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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톺아보기
시편 23편: 노래가 된 기도, 기도가 된 노래


글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 수녀원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시인의 「향수」는 노래를 덧입고 더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시가 된 노래이고 노래가 된 시입니다. 시편도 본래 시이고 기도이지만 가락을 만나 시가 노래가 되고 기도가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편은 히브리어로 ‘테힐림’인데 이 말의 의미는 ‘찬양의 책’이라는 뜻입니다. ‘찬양의 책’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시편은 삶과 음악이 만나는 책입니다. 삶을 노래한 시에 멜로디가 입혀지면서 기도와 찬양이 하나가 되어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불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가사는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거나 먼 하늘 뜬구름 같은 이야기도 아닌 현재를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편이 생활에 밀착된 끈끈한 언어를 구사하면서 하느님을 향하여 진실이 가득 담긴 짙은 호소를 토해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활 밀착형 가사가 리듬을 입어 시가 노래가 되고 기도가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편 4편부터 각 시편에 등장하는 다양한 음악적 기호를 나열해 보면 이러합니다. ‘현악기와 더불어 제8도로’, ‘시까 욘’, ‘기팃’, ‘알뭇 라뻰’, ‘믹탐’, ‘여두툰’, ‘새벽 암사슴 가락으로’, ‘나리꽃 가락으로’, ‘알 타스헷’, ‘알 수산 애둣’ 등 음악적 지시어가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편의 음악적 지시어들이 어떤 의미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록 악보가 그려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시편은 곡이 붙은 찬송가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편을 노래할 때 피리, 수금, 손 북, 현악기, 자바라, 뿔나팔, 비파 등 악기도 다양하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이 악기와 더불어 찬송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악기의 반주 없이 목소리로만 부르는 일종의 아카펠라였음도 확인됩니다.

 

음악적 악상기호들이 의미하는 또 하나는 시편이 각자의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노래로 불려졌지만 공동체의 성전예배에서도 불렸다는 것입니다. 성전예배 때에 성가대가 독창으로 혹은 성가대와 회중이 서로 화답하며 노래를 불렀다는 성경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시편은 하느님께 바치는 성전 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된 후에는 율법서와 예언서를 낭독하고 기도로는 시편을 사용하였습니다. 시편은 노래가 된 기도로서, 기도가 된 노래로서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관계 맺음을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 고백이 담긴 23편은 가장 사랑받고 애송되는 시편에 해당합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 시편은 물론 아름다운 시구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멜로디가 덧입혀지면서 유명세가 증폭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여타 어느 시편도 23편 보다 더 다양한 곡조에 맞추어 불리는 시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노래가 된 기도’이고 ‘기도가 된 노래’입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하느님을 ‘나의 목자’로 부릅니다. 목동이었던 자신이 하느님을 ‘자신의 목자’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는 유목적 삶의 배경에서 나온 표현들로 가득합니다. 다윗은 유년 시절의 체험으로 목자와 양의 관계가 어떤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목자의 역할은 양들을 위험에서 지켜주고, 풀밭으로 인도하여 풀을 뜯게 하고, 마실 물을 찾아 먹여주는 등 양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목자와 양들의 관계는 무한한 신뢰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양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 기능, 곧 뿔이나 날카로운 이빨, 보호색 같은 위장술의 기능이 없습니다. 거기에 속도를 내는 재빠른 발도 가지고 있지 않은 탓에 천적으로부터 쉬 달아나지도 못합니다. 또한 양들은 물살이 빠른 강가에서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지독한 겁쟁이입니다. 목자들이 돌을 사용하여 거친 물살의 흐름을 막고 고요하고 잔잔하게 물길을 만들어야 양들이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양들은 생존을 위해 이처럼 전적으로 목자를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나의 목자’라는 다윗의 이 짧은 고백은 하느님께서 그를 위해 해 주신 많은 보살핌을 짐작하게 합니다. 목자로서의 유년 시절, 자신이 양들을 위해 헌신한 그 모든 노력으로 주님께서 돌보아 주신다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은, 주님께서 목자이시기에 ‘아쉬움이 없다.’ 라고 고백합니다. 생존 자체를 목자에게 의존하는 양들처럼 나약한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무한 신뢰의 표현일 것입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재앙이 닥친다 해도 두렵지 않다는 다윗의 거침없는 고백은 자신의 삶에서 만난 하느님께 대한 체험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두려움 없음을 한마디로 요약하는데 바로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라는 확신에 찬 고백입니다. 다윗은 주님의 동행을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하지 않고 ‘당신께서 함께 계신다.’라고 표현합니다. ‘당신’이라는 표현은 바로 내 앞에서 나와 대면하고 있는 사람에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정말 가까이 바로 내 앞에 내 곁에 함께 계시는 분이라는 강조일지도 모릅니다.

 

기도를 입에 두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노래일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신앙인의 ‘애창곡’ 시편 23편을 크게 한번 노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