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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
살림!


글 이수환 바오로 미끼 신부|카자흐스탄 알마티교구 선교사목

 

† Слава Иисусу Христу! (슬라바 이수수 크리스투! : 예수님께 영광!)

◎ Во веки веков! (바 베키 베코브! : 세세에 영원히!)

 

Как дела? (깍 델라? : 어떻게 지내시나요?)

Хорошо. (하라쇼. : 좋습니다.)

 

러시아말 인사도 이제 마지막이네요. 이번 편지가 여러분에게 드리는 저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아쉬워하는 마음의 소리가 여기 카자흐스탄까지 들립니다. “그죠, 아쉽죠? ” 마지막에 무슨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고민 고민을 하던 중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두둥! 제가 주교님과 헤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살던 교구청 보금자리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카자흐스탄에 왔을 때부터 살던 교구청! 명품매장이 있는 건물 2층! 지난 6년 동안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그 이유를 말씀드려야 하는 게 당연한데 개인적으로 마음 아픈 부분이라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음 아픈 부분을 이야기한다는 건 누군가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이야기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다고 또 다른 이야기를 쓸 수는 없네요. 왜냐하면 지금 저에게 가장 큰 사건이 보금자리 이동인데 이걸 빼고 다른 걸 쓴다는 건 그냥 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게 아니라 뭔가 보여주기식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대신에 이사 후 바뀐 저의 모습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좋은 이유에서든 안 좋은 이유에서든 사는 환경이 바뀌면 우리는 그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고 또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마음 아픈 이유라고는 하지만 일단 환경이 바뀌었으니 살기 위해서 마음을 정리하고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신부님에서 주부님으로의 마음의 변화!’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죠? 사실 제 삶의 계획 중에 ‘50대에 요리 시작하기’가 있었습니다. 요리를 잘하자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소소함을 느끼자는 계획인데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지게 되었습니다. 새로 옮긴 보금자리에는 주방 자매님이 안 계십니다. 그래서 함께 살고 있는 신부님과 식사를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대충 때우려는 마음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언젠가 요리를 할 계획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 하는 것이니 저는 예쁜 앞치마도 사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사람이 참 신기합니다. 마음을 먹게 되잖아요? 그러면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음식 준비에 조금의 마음도 두지 않던 제가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귀찮다는 마음, 이걸 왜 내가 준비해야 하느냐는 마음이 들지 않고 재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사는 신부님을 챙겨주는 것도 귀찮은 게 아니라(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 엄마가 아이들을 챙겨주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엄마들의 그 큰마음에 어찌 견줄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이번에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부님’이 되어보니 일상생활의 사소함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선교’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내리게 됩니다. 이런 말씀을 왜 드리냐면 함께 살던 외국 신부님의 일상생활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근 작은 마을로 가서 복음을 전하시는 모습은 참 좋은데 빨래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옷에서 쉰내가 나고, 모두가 자고 있을 때 들어오셔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도록 큰소리를 내는 것, 자꾸 시키기만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 등 사소한 것은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선교라는 게 무엇일까? 엄청난 일은 일상의 사소함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라고 외국 신부님에 대해 투덜거리며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환경의 변화를 통해 또 다른 역할을 하게 되고, ‘선교’에 대한 또 다른 생각도 가지게 되네요.

선교라고 하면 흔히 환경이 척박한 곳에 가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인자한 모습을 전하는 영화 ‘미션(The Mission, 1986)’을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장면만 생각하셨다면 매번 말씀드리지만 미안할 뿐입니다. 그래도 저는 작은 일에서 지금껏 몰랐던 것들을 깨닫고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집안일이 끝이 없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돌아서면 다시 밥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가까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는지 더 보게 되고, 재료가 떨어져서 무엇을 더 사야 하는지 작전을 짜게 되는 이런 소소한 일상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니 기분이 좋습니다. 이전에는 몰랐던 삶의 신비를 깨닫게 되니까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고 그것이 또 선교라면 ‘살림’도 아주 소중한 선교가 아니겠습니까?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까요.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을 살려보도록 합시다. 아자!

 

그동안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대단한 것이 없어 과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늘 고민이었는데 그래도 어쨌든 제 이야기를 들려드렸으니 그것으로 저는 만족한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이번 호로 카자흐스탄에서 온 편지는 끝맺습니다. 그동안 연재해 주신 이수환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