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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사목적 배려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 | 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 (슬라바 이수수 크리스투! : 예수님께 영광!)

◎ Во веки веков! (바 베키 베코브! : 세세에 영원히!)

 

Как дела? (깍 델라? : 어떻게 지내시나요?)

Хорошо. (하라쇼. : 좋습니다.)

 

벌써 10월이네? 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한 해의 하반기를 생각하는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늘 안타깝고, 아쉽고, 뭔가 모르게 부족했고… 이런 것들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생각보다는 말이죠.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냈든 올해가 아직 두어 달 남아 있으니 우리 파이팅하며 아름답게 보내도록 합시다. 파이팅을 시작으로 이번 달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목적 배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신부님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말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니 말이 좀 어려워서 제 방식대로 설명을 드리자면, 신부님이 신자들의 신앙에 유익이 되는 활동(사목)을 하시다가 ‘음…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완전히 교회에 반대되는 것이면 강력하게 ‘이건 아니다.’라고 하실 텐데 또 그런 건 아닌, 마음속에 조금의 찝찝함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교회의 입장만을 말하기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해서 ‘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것이 바로 사목적 배려입니다. 그 느낌을 표현하려니 어렵네요. 굳이 정의하자면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것, 제도보다는 신앙을 생각하는 것, ‘융통성’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사목적 배려’에 대해 좀 많이 생각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톨릭’은 보편적이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또 나라에 따라 조금씩 생활모습이 다릅니다. 신앙이라는 측면에서는 하나이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신앙생활 모습, 한국 사람들의 신앙생활 모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도 한국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여기 와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사람과의 관계를 많이 생각하는 문화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의 상황을 많이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교회가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처한 상황을 참 많이 바라보게 됩니다. ‘교회의 입장’과 ‘사람의 상황’을 두고 퍼센트를 따진다면 교회의 입장 50%, 사람의 상황 50%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느꼈던 특정 나라(카자흐스탄이 아닌 다른 나라)의 신앙생활 모습을 보면 교회의 입장이 80%, 사람의 상황이 20%입니다. 뭔가 모르게 일방적인 느낌이랄까요? 유연함이 없는 ‘FM’이었습니다. 제가 속상했던 사건이 바로 ‘그 나라의 신앙생활 모습’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지난 7월 이곳 알마티에 하나뿐인 성당에서 한국 국적의 아가씨와 카자흐스탄 국적을 가진 청년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모두의 축복 속에 혼인미사를 마치고 제의실에 들어오니 본당 보좌신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식 중에 신랑, 신부가 오른손을 잡고 혼인 합의를 할 때 사제가 영대로 그들의 오른손을 감지 않았으니 혼인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예식이 보좌신부님 나라에서는 꼭 해야 하는 보편적인 예식일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생략하는 예식이었습니다. 보좌신부님이 화를 내며 말씀하지는 않았는데, 그 말씀에서 뭐랄까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완고함을 느꼈습니다. 상황을 헤아려 주지 않음에 속이 많이 상했던 것입니다.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한 시간이 넘게 결혼식을 올리고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있는데 이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인 겁니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가져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건조하게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목적 배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일까를 말이죠. 물론 저의 이런 모습도 또 다른 입장에서 보면 이상할 뿐입니다. 저의 모습도 지극히 한국적인 신앙생활 모습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죠. 신앙생활에 ‘이것이 답이다.’라는 것은 없을 겁니다. 서로 다른 모습에서 끊임없이 하나됨을 찾아가는 것일 테니까요. 그래도 솔직히 마음은 많이 상했습니다.

 

참!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궁금하시죠? 제의실에서 예식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본당 수녀님께서 교회법에 능통하신 다른 신부님께 전화를 걸어서 여쭤보고 괜찮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 상황이 종료되었답니다. 제의방 밖의 사람들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계속 즐거움을 나누었고 저 혼자만 속이 상했다가 진정되었던 일이었습니다.

아! 제가 오늘은 제 마음을 들려드린다고 다른 나라의 신앙생활 모습과 신부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쏟아냈는데, 그래도 숨기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전해드리며 저도 계속해서 성장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다음 달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