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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완고(頭固)한 마음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어느 날 성모당을 지나가는데 한 신자 분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신부님, 뭐 하나 여쭤볼 말이 있는데요.… ” 때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막 지낸, 부활 팔일 축제 중의 어느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그분 말씀이, 모처럼 성모당을 찾아왔다가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있는데, 자매님 한 분이 다가와서 ‘부활 시기에 십자가의 길을 하시면 안 된다.’라고 면박을 주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부활 시기에는 십자가의 길을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리가요.” 저는 그 자매님께 설명해 드렸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도는 언제든 할 수 있다. 그 자매님은 아마 지금이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시기이니,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하는 기도는 전례 주년상 맞지 않는 게 아니냐는 기우에서 그리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 언짢아하지 마시고 자유로이 기도하셔도 된다.’라 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한 해를 전례 주년에 맞게 보냅니다. 대림 시기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고, 성탄은 주님의 오심을 기념하고 축하하며, 사순 시기에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부활 시기에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기리며 우리의 구원을 기뻐합니다. 그 외에 연중 시기를 보내지요.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며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성탄, 수난, 죽음, 부활은 모두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의 시기를 보내며 다가올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의 여정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을 돕기 위해 전례 주년을 제정하여, 한 해를 보내면서 구원의 사건들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당연히 부활 시기에도 주님의 고통과 죽음을 묵상할 수 있고, 수난의 사순 시기에도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완고(頭固)한 마음’입니다. 마음이 완고해진다는 것은 융통성 없이 굳어져 고집이 세진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의외로 공부를 많이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서 종종 이러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고 타인에게도 강요하는 완고한 마음은 나를 엄격한 신앙의 재판관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잣대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한다면 내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지적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마태 7,1-5 참조)

공자도 배우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완고한 마음을 항상 경계했습니다. “군자는 배워도 완고해지지 않는다.”1)라는 말씀은 많이 배우는 자가 오히려 완고해질 수 있음을 경계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마음이 완고해지면 그 안에 사랑이 싹틀 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마음 안에는 주님께서 들어올 자리도 없을 것 입니다. 6월 예수 성심 성월을 보내면서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고 주님 사랑의 마음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들 안에 자리 잡은 무지와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들은 정신이 어두워져 있고 하느님의 생명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에페 4,18)

 

1) 『논어』,「학이」, 8. “君子學則不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