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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말씀살이와 말씀길잡이


글 여한준 롯젤로 신부 I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 마르코 7,31-37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7장 31-37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티로 지역을 떠나 어디로 돌아오셨습니까?(31절)

- 사람들은 예수님께 어떤 이를 데리고 와서 무엇을 청합니까?(32절)

-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 주시기 위해 어떤 행동과 말을 하십니까?(33-34절)

- 그러자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35절)

-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분부하십니까?(36절)

-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어떤 말을 하였습니까?(37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같은 나라 사람이 자기 나라말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서로 자신의 입장, 각자가 처한 상황, 자기만의 생각과 논리로 상대방의 말을 듣고는 있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며 가슴을 칩니다. 한편 말을 하는 입장에서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가슴을 칩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하면서 대화가 되지 않아 답답한 가슴만 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소통이 되지 않는데, 즉 알아들을 수 없고 말이 잘 나오지 않을 때 귀나 입이 아니라 가슴을 칠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 마음이 전해지지 않아서, 혹은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실제로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귀먹은 사람처럼 듣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마음대로 듣는 사람, 객관적인 정보를 자기 경험에 비추어 입력하는 사람, 상대방의 생각을 자신의 입장에 맞추어 이해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들을 수 있지만 듣지 않는, 아니 듣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상대방은 늘 답답해합니다. 또 우리 주변에 언어 장애가 없으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거나 자신의 변명과 핑계만 늘어놓는 말 더듬는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방을 늘 답답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닫힌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되고 의견을 모을 수 있고, 그래야 부드러운 소통이 가능하며 함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늘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생각과 태도로 경직되고 고집스러워진 자신의 귀와 혀! 그렇게 자신만을 위해 열릴 뿐 남을 위해 굳게 닫혀있는 귀를 열고, 하고 싶은 자기 얘기만하는 꽁꽁 묶여버린 혀를 풀기 위해 예수님의 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가락을 내 두 귀에 넣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침을 발라 나의 혀에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열려라!” 이제 누구를 만나 대화를 해도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귀와 혀, 그리고 마음을 주님께서 완전히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떠십니까? 이제 잘 들리십니까?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1) 다음 질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봅시다.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공동체와 함께 나누어 봅시다.

①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씀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나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지 않는 소통의 어려움을 느꼈던 경험이 있으면 나누어 봅시다.

③ 다른 사람과 잘 대화를 하고 의견을 모아서 함께 일을 잘 해나가기 위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노력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④ 예수님께서 우리의 귀와 혀, 마음을 열어 주시어 관계 안에서 참된 소통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 봅시다.

2) 우리 공동체가 한 주(달) 동안 함께 노력해 볼 실천사항을 정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 성가는 가톨릭 성가 450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12일 연중 제24주일 : 마르코 8,27-35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8장 27-35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어디로 길을 떠나셨습니까?(27절ㄱ)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슨 질문을 하십니까?(27절ㄴ)

-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합니까?(28절)

-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합니까?(29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이르시고 가르치십니까?(30-31절)

- 베드로는 사람의 아들이 겪을 고난, 죽음,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32절)

- 예수님은 왜 베드로를 꾸짖으십니까?(33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34-35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혹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으로 알고 있을 때 베드로는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해야 한다.’라는 그리스도의 사명과 역할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것을 가르쳐 주며 명백히 밝히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자 반박했다는 것은 ‘그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좋은 것만 취하고 힘든 것은 피하려고 하는 아이와 같이 예수님을 붙들고 늘어지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지만 늘 하느님의 일만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늘 사람의 일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알고 믿고 고백하여도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할 때, 사탄과 같아진다는 주님의 따끔한 충고입니다.

나아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말씀에 비추어보면, ‘제 십자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물러가야’ 할 사람이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렇게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자기 목숨만 구하려는 사람은 예수님 뒤를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에게서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베드로와 달리 반드시 고난을 겪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사명과 역할도 잘 압니다. 즉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있어야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쓴 것도 삼켜야 하고, 힘들어도 취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제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1) 다음 질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봅시다.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공동체와 함께 나누어 봅시다.

①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씀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나의 삶의 자세는 어떠한지 돌아봅시다.

③ 늘 하느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셨던 예수님처럼 신앙인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사명과 역할은 무엇인지 묵상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해 봅시다.

