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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Von guten Machten wunderbar geborgen 선한 능력으로


글 여명진 크리스티나|음악칼럼니스트, 독일 거주

중학생이던 199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톨릭 신자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2008년 독일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니, 이제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한 기간보다 독일 성당의 구성원으로 지내온 기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그 세월 동안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었던 성가들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에 담은 독일 성가 몇 개를 뽑아보라면 주저 없이 선택할 노래 중 하나가 바로 이 곡입니다.

이 노래는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가 쓴 시를 가사로 독일 교회음악가 지그프리트 핏츠(Siegfried Fietz)가 작곡한 곡입니다. 본회퍼는 루터교 목사이자 개신교 신학자로 나치에 저항하여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단체를 돕다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됐습니다.

 

겨울이 깊던 1944년 12월 19일, 본회퍼 목사는 베를린의 차가운 지하 감옥 안에서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Maria von Wedemeyer)에게 편지를 씁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의 안부를 묻는 성탄 인사로 시작한 편지의 끝에 이 시를 담았습니다.

 

1.

선한 능력에 고요히 둘러싸여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그대들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또한 그대들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2.

지나간 것들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지만

아, 주님 두려움에 떠는 우리의 영혼에

당신께서 마련해 두신 구원을 보내 주십시오.

 

3.

고난의 잔이

쓰디쓴 고통으로 넘치도록 채워진다 할지라도

당신의 선하신 사랑의 손에서 두려움 없이 감사히 그 잔을

건네받겠습니다.

 

4.

그럼에도 한번 더 이 세상 살아가는 기쁨과

눈부신 햇살을 허락하신다면 지난날을 기억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삶은 온전히 당신 것입니다.

 

5.

우리의 어두움 속으로 가져오신

그 촛불이 평온하고 따듯하게 타오르게 하시고,

우리를 다시 하나 되게 하십시오.

당신의 빛이 밤에도 빛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6.

무거운 침묵이 깊어질 때면 보이지 않게 퍼져나가

이 세상을 가득 채운

당신 자녀의 찬양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십시오.

 

7.

선한 능력으로 놀랍도록 보호받고 있기에

의연하게 다가올 일들을 기대합니다.

주님께서는 밤에도 낮에도 우리 곁에 계시며

다가올 모든 새로운 날에 함께하십니다.

 

이 편지는 그가 남긴 생의 마지막 글이 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얼마 남기지 않은 1945년 4월 9일 새벽,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서른아홉 생을 마감했습니다.

 

2022년 한 해가 끝나갑니다. 지나간 것들이 자꾸만 우리를 뒤돌아보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할 것이고, 다가올 그 모든 날에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선한 능력 안에서 위로받고 새 희망을 얻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그동안 교회음악칼럼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연재를 맡아주신 여명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