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휴가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 (슬라바 이수수 크리스투! : 예수님께 영광!)

◎ Во веки веков! (바 베키 베코브! : 세세에 영원히!)

 

Как дела? (깍 델라? : 어떻게 지내시나요?)

Хорошо. (하라쇼. : 좋습니다.)

 

뜨거운 여름!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유난히 시원한 바다가 그리운 계절입니다. 여기는 바다가 없거든요. 물론 바다 같은 호수는 있지만 호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건 호수지 바다는 아니거든요. 마음만 먹으면 바다로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더워, 너무 더워!”라며 집에만 있지 말고 덥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새롭게 보셨으면 하네요. 잠시 일상을 벗어나 ‘휴가’를 보내셔요. 8월이 또 휴가철이잖아요.

오늘은 ‘휴가’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선교라고 하니 쉬지 않고 일하는 상상을 하시는 건 아니시죠? 늘 깨어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강하게 적용시키는 건 아니시죠?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저도 좀 쉬어야겠습니다. 쉬는 것도 삶의 일부분이라면 그것은 선교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잘 쉬어야지 또 힘을 내서 자신의 일을 잘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어요. '잘 쉬는 것’입니다. 저에게 잘 쉬는 것은 마음이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 평화로움을 준다면 그것이 잘 쉬는 것이 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에서 드라마를 보며 빈둥거리는 것이 평화로움을 준다면 그것이 잘 쉬는 것이 됩니다. (물론 평생을 빈둥거리자는 건 아닙니다.) 평화로움을 느끼면 느낄수록 잘 쉬었다고 느끼게 되었고, 또 휴가가 끝나더라도 에너지 넘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잘 쉬는 것’입니다. 저에게 ‘좋은 휴가’지요. 무언가 마음에 남는….

일단 제가 생각하는 휴가에 대해 마음을 나눴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휴가를 통해 어떤 평화로움을 느꼈는지 말씀 드릴께요.

 

사제는 늘 사랑을 외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소소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합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자고요. 그런데 사제에게도 그게 참 어렵습니다. 특히 가족을 사랑하는 건 우리에게도 참 어렵습니다. ‘가족 = 아내 + 아이들’이 아닌 건 아시죠? 부모님입니다.

작년(2021년)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휴가를 받으면 어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지금부터 조금씩 훈련을 해야겠다.’ 신학생 때부터 늘 홀로 지내다 보니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많이 서툽니다. ‘홀로 지내는 것’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함께 지내는 것’에는 나름 취약합니다.

3박 4일 - 딱 부모님과 얼굴 붉히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용돈!

짧은 시간 서로 잘 지내는 것도 좋지만 오래 머물면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의 전환이라고 할까요? ‘부딪히지 않게 맞춰 사는 것’에서 ‘함께 사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부모님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거기에 어머니가 원하는 것(아버지는 하늘 나라에 계셔요.) 또한 포함 시킨다는 것입니다. 함께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요.

우리가 늘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부드럽게 하는데 유독 부모님과의 대화는 쉽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이 조금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면 쉽게 짜증을 냅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그러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조금 변화를 주어야겠다 싶어 일단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한 뒤 짜증내지 않고 내 것을 설명하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당연히 마음속의 부글거림은 순간순간 올라오기도 하지요. 어머니와 오래 대화를 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과정이라고 혼자 생각을 합니다.

또 부모님들은 기계나 현대 일처리 시스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그런 것도 몰라요?”라며 (표현을 다소 부드럽게 했습니다.) 핀잔을 주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어차피 짜증을 내면서도 다 설명하잖아요? 그래서 차근차근 설명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못 알아들었다 싶으면 설명의 방법을 조금씩 바꿔보기도 하고요. 조금씩 예전에 하지 않았던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요. 어려움은 매순간 따라오지만 그래도 시도할수록 새로운 걸 느끼게 되고 뭔가 모르게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그래서 작년 휴가 때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휴가입니다. 여러분의 휴가는 어떠신지요? 이번 기회를 빌려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를 사랑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