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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바다가 좋아요, 산이 좋아요?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탕수육을 먹을 때 부먹(소스를 부어 먹는 방법)이냐, 찍먹(소스에 찍어 먹는 방법)이냐?’ 우스개 같지만 이런 질문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파가 나뉩니다. 비슷한 것으로는 ‘바다를 좋아하느냐, 산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있지요. 여러분은 산을 좋아하세요, 아니면 바다를 좋아하세요? 최근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여주인공 송서래(탕웨이 분)가 『논어』를 인용하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공자님 말씀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1)고 했습니다. 나는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난 바다가 좋아요.”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많이 들어본 말이지요. 중국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물(水)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긴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대저 물이란 물길을 따라 흘러가되 조그마한 틈도 남기지 않음이 마치 지혜로운 자와 같다. 천지는 물로 이루어지고, 만물은 물로 살아가고, 국가는 물로 편안하고, 만사는 물로 공평해지고, 사물은 물로 바르게 되니, 이것이 지혜로운 자가 물을 즐기는 까닭이다.” 그러면 인(仁)한 자는 어째서 산을 즐기는가? “대저 산이란 만민이 우러러 보는 바이다. 초목이 여기에 살고, 만물이 여기에 심어지고, 나는 새가 여기에 모이고, 달리는 짐승이 여기에서 쉬고, 사방이 모두 유익함을 여기서 취한다. 구름을 내고 바람을 인도하며 천지 사이에 우뚝 솟아 천지는 산으로 이루어지고, 국가는 산으로 편안하니, 이것이 인(仁)한 자가 산을 즐기는 까닭이다.”2)

유가 철학에서 인(仁)은 도덕적 최고 경지를 말합니다. 인(仁)은 사덕(仁義禮智)의 한 요소이지만 모든 덕목을 아우릅니다. 인(仁)은 하늘이 만물을 살리는 사랑이고,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최상의 덕목입니다. 인(仁)은 최고의 덕목으로서 지혜로움을 포괄합니다. 지혜는 세속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仁)을 제대로 분별해 알고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덕목입니다. 그러니 지혜로운(知) 사람과 인(仁)한 사람이 별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으로 이야기해 보면 인(仁)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행하는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하는 마음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저는 바다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산을 오르는 것도 좋아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혜롭다거나 인(仁)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을 알아 가고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지혜를 얻기 바랄 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는 노력이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혜(知)와 사랑(仁)이 나를 이루는 두 축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날씨가 제법 선선합니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산은 색색을 입은 가을이 한창입니다. 산에 오르기 좋은 계절이지요. 산 옆에 물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가까운 산이라도 한번 오르면서(산을 오르기 힘들다면 멀리서 바라보면서) 하늘 아래 우뚝 서서 만물을 보듬고 살리는 산의 사랑(仁)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산처럼 만물을 사랑으로 살리고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 보면 좋겠습니다. 산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혹은 아래로 흘러가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하느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청해 본다면 더 좋겠습니다.

 

1) 『논어』, 「옹야」, 23. 子日, “知者樂水, 仁者樂山.”

2) 정약용, 『논어고금주』, 2권, 91쪽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