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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운명(運命)은 움직이는 것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 월간〈빛〉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요즘 가톨릭신학원에서 ‘주역(周易)’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흔히 점치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주역』이라는 책은,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유가철학의 경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해진 미래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펼쳐져 있고, 어느 길로 갈 것인지는 결국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요. 같은 어려움이 닥쳐도 어떤 사람은 절망하며 주저앉아 삶을 포기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전화위복의 기회로 여겨 씩씩하게 맞서 나아갑니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며 그것이 나의 삶에 수많은 영향을 주지만, 그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고,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어떤 자세로 헤쳐 나갈 것인지는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합니다.

 

청나라 말기에 세상이 어수선하고 백성들이 살기가 어려워지자 농민군의 지도자인 홍수전이라는 사람이 청 왕조에 반대하여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조정에서는 진압군을 보냈는데 그 지휘관은 증국번이라는 장군이었습니다. 하지만 태평천국군의 기세는 대단하여 진압군은 격렬하게 싸웠으나 번번이 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국번은 결코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하가 황제에게 보내는 보고서에 “우리는 거듭 싸웠지만 거듭 패하고 있습니다.(我洞屋戰屋敗)”라고 쓰자, 이를 본 증국번은 이 문장을 “우리는 거듭 패했지만 거듭 싸우고 있습니다.(我洞屋敗屋戰)”라고 바꾸었습니다. 부하가 쓴 보고서의 문장은 전쟁에서 패한 사실만 강조했지만, 증국번은 문장의 글자 위치만 바꾸어 거듭 패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의가 불타고 있다는 보고로 바꾼 것입니다. 황제는 그를 계속 신임했고, 증국번은 결국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했습니다.1)

 

세상이 험난하고 미래는 암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자포자기한다면, 나는 흙수저로 태어났으니 죽어라 노력한들 삶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산다면 우리는 정말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미래는 열려 있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命)은 움직이는(運) 것입니다. 열려 있는 미래를 닫히고 고정된 것이라 여기는 우리의 태도가 우리 삶을 속박합니다. 노자(老子)가 말했습니다.

 

“화(禍)여! 복(福)이 기대고 있는 곳이로다.

복(福)이여! 화(禍)가 엎드려 숨어 있는 곳이로다.”2)

 

나쁜 일이 닥치더라도 그 나쁜 일에는 좋은 일이 기대어 있으니 마냥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 안에 나쁜 일이 숨어 있으니 교만하게 굴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결국 나에게 닥치는 일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겠지요.

 

죽음과 우리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11월, 위령 성월입니다.

 

1) 이상수, 『주역 앞에서 운명을 읽다』, 웅진지식하우스, 2014. 76쪽 참조.

2) 노자, 58장. “禍兮, 福之所依. 福兮, 禍之所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