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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유턴
- “돌아오너라.”


글 조남선 마리스텔라 | 성김대건성당

나는 길치다. 서너 번을 오갔던 길도 갈림길만 만나면 헷갈려 엉뚱한 길로 빠지기 일쑤다. 낯선 곳에서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어디냐’고 물어 남편을 여러 차례 당황시켰다. 그래서 내게는 내비게이션이 필수품이 되었다. 수없이 다녀서 알 만한 길을 갈 때도 늘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는다.

올레길 걷는 재미에 빠져 제주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재미 중 하나는 길 안내 표지들을 찾으며 따라 걷는 것이다. 구석구석 그려진 화살표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올레길 코스를 출발지부터 종착지까지 순방향으로 걷는 사람은 파란색 화살표를, 종착지에서 역방향으로 걷는 사람은 주황색 화살표를 따라 걷도록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화살표들이 도시의 도로 표지판처럼 규격화된 것이 아니라 길가의 돌멩이, 전봇대, 길바닥, 돌담 등 자연스럽게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보물찾기를 하듯 기발하게 그려진 화살표를 찾아가며 걷는 것이 은근 재미있다. 그리고 화살표를 표시하기 어려운 산길 같은 곳에는 나뭇가지에 파랑과 주황, 두 가지 색 리본이 달려 있어 바람에 한들한들 멀리서도 길을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보다 더 친절할 수는 없다.

화살표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과 15km 내외의 올레길을 걸을 때도 이렇게 갈림길을 만나면 당황하고 머뭇거리는데 우리 삶에는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런 힘든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갈 길을 잃고 헤맬 때 어느 쪽이 우리가 바라는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최선의 방향인지 알려주는 화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한번 잘못 들면 다시 먼길을 돌아와야 한다. 한순간의 선택이 너무도 먼길을 돌아와야 하는 수고를 하게도 하고, 때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접어들게도 한다. 그럴 때 누군가가 ‘이쪽 방향은 당신이 갈 길이 아니에요.’, ‘좁은 길로 가세요. 이 큰길은 막다른 길이랍니다.’ 하고 파란 화살표를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다 보면 답답하게 길이 막히거나 중요한 갈림길에서 주저 할 때가 있다. 옳은 선택이라고 열심히 걸었는데 어느 순간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어디냐?’고 누군가에게 되묻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바른 삶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친절한 화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또한 욕심임을 안다. 지금 걷고 있는 자갈밭을 얼마나 더 걸어야 평탄한 흙길이 나올지, 삶의 종착지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일지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니.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하삼두 스테파노 화백님의 작품 사진을 감상하다가 〈유턴〉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파란(波潤)이 많았던 나의 삶에 평화가 깃들게 된 것 역시 바로 주님께로의 유턴(U-turn)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해 주님의 십자가를 떠나 세상 속 십자로(十字路) 가운데 나앉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한 때가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 갈등 때문에 여러 차례 흔들렸고, 질병과의 끝없는 사투에서 생(生)의 뿌리까지 흔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주님은 수없이 내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당신이 곧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임을 말씀해 주셨다. 내가 너무 어리석고 둔하여 그 손을 빨리 맞잡지 못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냉담자가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성체를 통해 내 안에 오신 주님을 느끼고, 감사하며, 그분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지 못해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도 그림 속에 계신 주님은, 가시관을 쓰신 주님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당신이 길임을. 그러니 방황하고 절망하며 힘겨워하지 말고 당신께로 돌아오라고….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으로 일깨워 주시며 기꺼이 우리와 동행해주시겠다 약속하신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이사 5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