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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의 독서일기
나무를 사랑한 농부가 띄운 편지


글 전형천 미카엘신부 | 국내연학

 

오늘도 창가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읽고 생각하고 쓰며 두 손을 모읍니다. 햇볕이 건너오는 큰 창 너머로 나무들과 마주합니다. 나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손을 흔듭니다. 어깨에 새를 품어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지요. 그렇게 다정하다가도 찬바람이 불면 공들여 장만한 잎사귀를 모조리 버리면서 저를 비웃곤 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사이 방에는 책이 늘었습니다. 한번 보고는 더 읽지 않을 책들을 버리지 못해 나무책장을 들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여기저기 포개 쌓아 두었습니다. 오늘을 겨우 살면서 내일 써보겠다고, 나무를 죽여 만든 종이와 연필을 쟁여두고 있습니다. 곧 가을이 오면, 오늘 다정한 저 나무들은 어김없이 저를 또 비웃겠지요. 그런데 저는 큰 창 건너 마주한 나무들의 이름을 여전히 모르고 지냅니다.

그의 책에는 나무가 가득합니다. 그는 나무를 참 좋아했습니다. 어찌나 나무가 좋았던지 그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아랫목에 엎드려 편지를 쓰면서도 나무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자신이 보았던 멋진 나무들과 자신이 심어보았던 나무들의 이름을 꾹꾹 눌러 써 두었습니다. 월정사 들어가는 길섶에 솟은 전나무, 남원 광한루에서 본 팽나무, 문경 새재 산 중턱에 솟은 층층나무, 두 줄기로 커서 열길 넘게 솟은 하양역의 낙우송. 어릴 때 수도 없이 들은 피나무, 엄나무, 박달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구상나무, 곰솔, 주목, 빨강 단풍, 모감주, 너도밤나무, 피나무, 소사나무, 계수나무, 팥배나무, 오미자, 등근 솔, 칠엽수, 마가목, 명자나무, 이팝나무, 노각나무, 복자기, 때죽, 고로쇠, 자작나무, 물박달. 이름만 들어서는 그 나무의 생김을 알 수는 없겠지만 하나하나 말맛이 고운 그 이름들은 나무를 닮아 있겠지요.

어린 나무를 포대기에 싸서 정성껏 안고와 심고 아침저녁으로 문안하며 돌보다가도, 생을 다한 나무를 가져와 쓰임새를 살려 필통이나 차받침을 만든 것도 나무가 좋아서였겠지요. 그렇게 만든 것을 허름한 가방에 담아 사람을 찾아다니며 노나주곤 했다는데, 아마도 그는 나무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찾아다닌 사람들 중에는 스님들도 있고, 비나리의 정호경이나 안동의 유강하와 같이 신부님들도 있고, 신영복과 같은 출소 장기수, 권정생과 이현주와 같은 동화작가, 김용택이나 신경림과 같은 시인들도 있었다지요. 그가 찾아오면 밥도 먹여주고 잠을 재워주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그가 띄운 편지를 혼자 읽기 아까워 기어이 책으로 엮어내었다지요.

전우익 선생은 봉화 귀내마을(구천리)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무명씨라는 뜻에서 ‘언눔’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일꾼이라는 뜻에서 ‘피정’이라고 하기도 했지요. 신경림 시인은 전우익 선생의 첫 번째 책을 엮어내면서 그가 사는 모습을 적어두었더군요.

 

“그는 지금 봉화군 상우면 구천리, 할아버지 대부터 살던 낡은 기와집에 혼자 산다. …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게 산다. 먹는 것은 늘 밥에 찬 한두 가지면 된다. 수도가 없어 우물물을 쓰는데 그것도 조금만 길어서 쓴다. 힘이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물을 쓸데없이 많이 쓰는 것이 그는 못마땅하다. … 이렇게 사니까 쓰레기가 하나도 안 나와서 여간만 좋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무얼했다고 살면서 쓰레기까지 냉기니껴. 쓰레기라도 안 냉기고 살 생각이래요.’ / ‘물자가 너무 흔해요, 쓸데없이 많아요. 나만이라도 좀 덜 흔하게 살고 싶어요’ … ‘덜 먹고, 덜 입고, 덜 갖고, 덜 쓰고, 덜 놀고, 이러면 사는게 훨씬 더 단순화 될 터인데요. 쓰레기도 덜 생기고, 공해니 뭐니 하는 문제도 상당히 해결되겠지요.’”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21?22

 

나무를 사랑했던 그는 나무처럼 살았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무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지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경성제대에 입학할 만큼 배웠던 그는, 해방 이후 청년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되어 6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풀려난 이후에도 보호관찰 대상자가 되어 감시를 받으며, 80년대 후반까지 40여 년 동안 주거제한을 당했습니다. 이름은 ‘우익’인데 ‘좌익’활동을 한 게 죄였습니다. 그는 낙향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논과 밭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던 셈입니다. 어렵게 추수해서 목돈을 쥐면 몰래 나가서 1년 동안 읽을 책을 사고 친구들을 만난 뒤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지요. 그에게 책과 나무, 사람과 편지는 한 생을 버텨낸 방편이었겠지요. 그는 생각을 벌하는 엄혹한 시대를 견디며 자연과 노닐고 친구들과 대화하며 살다갔습니다.

