부는 가족이 없으니 결단을 하기가 쉽겠지만, 가족이 딸린 우리는 너무 어렵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신부도 가족이 있습니다. 신부가 결혼을 포기한 것은 제멋대로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내 이웃을 가족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제대로 살지 못해서 늘 부끄럽지만, 그것이 진실입니다. 그리고 내가 귀농을 결심하고 10여 년을 기다렸습니다. … 주교님의 허락이 믿기질 않습니다.”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158-159 쪽)

 

그렇게 신부님께서는 비나리에 손수 나무집을 지으셨고, 2천 평 땅에서 김을 매고 나락을 걷으며 사셨습니다. 교구 사제에게 허락된 생활비도 일절 받지 않으시고 스스로 땅을 일구는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가셨습니다. 해가 지고 겨울이 오면 책을 읽으셨고, 성경을 묵상하여 글을 쓰고 나무판에 말씀을 새기면서 사셨습니다. 그 삶의 기록들은 『손수 우리집 짓는 이야기』,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 등 몇 권의 책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강아지똥』으로 유명한 작가 권정생 선생님께서 정 신부님의 이야기를 『비나리 달이네 집』이라는 동화로 그려내시기도 하셨지요.

 

그러고 보면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정 신부님은 무척이나 닮아 있습니다. 손수 집을 짓고 땅을 일구는 정직한 노동을 했고, 소비사회가 추구하는 욕망의 논리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정직한 노동을 통해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만을 갖추고 남은 시간은 독서를 하며 세상을 성찰했지요. 언젠가 어떤 사람이 소로의 삶을 평가해둔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는데, 두고 보니 정 신부님께도 꼭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가 숲속 호숫가로 은둔한 이유는 … 돈독이 오른 사람들이 돈벌이에 미치는 것밖에 달리 사는 방법이 없다고들 하는 통에 화가 나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늘 정신적인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멋대로의 삶’이었다.” (『나의 헨리 데이비 드 소로』,24-25쪽)

 

정호경 신부님께서는 권정생 선생님과 아주 가까이 지내셨다고 합니다. 권 선생님께서는 유언장을 통해 세 분에게 뒷일을 부탁하셨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바로 정호경 신부님이셨지요. 권 선생님께서는 유언장에서 정호경 신부님에 대해 이렇게 써두셨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나중에 유언을 확인한 정 신부님께서는 그 평가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셨다고 합니다만 정호경 신부님과 가까이 지낸 분들께서 정 신부님은 '대단한 독설가’셨다고 하니 ‘대단한 독설가’ 정호경 신부님께서는 조금씩 이지러져가는 저를 보고 어떤 잔소리를 얼마나 해대셨을까요. ‘성체’를 모시고 살면서 ‘성찰’하지 않는 우둔함을 탓하셨을까요.

 

어린 시절, 복음이 전해주는 예수님의 모습에 매료되어 말씀의 제자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고, 문득 돌아다보니 제도 종교의 관료 성직자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철저한 자기희생을 살겠노라고 십수 년간 다짐해왔지만 그 다짐은 안일함에 언제나 녹아내립니다. 언제부터인가 제단은 너무 높고 제대 이쪽 편과 저쪽 편의 거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집니다.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먼거리 같기도 합니다. 교회는 제가 성직자라는 이유만으로 밥벌이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말씀봉사와 사목에 전념하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그 혜택 때문에 함께해야 할 사람들의 고통스런 근심과 밥벌이에 공감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혜택을 포기하면 삶이 고통스러워지므로 이웃은 생각하지도 못할 나약한 인간임을 고백합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때, 세상에서 벌어지는 고통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복음을 두고도 감동은커녕 불편함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그래서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밥벌이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면, 혹여 밥벌이가 두려워 자신마저도 속이고 살아간다면, 그건 그야말로 얼마나 서글픈 일일까요. 그때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교회를 위해 기꺼이 떠날 용기는 남아있을까요. 그렇게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시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며 부끄럽게 살지 말자고 다짐하던 저는, 이제 자주 부끄럽습니다. 오늘 이지러진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과연 은총이겠습니까. 부끄럽지 않은 날이 과연 찾아오겠습니까. 다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과 선배 사제의 모범을 되새깁니다. 그렇게 조금씩 이지러지고 마음이 흐려질 때마다 오늘 읽었던 것들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런 읽기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짐을 이렇게 박제해두고야 말겠습니다.

 

정호경, 『밥도 먹고 말도 하고』, 분도출판사 1994.

권정생, 『비나리 달이네 집』, 낮은산, 2001.

박홍규, 『나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필맥, 2008.

한상봉, 『농민이 된 신부 정호경』, 리북,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