2) 우리 공동체가 한 주(달) 동안 함께 노력해 볼 실천사항을 정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 성가는 가톨릭 성가 445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19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죽일 경축 이동

: 루카 9,23-26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루카복음 9장 23-26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 주십시오.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 기면,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23절)

-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24절)

-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은 어떤 경우입니까?(25절)

-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26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은 ‘친구가 너무 좋아 무엇이든지 같이 한다.’라는 뜻과 ‘자기는 하고 싶지 아니하나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 하게 된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친구가 너무 좋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의미가 담긴 반면, 후자는 ‘그냥 따라간다.’라는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의미가 담겨있어 보입니다.

자! 그럼 오늘 복음의 말씀을 한번 볼까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여러분에게 이 말씀은 어떻게 들리십니까?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뒤를 쫓아가겠다는 분명한 목표의식, 자신을 버리려는 굳은 의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들쳐 매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억지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삶의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고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야 가능합니다. 마치 친구가 너무 좋아서 나의 생각과 의지와 미래를 버리고 모든 것을 친구에게 맞추면서 따라가듯 예수님을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자칫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분을 따르겠다고 나선다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삶’이 아니라 ‘십자가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남들에게 이끌려 덩달아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신앙인의 삶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내가 하는 일, 나에게 주어진 소명에 보람을 느끼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기보다 그것을 억지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으로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

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남들의 기대와 바람을 의식하여 무겁고 힘들게 느껴질 겁니다. 그러한 삶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에 끌려가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기쁘게 지고 당신 뒤를 따라오기를 바라십니다. 친구 따라 강남을 가도 좋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 가지 말고, 친구가 좋아서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1) 다음 질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봅시다.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공동체와 함께 나누어 봅시다.

①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씀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지금 나의 삶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과 ‘십자가에 끌려다니는 삶’ 중 어느 쪽에 더 가깝습니까?

③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우리 각자가 자신의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기쁘게 지고 가며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특별히 순교 성 인들께 전구의 기도를 바칩시다.

2) 우리 공동체가 한 주(달) 동안 함께 노력해 볼 실천사항을 정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 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 성가는 가톨릭 성가 286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9월 26일 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 마르코 9,38-43.45.47-48

 

◎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9장 38-43.45.47-48절을 큰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요한은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왜 못하게 막으려고 하였습니까?(38절)

-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말을 듣고 어떤 말씀을 이르십니까?(39-40절)

- 예수님께서는 어떤 이가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까?(41절)

-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이들을 죄짓게 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 편이 낫다고 하십니까?(42절)

- 예수님께서는 손, 발, 눈이 죄를 지을 때 각각 어떻게 하는 편이 낫다고 말씀하십니까?(43-47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말씀길잡이>

짧은 사목 경험 중에 실수와 잘못도 많았지만 잘한 것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교우들 모임에서 돈 이야기, 정치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권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돈 이야기를 하면 늘 ‘많다와 적다.’로 갈라져 누군가는 우월감에, 또 누군가는 박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한편 정치 이야기를 하면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절대적 선이나 정의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이익에 따라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집니다. 그러니 ‘옳다와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편이냐? 어느 색이냐?’에 따라 편 가르기로 결론이 나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돈 이야기,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당 교우들의 모임에서 유일한 관심사는 ‘ 예수님의 일’, 그것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가 제자들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를 막아 보려고 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막지 마라!” 하고 대답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냐? 아니냐?’, 즉 ‘우리 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는 ‘내 이름으로 하는 일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버려라.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 손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에게는 ‘그것이 나를 죄짓게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내 편이라도, 아무리 나와 함께하더라도, 아무리 그것이 내 손이고 내 발일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이 아니거나, 나를 죄짓게 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잘라버리고 빼내어 던져 버리라고 하십니다. 내 삶과 주변을 한번 돌아봅시다.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다고 ‘막아 보려고 한 일’은 없는지? 나를 죄짓게 만들고 반복된 악습에 물들어 버린 나의 손과 발을 단지 ‘내 것’이라는 이유로 묵인하며 그냥

지니고 살지는 않는지? 예수님의 일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막고 싶어도 막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내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가지고 싶어도 잘라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내가 ‘막아야 할 것’과 ‘잘라 버려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1) 다음 질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봅시다. 그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공동체와 함께 나누어 봅시다.

① 가장 마음에 와닿은 말씀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성당 안에서 교우들의 모임이나 봉사활동을 하며 ‘예수님의 일’이 중심이 되지 않은 채 ‘어느 편이냐? 나와 뜻이 같은가?’의 문제로 상처를 주고받은 적은 없었는지 돌아봅시다.

③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내가 ‘막아야 할 것’과 ‘잘라 버려야 할 것’ 한 가지를 구체적으로 정해 실천해봅시다.

2) 우리 공동체가 한 주(달) 동안 함께 노력해 볼 실천사항을 정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3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