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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수오지심(蓋惡之心)


글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월간 〈빛〉 편집주간 겸 교구 문화홍보국장

 

최근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소식을 접하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낍니다. 사회 안전망의 부실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하는 저의 처지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맹자(孟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습니다.1) 곧 모든 사람은 천성적으로 측은지심(側隱之心), 수오지심(蓋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측은지심’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측은히 여기고 보살피며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의 근본은 인(仁)이라는 덕목입니다. ‘사양지심’은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며 예를 갖추려는 마음으로, 그 근본은 예(禮)라는 덕목입니다. ‘시비지심’은 윤리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고(是) 그른지(非)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로움입니다. 이 마음의 근본 덕목은 지혜(智)이지요.

그러면 ‘수오지심’은 무엇일까요? 한자를 보면 부끄러울 수(羞)에 미워할 오(惡)자입니다. 그러니까 부끄럽고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이지요.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미워한다는 말일까요? 수오지심의 근본 덕목은 의로움(義) 입니다. 그러니 내가 의롭지 못할 때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고, 다른 이들의 불의함을 볼 때 분노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수오지심’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움’은 나의 내면을 향하는 의로움의 잣대(기준)이고, ‘미워함’은 나의 외면, 세상을 향하는 의로움의 잣대인 것입니다. 맹자가 이야기한 이런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선한 본성입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교육을 통해 배워서 생긴 마음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나에게 부여해 준 것입니다.

 

저는 요즘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젊은이들을 보면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이 사회를 좀 더 안전하고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구조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 상황에 대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미운 마음, 분노하는 마음이 저를 휩쓸고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정책 당국의 안이한 자세와 당쟁만을 일삼는 정치권을 향한 미움과 분노의 마음입니다. 공정한 보도와 올바른 진단은 내팽개치고 자극적인 보도에만 열을 올리는 대다수 언론을 향한 분노의 마음입니다. 내 본성 안에 있는 의로움(義)의 덕목이 저에게 ‘수오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제 2022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수오지심’이 제 마음을 우울하고 어둡게 만듭니다. 사회의 약자를 향한 ‘측은지심’이 제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우리 모두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서(에페 6,14),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을 찾아야 하겠습니다.(마태 6,33 참조)

 

“의로움은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데에 필요한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모든 이가 흡족할 수 있도록(마태 5,6 참조) 인내와 희생과 결단으로 정의를 다져야 합니다.”2)

 

1) 『맹자(孟子)』, 「공손추상」, 6장 참조.

2) 프란치스코 교황, “제108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