 

선생은 어느 편지에서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삶이란 그 무엇(일)엔가 그 누구(사람)엔가 정성을 쏟는 일”이라며 그는 적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돗자리를 만들고, 나무를 키우고, 풀을 뽑고, 책장을 넘기고, 편지를 띄우는데 정성을 기울이며 인생을 배워 나갔습니다. 신경림 시인은 그의 고백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가르칠라꼬만 들지 배울라곤 안 해요. 나무한테도 그렇고 짐승들한테도 그렇고 아이들한테도 그렇고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요. 전 자리를 맨 지 10년이 되는데, 참 많은 것을 배워요.” 이를테면 이러합니다.

 

“스님, 지난번 편지에 기회가 있으면 아픔에 대한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기로 했으니 어설픈 이야기 좀 해볼게요. 지난 음력 칠월 초순에 파를 심었습니다. 장에 가서 오백원짜리 두 단 사다가 한 사흘 땡볕 드는 마당에 널어 곯게 한 다음 뿌리를 자르고 심었습니다. 딴 곡식이나 나무는 삼십칠팔 도 되는 햇빛에 단 오분만 쪼여도 영결종천인데 더욱이 뿌리를 싹 자르고 심어야 크게 자라는 파는 신비로운 식물입니다. 또 파는 나무가 얼어 죽는 소문난 추위에도 끄떡없이 삽니다. 그 파가 가게에서 파는 뿌리담이 흰 대파입니다. 모르긴 하지만 땡볕과 뿌리가 잘리면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아픔을 참고 견딘 뒤 그 아픔을 끝끝내 가슴에 새기면서 큼지막하게 자란 것 같이 느껴집니다.”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23

 

“(거기는) 좋은 나무 파는 곳에 아니라 큰 간판 달아놓고 형편없는 나무 파는 데라 여겨져요. 올해도 거기 가서 작년에 죽은 나무 보충한다고 몇 가지 샀는데 역시 그대로 비닐봉지에 넣어줘요. 거기서 좀 떨어진 00농원에서 층층나무와 고로쇠 샀더니 뿌리를 이끼로 싸서 정성스럽게 포장해 줍디다. 귀하지만 세상 어느 구석에는 참 되게 일하는 사람 있구나 싶데요. / 나무를 키우고 모종을 캐어 파는 일을 하면서도 사람 됨됨이가 이루어지는데, 무참하게 잘린 층층나무 뿌리를 보면서 『소설 동의보감』의 허준이 도라지 캐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실뿌리까지 고이고이 캐는 정성스러운 일을 통해 허준은 정성스러운 사람이 됐겠구나. 저렇게 무참하게 뿌리를 자르고 어린 알나무를 비닐봉지에 넣는 일을 하다가 우리는 어떤 지경의 사람이 될까? 거친 일 계속하면 거칠고 황량한 사람이 될 텐데.” - 『사람이 뭔데』, 12?13

 

그는 참 겸손하게도, 자신의 삶이 볼품없다고 해서 ‘파별난적(한쪽 발이 망가진 자라가 쩔뚝거리며 남긴 어지러운 발자국)’이라 평했고, 읽는 이가 자신을 꾸짖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쓴다고 고백했습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람이란 뭘까. 내가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나 소포 부칠 때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을 보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보냄, 받음만 쓰고 사람은 뺍니다. 참 사람 구실을 도저히 못할 것 같고, 가짜 사람노릇은 하고 싶지 않아서요.” -『사람이 뭔데』,105-106

 

하지만 과연 그의 삶을 그렇게 평가하며 꾸짖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사람이 무엇이냐고 ,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는 그의 대답에 떳떳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나요. 그는 그저 자신이 몸으로 배운 것으로 누구의 생각도 벌하지 않고 가르치려 들지도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가 한 생을 깃들었던 뜨락에는 오늘도 햇볕이 다녀갔겠지요. 귀내마을에는 그가 심은 나무들이 무심히 서있겠지요. 그가 깎고 다듬어 노나 준 나무토막들은 방구석 어귀에 잠들어 있을 것이고, 그의 책들도 누군가의 서재나 헌책방에서 펼쳐지기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언눔’의 편지를 다시 나무책장에 꽃아둡니다. 어둑어둑해진 창가 책상에 다시 등을 켜고, 연필을 깎아 종이를 폅니다. 이 편지를 다 쓰고 나면 그가 읽었던 도연명과 노신, 『근원수필』을 읽어 보아야겠습니다.

 

전우익,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현암사, 1993.

전우익, 『호박이 공짜로 굴러옴디까』, 현암사, 1995.

전우익, 『사람이 뭔데』, 현암사,현암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