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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2
내 부족함의 기도


글 이정화 세레나|경산성당

 

하느님께서 맨 처음 이 땅에 말씀을 뿌리내리게 하셨을 때 참으로 지혜로운 분이셔서 그 씨앗을 전부 흩뿌리지 않으시고 조금만 심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시작하신 창조의 디딤돌사업이 혹시 징검다리사업은 아니셨을까?’ 하는 묵상처럼 다져진 생각이 꾸준한 일기처럼 떠오른다.

 

매일을 살면서 언제나 내 부족분을 채워달라고 기도드렸었다. 욕심 없는 삶을 바랐지만 기도의 색깔이 물건을 오래 쓰면 닮는 것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기계도 오래 쓰면 낡아지듯 나의 기도가 제자리에서 빙빙 돌 때에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기도는 찰나를 기록하고 쓰는 일기장 같다. 매일 마시는 커피는 카페인을 걸러내고 마시면서 기도의 욕심은 걸러내기가 참으로 어렵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기도는 잠시 갓길로 멈춰 설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습관적으로 우유를 마시는 것처럼 우리는 필요할 때만 하느님을 찾지는 않았을까? 감사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면 일기가 절로 풀려 나가는 느낌이 든다.

 

포도나무 넝쿨이 절로 풀려 나가는 것 같아도 믿음의 토대 위에 자라는 것처럼 기도의 강물이 얼지 않도록 부지런히 기도 해야겠다. 작은 벽돌을 하나씩 쌓아서 집을 짓듯이 작은 기도의 순간이 나머지 삶을 채우도록 우리의 몫을 남겨두신 하느님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있을까? 하느님께 대한 신심의 부족분을 저금통처럼 기도로써 채우지만 배부른 저금통과 가벼운 저금통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명확히 결론 내릴 수 없다. 그것은 정성일 테니까….

 

촛불은 다 타면 한줌의 연기로 사라진다. 기도의 재는 하느님께로 승화된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신비체… 모든 사물은 기도의 언어를 함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하느님을 모시는, 끝없이 알아 나가는 이유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들의 계획된 숙명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끝없이 변모하시는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걸어간다. 믿음 하나의 외길을, 구원의 주체인 하느님을 믿으면서 오늘도 말씀을 버팀목으로 산다.

 

내 부족분의 기도를 짐처럼 내어 맡기진 않았는지 돌아보며 영원히 부족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신 하느님, 영생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그 끝없는 간극을 메우려 오늘도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